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7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3일차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콘서트 공연 후기 본문
*****클알못 후기 주의*****
이번 시즌 짤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 오페라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의 콘서트 형식.
지휘: 마르코 아밀리아토
출연: 일다 압드라자코프(알폰소), 크라시미라 스토야노바(루크레치아 보르지아),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제나로)
분명 예매할 때는 콘서트 형식이라는 말 없었는데 어제 보니까 콘서트라고 하더라 사기 아니냐고 이거ㅠㅠ 나는 무대 세트 의상 연출 다 갖춘 거 보는 줄 알았단 말야...
그래도 공연은 매우 좋았다! 짤츠 오기 전에 이 작품 예습하겠다고 딱 한 번 들어본 게 다였는데도 이번 공연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콘서트 아니고 정식 무대였으면 진짜로 재밌었을 것 같다. 역시 옛날사람들이나 지금사람들이나 시청률 올리기엔 막장이 최고야..... 옛날사람들은 막장에 근친까지 끼얹었으니 두말할 나위 없지
캐스팅도 좋았음. 일단 알폰소 역에 일다 압드라자코프. 새끼덕후인 나는 10월 파리 돈카를로 예매하기 전까지 몰랐는데, 인기도 좋고 커리어도 탄탄하더라. 이 공연 보기 전에 이 가수 영상 몇 개 찾아봤는데 펠리페 역으로 굉장히 재밌는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음. 특히 원작의 "전 유럽이여 나를 저주하라! (...) 아, 자연이여! 포사는 나의 죽음을 기다렸겠지만, 아직 내 혈관과 근육에 젊은이의 힘이 느껴진다! 그의 죽음을 우습게 만들겠다. (...) 아직 세상은, 하루 저녁은 내 것. 나는 이 저녁을 이용하여 이 불탄 자리에서 열 세대동안 그 어떤 식물도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하겠다!" 이 대사를 가장 무섭게, 정말 전 유럽의 위협이 이 왕의 손에 달린 것처럼 느껴지게 할 만한 힘이 있는 가수였음. 그런데 막상 이 공연 보니까 거의 해당 프로덕션의 분위기메이커 같은 느낌이었다ㅋㅋㅋㅋㅋ 좀... 인자한 어깨형님 같은 느낌이랄까. 공연에서는 제일 잘 한 사람으로 꼽고싶다. 이 사람때문에 내 최애음역대 하이바리톤에서 베이스로 넘어갈 것 같음ㅋㅋㅋㅋㅋㅋㅋ 공연 보고 난 직후에 트위터에다가 "와 베이스 최고다 지금 루크레치아 역 맡은 가수랑 제나로 역 맡은 가수는 오케에 소리 먹혀서 낑낑대고 있는데 알폰소가 야이자식들아 오케 하나 못 뚫냐??? 이러면서 하드캐리로 뚫어줌" 이따위로 써놓은 걸 보니 잘하기는 했나 보다.ㅋㅋㅋㅋㅋㅋ 베이스가 아무래도 가장 낮은 음역대고 낮으면 극장 전체 구석구석까지 잘 울리니까 3층에 있었던 나한테는 제일 잘 해 보였을수도.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역인 루크레치아 역에는 크라시미라 스토야노바. 이 공연은 짤츠 여행 3일차에 봤고, 나는 2일차 밤에 축제 중앙 광장에서 틀어주는 짤츠 실황영상 중계를 봤는데, 그 때 프로그램이 2016년 짤츠 <다나에의 사랑>이었다. 그 공연에서 다나에 역을 맡았던 가수가 바로 스토야노바였고 나는 졸지에 이틀 연속 그 가수 공연을 따라다니는 모양이 되었음ㅋㅋ 다나에의 사랑에서는 연출 디렉션인지 가수 개인 디테일인지 이상한 손짓 몸짓을 조금 거슬릴 정도로 많이 하고, 과한 연기도 있었는데, 루크레치아에서는 콘서트라서 그랬는지 담백하게 본인 역할에 충실했다. 담백? 막장극 주인공에게 담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튼 과하지 않았다는 말임. 캐릭터 자체가 "아이 엠 유어 마더"하는 역이랔ㅋㅋㅋㅋㅋㅋ 그냥 웃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봤다. 성량은 잘 모르겠음. 다나에의 사랑 볼 때는 그렇게 묻힌다는 느낌 없었는데 직접 무대에서 보니 오케에 조금 묻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부르는 아리아는 나쁘지 않았는데, 아들인 제나로 역의 가수와 함께 부르는 숨가쁜 듀엣에서는 오케가 목소리를 다 집어삼켜버렸음. 제나로 역에는 지금 날리는 테너 중 레제로임에도 넓은 작품폭을 가졌다는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였는데 아니 그냥 좀 귀여웠다 사람이.... 