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8 예술의전당 <라인의 황금> 본문
11/15 공연
지휘: 마티아스 플레츠베르거
연출: 아힘 프라이어
출연: 양준모(보탄), 양준모(로게), 알베리히(오스카 힐레브란트), 프리카(김지선), 프라이아(김민지), 에르다(양송미), 파졸트(김일훈), 파프너(이대범), 보글린데(최세정), 벨군데(진윤희), 플로스힐데(남정희), 미메(김성진).. 아진짜많다....
보러가면서 계속 이걸 왜 보나 현타온다는 마음이었는데 보고 나와서는 잘봤다고 생각했다. 허튼 바그너 첫 실연 관극이 이거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 , ,, ,, ,, ,,
0. 죄다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정말 재밌게 봤다. 보기 전에는 2시간 40분에 인터미션도 없다니 이게 무슨 배트맨 대 슈퍼맨도 아닌데 2시간40분동안 끊기지 않는 금관을 토 안하고 버틸 수 있을까 으 화장실가고싶겠다 이런 생각만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가버려서 끝나고 나서는 놀랐음.. 후기는 뭔 말을 해도 귀엽다는 소리밖에 안 할 것 같기 때문에 생략함... 링사이클이고 바그너고 가수들이고 연출이고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할 말도 없다.
사실 난 바그너 하면 좀 콧대높고.. 막.. 그런 거 있잖아요.. 오페라 한 번도 안 봤을 때 오페라라는 장르에 가지는 선입견들.. 그런거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귀엽고 허세라곤 찾아볼 수 없고 무대를 수동으로 움직이면서도 싼티 안 나고 사이버펑크같고 깨물어버리고 싶은 게 바그너라고,,? 저절로 관심이 생겨버렸다. 내년에 올라올 예정인 발퀴레도 궁금하고.
보탄 눈알이 영상 속에서 날아가버릴 때, 프리카가 빛나는 손으로 보탄 때릴 때, 니벨룽 족이 땡강땡강 하면서 금 제련할 때, 파프너 파졸트 머리 터지고 뽑힐 때ㅠㅠ, 알베리히 팔 뽑힐 때ㅠㅠ 귀여워서 심장 멎을 뻔 했음.
1. 못 하는 건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는다는 쿠소영화 관람 동아리 돌연사의 표어를 따라서 일부러 주요 기대치들이 쏠리는 A팀 캐스트가 아니라 B팀 캐스트로 예매했다, 투준모 궁금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에 갈라에서 네덜란드인 본 기억이 있어서 보탄은 신뢰감같은 게 있긴 했다. 그런데 대체 뮤배 양커는 왜 바그너 오페라에 출연하게 된 걸까? 원래 로게라는 캐릭터에는 엄격한 허들이 없는걸까? 아니 근데 로게는 진짜 보탄급으로 무대 위에서 오래오래 노래하는 캐릭터인데???? 양커는 전천후 뮤배라서 할 수 있었던 걸까? 뮤지컬에서 아이돌 쓰는 것처럼 티켓파워가 시아준수급인것도 아니고 정말 알 수 없고 예당 4층까진 목소리가 닿아주질 않는다. ㅠㅠ 하지만 귀여우니 로게는 자신의 몫을 다한 것 아닐까?
2. 연출은 뭘 많이 바꾸고 해석할 여지를 곳곳에 심어놓고 비비 꼬아놓지 않아서 그냥 가볍게 끄덕이면서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정말 잘 약속되어 있는 상징들로 꾸린 무대였다. 나같이 링사이클 스토리도 완전하게는 잘 모르고 음악도 처음 들어보고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공연 보기 전부터 꺼려하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용으로 좋은 연출 아니었을까 싶다. 음악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에르다 장면이었다. 에르다 노래 덕분에 숨통이 좀 트였던 것 같다. 그리고 연출적으로 궁금한 것도 에르다 장면이다. 에르다가 Erda니까 어머니 대지 뭐 그런 것일거잖음.. 동시에 우리를 영원히 끌어올리는 여성성일 테고. 프라이아가 없으면 급하게 늙어 몸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하는 신-남성들은 보탄의 성창-남근으로 상징되고 영원히 얼굴만 동동 떠다닐 에르다-여성은 반지-여성기으로 상징되는 것일 테다. 여성의 영원성에 의해 구원되는 남성의 유한성..(웩) 그래서 그런지 <라인의 황금>에서 에르다의 출현 장면은 어째 괴테 <파우스트>의 지령(Erdgeist) 출현 삽화를 떠오르게 한다.
원래 땅에 관련된 신이나 정령을 무대 위에 올리려면 맞춰야 하는 조건이 있는 것인지 연출이 일부러 노리고 그런 것인지 우연히 그냥 맞아떨어진 것인지.. 아무튼 하필 저 켄트가 그린 삽화의 얼굴이 떠올라서 에르다 장면동안 현실입갤함..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 지 모르겠네. 재밌게 봤다. 예당 4층이라서 그랬는지 유일하게 기대했던 귀를 가득 메우는 오케스트라 음향 이런 건 꿈도 못 꿨지만 그래도 무대 위의 완결된 판타지를 멀리서 귀여워하며 관전하는 재미가 있었다. 3년동안 차근차근 올라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간 잘 되었으면 좋겠다. 티켓 가격도 님들 마음대로 하시라, 나는 어쨌든 향후 3년간은 쭉 학생일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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