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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클래식

2007 오페라 가르니에 <라 트라비아타>

허튼 2019. 8. 10. 23:01

지휘: 실뱅 캉브를랭

연출: 크리스토프 마르트할러

출연: 크리스티네 쉐퍼(비올레타), 요나스 카우프만(알프레도), 호세 반 담(제르몽)

 

 

  코러스 연극을 무대장치/배경 또는 이미지와 함께 파다 보면 항상 나오는 이름들이 있다. 아이나 슐레프, 로버트 윌슨 등등. 마르트할러도 그 중 하나다. (마르탈러라고 써야 할지 마르트할러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름이 나오니까 이 사람이 연출한 작품은 어떤 모양인지는 봐야겠고, 안보면 직무유기같고. 그런데 드라마는 풀영상도 별로 없고 봐도 대사를 못알아들으니까 오페라로 대충 가늠만 해보자 하고 보기 시작했다. 연극어법과 오페라 어법이 다르긴 하지만, 아무튼 연극에서 하던 걸 오페라에서도 시도해보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근데 요나스카우프만이 나오는 줄은 몰랐지. 이렇게.... 이렇게 젊고 잘생긴 모습으로요....

 

  각설하고  <라 트라비아타>에서 작품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비올레타의 고립되어있는 상황과 그것의 비극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그것을 마르트할러는 조명과 코러스의 움직임 정지를 통해서 아주 정석적이고 클리셰적으로, 하지만 요상하게 촌스럽지는 않은 방법으로 구체화한다. 1막에서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의 사랑을 알게 되고 고통과 기쁨이 마음 속에 함께하는 감정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사랑하니까 떠나는거야'를 시전한 후 2막의 파티장에서 알프레도를 다시 만나게 되자 후회할 때 무대의 조명은 캄캄해지고 스포트라이트만이 비올레타를 비추게 된다. 파티장의 코러스들은 전부 하던 동작을 그대로 멈추고, 비올레타의 독백 상태가 된다. 너무너무 닳고닳은 방식이지만.. 이보다 더 시각적으로 비올레타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없을 거다.

  비올레타의 고립된 상황 역시 직접적이고 함축적으로 시각에 직접 제시된다. 코러스의 배치와 시선이 중요하다. 마르트할러는 코러스와 나머지 주조연 인물들의 위치를 아주 세심하고 정교하게 배정한다. 화질이 별로 좋진 않지만 이건 이미지로 봐야하기 때문에 첨부함..

 

2막의 파티장, 알프레도가 비올레타에게 돈을 뿌리며 모욕하는 장면

  이 장면에서 코러스는 단 위에서 주인공들이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관찰한다. 코러스와 주인공들은 철저히 분리되어있으며, 한편은 관찰자가, 한편은 행위자가 된다. (제르몽이 알프레도를 후려팬 다음에 여느때와 같이 요나스 카우프만은 바닥을 긴다. 카우프만 얼굴만 보면 연출가에게 바닥을 굴리고싶게 만드는 욕망이 생겨나는것인지 모르겠는데 정말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전문 바닥닦개의 위엄..)

 

3막, 비올레타의 죽음 장면

  이 장면에서는 조형적 균형미까지 느껴진다. 왜.. 입시정물화 하면 항상 화면에 삼각형 맞추라고 하잖아요 딱 그거임. 변태처럼.. 역시 죽어가는 비올레타는 단상 아래에서 쓸쓸하게 무너지고, 다른 인물들은 단상 위에서 죽어가는 비올레타를 바라본다. 콘비츠니 연출의 트라비아타가 강하게 생각났다. 콘비츠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올레타 외의 다른 인물들을 객석에 배치하여 관객 역시도 고립된 비올레타의 죽음을 관찰하며 소비하는 일에 동참하게 했는데(사실 관객이라는 자리 자체가 그러라고 있는 자리라는 게 포인트다), 여기서는 콘비츠니 연출과 똑같이 비올레타에게 온기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없지만 그들의 관찰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여기서 위와 아래 사이의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강박적으로 인물들의 움직임과 위치와 전체적인 모양을 맞추다보니, 인물들의 제스처는 하나같이 경직되어 부자연스럽다. 코러스에게서 그 경직성은 훨씬 심해져 고장난 태엽인형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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