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는 것들/전공 (5)
손드하임은 뮤지컬신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예비 대학원맨의 길에 발을 올렸을 때부터 계속 듣게 된 질문이 하나 있다. 왜 하필 실러냐는 거다.이 질문은 '실러가 왜 좋아요?' / '실러의 뭐가 그렇게 좋아요?' / '실러의 뭘 하고 싶어요?' 등의 바리에이션을 가진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 질문에 명쾌하고 속뚫리는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항상 "아....ㅎㅎ" 아니면 "그러게요..ㅎㅎ" 라며 얼버무려주기만 했다. 그니까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는 거겠지. 이유가 있어서 좋아하면 존경이랬고 이유가 없는데 좋아하면 사랑이랬다. ㅋㅋㅋ 나는 실러를 사랑하고 있는건데!! 이거는 200년을 뛰어넘은 참사랑인데!! 내가 이 사랑에 변명을 붙여줘야 할까?! 당연하지. 누가 사랑으로 논문을 써요. 이쯤되자 저 질문에 복사..
텍스트: 2015,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 대화문화아카데미참고 논문: 위의 책 2부에 수록되어있는 논문. 조경식, 「프리드리히 실러 『미적 교육론』의 논리 구조에 관하여」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상적이었다. 그들은 총체성을 담지하고 있는 인간이었으며 그들 안에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별성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들 중 개별적인 면들을 각각 분해하고 확대하여 예술 작품 안에 표현해냈지만, 그것은 갈갈이 찢긴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혼합이었다. 그들은 총체적인 인간의 모범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실러가 보기에 당대의 인간은 어떠한가! 실러의 눈에 당대인(우리에겐 근대인이 되시겠다.)은 "다양한 혼합물로서가 아니라 부서진 파편 조각의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전체성이 없다! "인..
텍스트: 2015,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 대화문화아카데미참고 논문: 위의 책 2부에 수록되어있는 논문. 조경식, 「프리드리히 실러 『미적 교육론』의 논리 구조에 관하여」 실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실러는 국가의 존재 가능성 여부 자체를 의심한 적은 없다. 실러에게 국가는 자연적이고 당연한 존재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실러의 자유를 지금의 인간이 성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러는 이것이 "한 세기 이상 걸릴 일"이라고 보았으나 실러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은 실러가 주장한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 쓸 거면 좀 더 쓰지 쪼잔하게 한 세기가 뭐냐, 한 세기가. 상황이 이렇기에 "자유로운 지성적 존재로서 인간이 스스로 행동할 수 없을 때, 자연은 인간을 대신해서 행동"한다. ..
텍스트: 2015,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 대화문화아카데미참고 논문: 위의 책 2부에 수록되어있는 논문. 조경식, 「프리드리히 실러 『미적 교육론』의 논리 구조에 관하여」 1791년 실러는 에어푸르트에서 졸도한 후 심한 폐결핵에 시달렸다. 이 때 실러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소문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덴마크의 폰 쉼멜만 백작과 폰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은 실러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매년 1000탈러씩 3년 동안 보내주기를 약속했다.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던 실러는 와병기간동안 칸트 공부에 매진했다. 실러의 미학과 도덕에는 칸트의 흔적이 숨김없이 들어 있다. 하지만 실러는 칸트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실러는 칸트에게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과 틀린 부분을 찾아내었다. 1) 칸..
내가 실러를 덕질한 지도 이제 원투데이가 아니다. 1년이 좀 넘었지 싶다. 2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작년 쯤 교환학생 면접때 실러를 너무 좋아해요 하며 덕심을 뿜어냈었다. 그 교환 면접을 봐주시고 면접 후 바로 다음 학기에 실러의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이, 교환교가 발표 났을 때 어디로 가게 되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튀빙엔이 무슨 역사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서 그냥 가볍게 튀빙엔이라고 대답했는데, 교수님이 왠지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니? 하는 표정으로 "왜 그런 시골을 가게 됐어요~?"라고 되물으셨다. 교수님 혹시 제가 실러 덕질 하러 튀빙엔 간 건 줄 아셨던건가요? 헬 예스입니다!!!!!!!! 헬 예스 이번엔 걸어서 도시 전체를 다닐 만 한 작은 마을이지만 제법 위상을 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