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2 탈리아 테아터 <돈 카를로스> 감상 / 코로나-스트리밍 본문
연출: 예테 슈테켈
출연: 한스 크레머(펠리페2세), 옌스 하르처(포사 후작), 미르코 크라이비히(카를로스), 리사 학마이스터(엘리사베타), 알리시아 아우뮐러(에볼리)
2020년 3-4월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전멸했다. 유럽의 큰 극장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한국은 몇몇 극장들에서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공연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공연노동자들의 고생길이 훤한 와중에 대형 극장이나 국립단체들에서는 "광활한 네트의 세계"(ㅎㅎ)를 활용해 그동안 극장 자체적으로 녹화해두었거나 예술채널 중계방송을 위해 녹화한 영상물들을 스트리밍의 형식으로 잠재태, 가능태, 현실태의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스트리밍 열풍에 여러 극장들, 단체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었기 때문에 공연감상자 내지 애호가들은 전례없는 풍년을 누리고 있다. ("공연을 영상으로 보는 건 애무 없이 섹스하는 것과 같다"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요즘 어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애무 없는 섹스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섹스를 안 하는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야하는 요즘, 섹스를 아예 안 하는 것도 방법이다.ㅎㅎ)
스트리밍 열풍에 관측되는 흥미로운 오타쿠 생태도 있다. 분명 그 공연의 블루레이, DVD, 풀영상 녹화본 MP4 파일 전부 가지고있을 오타쿠가, 그 공연을 24시간 스트리밍해준다고 하니 꼬박꼬박 챙겨본다. 영상물을 손에 쥐고있으면서도 스트리밍의 제한시간에 쫓겨서 보다니.. 역시 공연의 본질은 그것이 지금이 아니면 사라진다는 '지금 여기'적 특징에 있는 것인지? 재미있음. 나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레나 버전 48시간 틀어준다길래 풀영상도 있고 DVD도 있는데 헐레벌떡 봄.. 대체 왜 그러는거냐. 아무튼 덕분에 <적벽>도 보고 오페라 스트리밍도 이것저것 뒤지고 즐거운 덕후생활을 즐기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의 탈리아 테아터는 지난 4월 14일부터 19일까지를 '쉴러 주간 Schillerwoche'로 정해, 그간 탈리아에서 공연되었던 쉴러 작품의 녹화본들을 24시간 스트리밍해주는 특집을 진행했다. 그 시작이 니콜라스 슈테만 연출, 엘프리데 옐리넥 작의 <울리케 마리아 슈투아르트 Ulrike Maria Stuart>인 건 웃기지만(옐리넥이잖아! 쉴러가 아니라!ㅋㅋㅋ) 여튼 이어서 니콜라스 슈테만 연출의 <군도>, 슈테판 키밍 연출의 <마리아 슈투아르트>, 예테 슈테켈 연출의 <돈 카를로스>가 스트리밍되었다. 후끈후끈한 기획이었습니다. 마리아 슈투아르트 빼고 세 편 다 챙겨봤다.
블로그에 감상은 <돈 카를로스>부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올려야징. 사실 감상이랄건 없고 그냥 봤다구 흔적 남겨둘라구 쓰는 것임.. 딱히 연출이 미친짓 해놓은 게 없고 드라마에 아주 충실하게 올려놔서 막 분노할 거리도 없다.
예테 슈테켈의 연출은 충실하게 드라마 구조를 따라간다. 오페라의 단순함에 비해 쉴럿놈은 <돈 카를로스>를 복잡한 간계들 + 포사 후작이 죽음으로 말려들어가는 모든 좆망장치들(편지들, 에볼리, 카를로스의 장갑, 보석함, 위조편지, 글씨체, 펠리페의 의심 등등)로 엮어놨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따라가기가 어렵게 됨. 드라마에 충실하려면 무대를 어떻게든 전환해서 공간을 바꾸어줘야 하는데 공간을 바꾸다보면 흐름이 끊겨서 앞에 어떤 간계, 어떤 좆망장치가 있었는지 헷갈리게 된다. 슈테켈은 회전무대를 사용해서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공간을 영리하게 바꾼다. 모든 드라마가 궁 안에서 이루어지고있으니까 실내 구조의 회전무대는 아주 탁월한 선택.
몸을 사리지 않는 배우들의 연기는 종종 위험해보임. 배우들의 에너지가 넘치는 건 관객 입장에서야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요즘은 잘 모르겠다. 알아서 안전하게 하는 거겠죠?
가장 중요한 거. 돈칼은 역시 극의 중심 펠리페가 살아야 공연 전체가 산다. 한스 크레머의 펠리페2세도 만만치 않았다. 마드리드 궁 안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노련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포사라는 양아치를 만나 나한테 이런 놈은 네가 처음이야를 겪고 사랑의 불안에 떨게 되는 노인공격 관상의 왕..... 좋았음.ㅋㅋㅋㅋ 이 프로덕션 노선이 이견의 여지 없이.. 펠리페 마음 가지고 노는 나쁜남자(ㅋㅋ) 로드리고라 캐릭터가 확고해서 더 그런진 몰라도ㅋㅋㅋ.
로드리고가 펠리페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노느냐면?
3막 10장 왕과의 독대 장면 마지막에서는 이렇게.
에볼리가 심어놓은 의심의 불꽃 수습할 때는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놈이 대놓고 이렇게 구애하는데 우리 60살 넘은 폐하께서 안 넘어가고 배길 수 있겠음? ㅋㅋㅋㅋㅋㅋㅋ 참내.. 저렇게 꼬셔놓고 로드리고 마음은 무조건 카를로스 거임 다 카를로스 살리려고 펠리페한테 꼬리치는거임 완전 챙럼이 따로없음. 참내....... 여기에 넘어간 폐하는.. 카를로스가 발광할땐 그 배신감에 영혼의 빛이 꺼진 것 같았는데.... 그러고 나선 진짜 금방 정신차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그를 사랑했다. 정말 사랑했어. 그에게서 나는 새로이 떠오르는 아름다운 아침을 보았다. 그는 내 첫사랑이었다." 읊으며 무대 구조물에 키스하지만.. 누구보다 정신은 멀쩡해보이시거든요. 약간 지나간 사랑은 마음에 묻고 나는 계속 살아간다의 마인드로. 모든걸 불살라 사랑했고 그랬기에 후회는 없다 마인드롴ㅋㅋㅋ 이런 펠리페 캐해석은 오타쿠적으로는 별로 파고싶진 않은데 (너무 건강하잖아 오타쿠는 병든것만 좋아한다고) 여튼 나는 모든 종류의 돈카를로스를 사랑할수밖에 없어서 이런 노선도 괜찮음. 로드리고가 종교재판장이랑 손잡고 카를로스랑 펠리페 쏴죽이는 엔딩만 아니면 뭐 어떠냐?
아무튼 넘 재밌었음. 이걸로 확실해진거임. 난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 그리고 원작에 충실한 걸 너무 좋아해. 재현, 드라마, 5막구조, 일관된 줄거리 그리고 비극! 오래오래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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