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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오페라 바스티유 <맥베스>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09 오페라 바스티유 <맥베스>

허튼 2019. 3. 2. 18:42


지휘: 테오도어 쿠렌치스

연출: 드미트리 체르냐코프

출연: 디미트리스 틸리아코스(맥베스), 비올레타 우르마나(맥베스 부인), 페루초 푸를라네토(뱅코우)



  얼마 전에 현대 드라마 전공하는 선배에게 "연극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애무하지 않고 섹스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연극의 현장성을 중요하게 보는 입장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한국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양질의 영상물 절대 못 잃음ㅋㅋㅋ 억울(?)해서 그런지 자꾸 생각나는 말이다. 

  하지만 공연의 영상물은 또 다른 장르의 예술이지 않나 싶다. 오페라 블루레이 커버를 보면 항상 연출이나 무대디자이너 이름 밑에 촬영감독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고, 메인 크레딧에 촬영감독의 이름이 올라간다. 몇몇 레지테아터의 연출가들은 그들이 직접 촬영까지 맡기도 한다. 그만큼 촬영이 공연 영상을 만들 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어쩌면 공연 연출 자체의 천재성을 촬영이 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영상물의 촬영은.... 무대의 문제인지 감독의 문제인지 알 수 없으나 연출의 진가를 보여주기엔 무리가 좀 있었지 않나 싶다. 종종 흔들리는 화면, 영화를 찍는지 공연실황을 찍는지 헷갈린 것 같은 부분들, 연출 자체가 어수선해보이도록 만드는 카메라워크 등은 영상물 감상에 카메라가 큰 방해가 되었다.


  이런 부분을 차치하면 체르냐코프의 연출은 재미있는 부분이 꽤 있었다. 특히 맥베스의 스토리를 한 나라의 왕권다툼에서 한 마을의 알력다툼 수준으로 축소시킨 건 호불호가 갈릴만한 시도이다. 거대서사 좋아한다고 욕먹는 내겐 그리 와닿지 않았다. 맥베스의 가사, 음악, 스토리는 한 마을의 이장 쯤 되어보이는 자리를 위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체르냐코프는 물론 맥베스의 이야기가 우리의 주변에도 흔히 퍼져있을 수 있으며,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고, 피부로 와닿는 직접성을 강조하고 싶었을 테다. 그래서 뱅코우의 유령도, 8명의 선왕의 유령도 삭제되어야만 한다. 막이 시작할 때마다 마을의 위성사진을 줌 인 하면서 공터나 맥베스의 집으로 공간을 한정해준다거나, 부유하지만 어쨌든 평범한 가정집의 응접실을 보여준다거나 함으로써 체르냐코프는 이 권력을 향한 이야기의 일반성과 편재성을 강조해낸다.

  과연 이 컨셉은 잘 된 레지테아터에 속할까, 아니면 실패한 레지테아터에 속할까? 체르냐코프가 무대 위의 공연을 통해서 작품의 현실성과 편재성을 살리고 싶었다면, 그 때 공연되어야 할 작품은 굳이 <맥베스>가 아니어도 되었을 것이다. ㅠㅠ 고전적 비극의 주인공은 왜 영웅이나 귀족, 왕이어야만 할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 아닐까? 


  하지만 이런 얘기는 고리타분하고, 몇백년 전부터 이미 수없이 많이 비판받아왔으니까 이제 그만 해도 좋겠다. 지금은 귀족도 없고 저딴 얘기는 꼴보수 고전주의자들이 한 얘기니까. 뱅코우 살해장면은 신선했는데, 코러스-군중을 아주 탁월하게 사용한다. 합창단이 뱅코를 죽이자는 노래를 그 당사자 앞에서 가사가 그에게 전부 들리도록 부르는 것은 제법 좋았다. 이로 인해 뱅코우의 공포심과 불안감이 극대화되고, 마지막에는 휩쓸리는 군중 사이에서 순식간에 살해당한다. 하지만 뱅코우는 죽기 전에 이 군중들에게 맥베스가 덩컨을 죽인 사실을 말했고, 군중은 이제 맥베스로부터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둔다.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코러스-군중의 시선 처리는 잘 사용할수록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시선들은 종종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시선들이 뱅코우에게도 맥베스에게도 던져져 그들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뱅코우에게는 공터에서, 맥베스에게선 마녀의 예언 씬이 끝나고 나서. 




  체르냐코프의 연출에서는 특이하게도 오케스트라의 음악과 가수들의 노래 외에 오페라에서 쉽게 듣기 힘든 인간의 여러 감탄사들이 많이 들려온다. 비명, 웃음, 울음, 오열 등 터져나오는 인간의 소리는 노래를 하는 것도, 듣는 것도 방해한다는 이유로(실제로도 그렇다) 오페라에서는 최대한 자제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체르냐코프는 이런 소리들을 적극 활용한다. 이 역시도 드라마의 현실성을 관객들에게 체감시키는 데 큰 몫을 할 테다. 



  음.. 그리고 마지막 장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는데, 사실 난 맥베스를 정말 좋아하지만 마지막 합창에서의 베르디 유치뽕짝은 참을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마지막 부분을 과감히 삭제해버린 크리스토프 로이 버전이 좋았다. 체르냐코프는 마지막의 행진곡 풍의 합창에서 맥베스의 집 벽을 허물어버리는 코러스를 보여준다. DVD 보너스 영상 인터뷰에서 체르냐코프는 이 장면을 폭력은 반복되고 맥베스를 죽인 군중의 벽 허물기는 악인을 단죄하는 혁명의 승리가 아니라 야망과 폭력의 분출에 불과하다고 해석한다. 이런 얘기는 8선왕 장면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이 맥베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아닌 뱅코우의 아들인 것과 겹쳐진다. 이 연출이 2009년 작품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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