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9 라 페니체 <돈 카를로> - 이제부터 전 Werktreue를 수호합니다 본문
지휘: 정명훈
연출: 로버트 카슨
출연: 알렉스 에스포지토(펠리페 2세), 피에로 프레티(돈 카를로), 김주택(로드리고), 마르코 스포티(대심문관), 마리아 아그레스타(엘리사베타), 베로니카 시메오니(에볼리), 레오나르드 베르나드(수도사/카를5세)
너무 충격적이라 보고 나서 새벽 4시까지 깨어있다가 잠들라 치면 분노에 차 눈이 번쩍 뜨이길 세 번쯤 한 듯.
뭐가 그리 충격적이었냐면,
결말부에서 카를로스와 펠리페가 총살당하고 대심문관과 결탁한 로드리고가 왕이 됨.
대심문관과 결탁한 로드리고가 왕이 됨.
안 믿을까봐 캡쳐해 옴. 밑에 두 사진은: 1) 마드리드 반란이 대심문관의 등장으로 제압된 후 군중이 모두 퇴장하자 죽은 척 하던 로드리고가 벌떡 일어나서 대심문관과 악수함, 2) "카를5세의 목소리다"/"미오 파드레"/"오 신이시여"로 이어지는 모든 노래가 끝나고 카를로스와 펠리페는 죽은 채 무대 위에 널부러진 상태에서, 무대 뒷편으로부터 정복을 입은 로드리고가 걸어나옴.
대심문관과 결탁한 로드리고가
왕이 됨.
맨 위에 대표사진으로 올린 짤은 펠리페2세가 5막에서 "미오 파ㅏ드레!!" 외치고 수도사/카를5세한테 총맞아 죽는 장면임. ㅋㅋ 맞다, 수도사/카를5세가 직접 카를로스와 펠리페2세를 쏴 죽였음. 그리고 대심문관과 결탁한 로드리고가 왕이 됨.
그럴 수도 있지, 로드리고가 원래 리베르타 좋아하면서 인간은 지 도구처럼 사용하는 인물이니까, 카를로스도 펠리페도 본인을 믿도록 꼬셔놓고서 뒤로는 자기가 왕이 될 생각 품고 있었을 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럴거면 우정의 이중창이나, 레스타테나, 에볼리 협박씬이나 뭐 그런 장면에서 적어도 그게 눈에 좀 보이도록 티를 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로드리고의 죽음 씬 직전에 카를로스가 갇혀있는 감옥에 들어가면서, 대심문관에게 카를로스로부터 받은 편지를 넘겨주는 게 배신의 징후의 전부면 어떡하자는 거임. 대심문관이랑 손을 잡을거면 펠리페 앞에서는 왜 그렇게 진심으로 사상의 자유를 달라고, 플랑드르를 해방시켜달라고 요구했냐고.
진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후기를 몇 개 찾아봤는데, 이 사람들 전부 카슨 옹호하고 있고 이런 방향의 로드리고 역시 설득력과 일관성이 있다고 하는거임. 진짜냐? 극 잘못 본 게 나였던거냐? 난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던데? 애초에 기독교 측에서 왕과 왕자의 충성심을 시험해보기 위한 악마의 속삭임으로 로드리고를 파견한 거였다면 이해하겠음. 설마 모든 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수도사들이 간섭하는 게 그런 뜻이었나?! 하~ 아니 근데~ 그렇게 바꿔서 이 극이 얻는 게 뭐임, 쉴러가 100점짜리 좋은 팬픽을 써놨는데 80점짜리 구린 각색 되는 것밖에 더 되겠냐?!
라 페니체 극장에서 직접 풀영상을 올려주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보셔요: https://youtu.be/XhKafHwc4ts
난 내가 쿠세이나 헤어하임이나 뭐 그런 연출들 좋아하길래 이상하고 원작 비웃고 갈아엎고 그런 거 좋아하는 줄 알았음. 근데 사실은 누구보다 작품에 충실한 연출을 좋아했던 거임.. 로버트 카슨의 돈카를로스를 보고 그걸 깨달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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