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24 베를리너 앙상블 <독일 비밀계획 Geheimplan gegen Deutschland> 본문
1월 10일, 독일 독립매체 '코렉티브 Correctiv'가 23년 11월 포츠담에서 AfD 주요인사들이 참여한 비밀회의가 독일 내 이민자 및 외국인 추방을 극비리에 논의하는 자리였다는 것을 폭로했음. (전체 내용: https://correctiv.org/aktuelles/neue-rechte/2024/01/10/geheimplan-remigration-vertreibung-afd-rechtsextreme-november-treffen/) 이 폭로가 독일 시민사회에 제법 충격이었던지 여기에 반응해 전국 각지에서 극우 반대 시위들이 우후죽순 일어나는 중.
베를리너 앙상블은 1월 17일, 코렉티브의 이 폭로와 직접적으로 연계해 <독일 비밀계획>이라는 연극을 올렸다. 제목은 직역하면 독일에 반하는 비밀계획이고 막나가게 옮기면 독일 전복계획 아냐? 싶음. ㅋㅋ 빈 폴크스테아터와 거기 소속 연출가가 중심 역할을 했지만, 어쨌든 공연은 베를린에서 올라왔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공연이 코렉티브가 이미 폭로한 자료들을 활용했을 뿐 아니라 아직 폭로하지 않은 자료들까지 공연을 통해 새로이 폭로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언론매체와 연극이 진짜루 '직접적인 연계'를 한 셈. 공연은 라이브로 온라인 스트리밍되었고, 극장 홈페이지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대본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답니다: https://shop.correctiv.org/Geheimplan-gegen-Deutschland-Inszenierung-der-szenischen-Lesung-von-Kay-Voges/SW10117
날짜를 보면 베를리너 앙상블이 얼마나 발빠르게 움직였는가를 알 수 있다. 거의 1주일만에 이 비밀회의가 개최되었다는 사실, 거기 참여한 사람들, 거기서 진행되었던 발표들 등의 자료를 가지고 연극을 만들어낸 거다. 아마추어극단이나 언더, 오프, 자유극단도 아니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극장 중 하나가 이렇게 즉각적으로 AfD가 뭐하는놈들인지 직접 폭로하는 공연을 올렸다는 건, 아무리 AfD를 까는 게 지금 정치적 위험부담 없는 행위라고는 해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JTBC에서 태블릿피씨 폭로했다고 1주일만에 정동극장에서 최순실연극을 올리진 않으니까...
아무튼 이 공연을 다큐멘터리연극의 계열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 안 될 이유가 없다 - 당연히 도대체 이미 온라인으로 날개달린 듯 보도된 자료를 굳이 또 다시 연극으로 올리는 이유를 질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암만 나치까기가 스포츠인 나라라고 해도 실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연극 무대 위에 대문짝만하게 걸어놓고 '여기보세요! 이새끼는 나치새끼입니다!'라고 조롱하며 이 AfD 인사들이 비밀회의에서 했던 연설들과 대화들을 비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재현하는 이런 공연이라면 더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말하자면 굳이 연극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가 첫번째고, 굳이 사실자료들을 일정 부분의 허구와 섞어서 재현할 필요가 있나?가 두번째다. 이건 다큐멘터리연극/기록극 자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질문들인데, 사실과 허구가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였는지도 작품마다 다 다르고 사실과 허구를 어떻게 섞었는지도 다르고 해서 솔직히... 개잼슴... 예를들어 페터 바이스의 <수사>가 실제 재판기록과 실제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왔지만 그 대사들에는 어느정도 작가가 개입해 말을 정제했다면, 롤프 호흐후트의 <대리인>은 허구 인물들을 넣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화는 하이나 킾하르트의 <오펜하이머 건>에 대해 오펜하이머 본인이 항의편지를 보내고 킾하르트가 거기 답장했던 건데 -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기록극의 인물이 된 실제 인간 당사자는 '저딴 게... 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 왜??? 연극이??? 뭐 하는 데 유효한거냐고??? ㅠㅠ 나도 이 질문 그만 하고싶다고!! 나 연극 좋아하는거같은데 자꾸 의심만 품으니까 사람들이 나 연극 싫어하는 줄 안다고!!
이 공연에서는 허구와 사실을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해주고, 대부분 사실에 기반한다. 코렉티브 취재원이 가민워치 차고 몰래 들어가 촬영한 자료들도 있어서, 비밀회의 전체를 다 재현할 수는 없고 필연적으로 구멍들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배우들은 '저는 지금부터 '인물' 게르노트 뫼링(예)을 연기합니다. 인물!!입니다.'나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건 그가 비밀회의에서 실제로 발표한 내용입니다.' 또는 '이 부분은 허구를 섞어 재구성했습니다' 등의 방식으로 제법 명확한 표지를 준다. 그리고 확실히 이 표지를 활용한 유머들도 제법 웃김. 근데 그런다고 고소 안 당하나? 그건 잘 모르겠음;
글이 너무 횡설수설인가 싶은데 뭐 특별히 정제된 글을 쓰고싶었던 건 아니라... 그냥 이 연극 재밌다고 소개할라구... 누군가 어떤 검색어로 들어와서 이 글을 본다면 저 연극 한번 봐보세요 난 나름 재밌게 봤음 1시간 좀 넘는데 그 정도 시간은 투자할 만 한듯. 두시간이었으면 보라고 안했다. 나... 다큐멘터리연극 좋아하네...
별개로 이 연극이 왜 하필 베를리너 앙상블에서 공연되어야했던건지도 좀 궁금하다. 예컨대 왜 폴크스뷔네는 아닌데? 당연히 그냥 아무데나 빈 극장이 필요했을수도 있고 그냥 공연관계자들의 잇속이 거기에서 맞아떨어졌을 확률이 크겠지만... 이게 일단은 급하게 공연하다보니 배우들이 텍스트를 외워서 연기하는 건 아니고 연출된 낭독극이란 말임? 기반이 되는 텍스트가 있는데 그 대본 텍스트에도 공연에서도 공연되는 장소가 베를리너 앙상블이라는 걸 자기지시적으로 유머화하는 대목이 있어서 뭐 또 다른 의의가 있나 그게 궁금했음. 까보면 또 별거아니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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