레미즈 25의 닉조나스상이어서........ 목소리도 가볍고.... 얄상하고....... 그래도 후반에 오케 사운드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솔로아리아로 절규할 때에는 그 목소리와 그 몸에서 파워가 느껴졌다.ㅋㅋ 내 옆에 앉은 오페라덕후의 기질이 뿜어져나오던 할머니는 이 테너 팬이었던 것 같았음.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는 아직 한국에 공연된 적 없는 작품이라고 하던데, 스토리는 흔한 서양의 근친 막장물이다. 알고보니 내 엄마였다는 뭐 그런건데.. 스토리 이해를 위해서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80026&cid=59001&categoryId=59005 네이버 링크를 첨부한다. 공연 보기 전에 대충 검색해보고 제레미아이언스가 나온 드라마 소개를 봤다. 그거 보고 오페라도 혹시...? 흑화된 루크레치아를 그려주진 않을까..? 하고 헛된 희망을 품어보았으나 빅토르위고와 도니제티에게 기대를 걸면 안된다는 내 이성이 옳았음. 아니 그렇다고해서 완전 납작한 캐릭터라는 건 아니다. 이 작품의 메인 롤이고, 중요하고,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인물인 것은 맞음.
인터미션 후 알폰소와 루크레치아와 제나로가 한 방에서 치열한(?) 눈치게임을 하는 장면은 특히 흥미진진했다. 알폰소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눈새 제나로에게 술잔을 권하는데 제나로는 "영광입니다 공작님"하는 거 너무 귀여웠곸ㅋㅋㅋㅋ 애초에 도망가라는 엄마 말 안 듣고 계속 남아있던 제나로가 노답인건 맞지만...... 눈새새끼..... 알폰소가 루크레치아에게 제나로를 어떻게 죽일건지 결정권을 주겠다며 독이냐 칼이냐 선택하라는 것도 찌질하고 웃겼닼ㅋㅋㅋㅋㅋㅋ 알폰소 "잊지마라 나는 공작이다" 이 가사 328094820938번 반복하는데 후......... 역시 이래야 오페라 베이스롤이지 위엄을 시답잖은데 써먹는 당신들이 난 너무 좋아요.
이 공연에서 제일 잘 했던 사람 압드라자코프 말고 또 한 명 있는데 바로 오르시니 역을 맡은 가수분. 위의 내용을 보면 감이 오겠지만 내가 스토리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부분이 어느정도 있어서ㅋㅋㅋㅋ 오르시니라는 캐릭터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음. 왜 갑자기 제나로랑 사랑에 빠지는 것이며 왜 갑자기 루크레치아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가족들과 와인 종류 가지고 싸우는 것이며 어느순간에 화해하고 노래를 하고 있는 걸까...? 정식 공연이 아니라 콘서트 형식이었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지문 자체가 전부 삭제되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영어와 독일어 자막이 위에 떠 있지만..... 나는 0개국어 구사 가능자였기 때문에.... 그러나.. 오르시니.. 노래를 너무 잘 해서... 진주인공 사실 알폰소랑 오르시니 아닌가 싶었음. 여튼 이 작품도 누군가가 상세하게 설명해준다면 경청할 용의가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추가) 공연은 재미있게 봤는데 역시 좀 신기했던 건 공연 끝나고 퇴근길이었다. 그로세스 페스트슈필하우스는 스테이지도어가 어디 뒷골목에 숨어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극장 정면에 떡하니 박혀 있어서, 백팩 맡겼던 나는 내 짐 되찾고 축제 중앙광장에서 아직 진행중일 공연실황 중계 보러 가는 길에 연주자들의 퇴근길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오케 연주자들 진짜 빨리 퇴근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객이 객석에서 일어나서 극장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랑 거의 비슷하게 퇴근하더라. 그것도 공연용 연미복 입고 악기는 등에 걸쳐메고 자전거 타고 퇴근함ㅋㅋ ㅋ ㅋ ㅋ 세상에 처음 보는 컬쳐쇼크였음. 신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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