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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루살카>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10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루살카>

허튼 2019. 3. 1. 19:17


지휘: 토마스 하누스

연출: 마틴 쿠세이

출연: 크리스티네 오폴라이스(루살카), 귄터 그로이스뵈크(물의 요정), 야니나 배클(예치바바),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그트(왕자), 나디아 크라스테바(외국 공주) 



  2010년 공연을 지금에서야 리뷰하고 있으니 쿠세이가 인어공주 전설을 21세기 실제 범죄사건의 가해자와 그 피해자의 이야기로 바꿔서 어쩌구 하는 얘기는 그만 해야겠다. 그런데 이 얘기를 안 하면 이 프로덕션의 <루살카>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2010년 뮌헨에서 이 공연의 리허설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동물권 단체로부터 엄청난 항의가 일었다. 쿠세이 또라이놈과 뮌헨 슈타츠오퍼 총감독 니콜라우스 바흘러가 이 프로덕션에서 매 공연마다 한 마리씩 진짜 사슴을 도축 및 정육 회사에서 사다가 무대 위에서 진짜 사슴의 가죽을 벗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프리미어까지 포함해서 12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공연을 위해서 죽은 사슴 12마리가 도축장에서 신선하게 구매되어야 했다. 당연히 쿠세이의 도발은 격렬한 항의에 의해 중단되었고,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는 얌전히 플라스틱 모조 사슴을 사용하기로 발표했다.

  쿠세이에겐 변명거리가 있었다. '예술가의 자유' 같은 식상한 얘기는 접어두더라도, 이 작품, 특히 이 프로덕션에서 루살카는 범죄자의 딸로서 평생을 지하실에 감금당한 채 친부로부터 강간당해 온 피해자이며 사슴은 이 루살카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루살카-사슴의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꺼내지는 거부감 드는 장면은, 그것이 현실적일수록 세계의 안전하지 않은 연약한 면, 쉽게 깨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쿠세이의 논지다. 사슴은 중요한 모티프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짜 사슴을 사용해야 한다는 쿠세이의 주장은 쿠세이 자신에겐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쿠세이는 그의 기획이 거부당한 것에 꽁했던지 DVD 부가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웃기지, 우리 지금 작품에선 아동학대, 강간 얘기 하고 있는데 작품에 대한 모든 토론의 초점은 저 병신같은 사슴에 꽂혀 있으니."


  연출가 놈이 이따위 재수없는 소리를 해대니 총감독은 조금 덜 재수없(지만 여전히 재수없)는 말로 쿠세이를 이어받는다.


  "이 모든 사슴 이야기는 '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재미있죠. 우리는 현실 사회에서 매일같이 길러지고 먹히고 낭비되고 버려지는 수천 수만의 동물들에게선 눈을 돌린 채, 마트에 가서 크리스마스에 뭘 구워먹을지 고르는 삶을 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무대 위에 딱 한 마리의 동물이 등장하니까 사람들은 죽을 만큼 놀라는거죠. 왜? 왜냐하면 관객들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잊으려고 애쓴 것을 갑자기 마주해야만 하니까. 이건 섹슈얼리티, 에로틱한 유혹, 폭력 등의 주제에도 마찬가지예요. 이것이 무대의 기능이고, 무대는 그래야만 하죠."





  저런 마인드에서 나온 것들이 쿠세이 놈의 연출들일 것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아동에게 가해지는 폭력, 섹슈얼리티, '정상 가정'이라는 타이틀이 사회에서 휘두르는 권력, 욕망, 이성 등. 아름답지만 안전하지는 않은(쿠세이의 뮌헨 레지덴츠테아터 상임으로서의 기간동안의 작품들을 엮은 책 제목은 'Die Erde ist gewaltig schön, doch sicher ist sie nicht'이다) 세계의 이면들을 끊임없이 무대 위로 표면의 세계로 끌어내고 폭로해내는 것이 쿠세이의 연출적 사명일 테다. 세계는 아름답지만 그 이면은 안전하지 못하다.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위험함을 지니고 있다.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추어진 불안정한 것들을 무대에 보여주는 것, 그것이 역겹거나 거북할지라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 쿠세이의 연출적 사명이다. 위에 올린 두 장의 캡쳐는 이 말을 한번에 이해하게 해준다. 하여간 쿠세이 정상가정 싫어하고 그 정상가정에서 희생되어 철저하게 파먹히는 여성 조망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쿠세이는 이 프로덕션 <루살카>에 다음 주의를 덧붙인다. "우리는 실제 범죄 사건으로 <루살카> 스토리를 각색함으로써 새삼 아동성학대자를 다시 비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건 '커먼 센스'인데 왜 굳이 또 그러겠는가. 너무 신경 쓰지 말라. 중요한 것은, 세계의 이면이다."


  쿠세이 망할 놈이 재수없기는 해도 자신이 의도한 바를 작품 안에 꼭 맞게 끼워맞추는 능력은 탁월하다. 이런 끔찍한 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인어공주 전설' 따위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면서 슬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

  스토리가 끝으로 달려가고 물 요정/범죄자가 경찰에 연행된 뒤 그의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던 정령들과 루살카는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정신병원에서 트라우마에 의한 이상행동을 반복하는 그들 여성들은 동화와 전설을 노래한다. 자연스럽게 '동화' <루살카>는 이 여자들이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잊도록 하는 상상적 기제로 완성된다. 노래 가사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내용과 무대 위에서 시각적으로 진행되는 작품 내부의 심층적 내용이 엇나가있는 듯 보이면서도 하나로 합쳐지는 중요한 합창이다.



  이렇게 무대 위에 이중적 세계가 세워진다.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세계, 폭력적이면서도 수동적인 세계. 이 이중성은 극의 여러 부분에서 등장한다. 물요정은 일면 딸을 학대하는 범죄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자에게 상처받은 딸을 보듬어주려 하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예치바바는 물요정과 부부로, 물요정이 딸을 학대하고 지하실에 여자들을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공범이기도 하지만 한편 딸의 탈출을 도와주고 딸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루살카는 자유를 찾아서 아버지의 지하실을 탈출하지만, 바깥 세계에서 만난 그녀의 사랑은 그녀를 배반하고 모욕을 준다. 지하실은 지옥같았지만, 바깥 세계에서 상처입은 그녀가 돌아갈 곳은 지옥같은 지하실 뿐이다. 모순 덩어리의 세계 앞에 관객은 던져진다.

 

  하지만 여전히 왕자 역 가수 포그트의 질문은 남아 있다. 이 모든 짓거리가 극악한 범죄나 범죄자에게 발언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피해자의 마음을 진정 알 수 있을까? 이 무대는 2차가해가 아닐까? 쿠세이가 계속 지고 갈 문제겠지. 암튼 쿠세이 쌉놈 너무너무 재수가 없다.


의상디자이너가 말하는 쿠세이의 본질



  연출 이야기는 이 쯤 하고, 오폴라이스는 정말 대단한 가수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비틀거리며 걷는 연기, 몸을 사리지 않는 움직임, 계속해서 무대 위에 물에 푹신 젖은 채로 머무르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을 거부하지 않는 도전정신, 거기에 완벽한 가창까지 보여준다. 대단.....

  귄터 그로이스뵈크는 <장미의 기사>에서 옥스 역으로 처음 봤는데 연기를 정말 너무 잘한다. 연출가의 의중에 덧붙여 자신의 캐릭터 해석도 확고해보이고, 자꾸 관심 가는 가수 중 하나임. 특히 자전거덕후라는 점이 나를 설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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