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2 메트 <라 트라비아타> 감상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12 메트 <라 트라비아타> 감상

허튼 2018. 1. 7. 22:17

********클알못 오알못 후기 주의********

05버전을 너무 많이 봐서 길게 쓸 말은 없으나 그냥 봤다는 기록이나 남겨놓자 싶어서 쓰는 포스팅.




지휘: 파비오 루이지

연출: 빌리 데커

출연: 나탈리 드세이(비올레타), 매튜 폴렌차니(알프레도),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제르몽)



이제 이름만 봐도 지겨운 사골 프로덕션인데 암만 생각해도 갓갓연출이라 또 봤다. 또 봐도 갓갓연출이고 같은 연출로 2017년 햄슨 제르몽 영상도 올라와 있네..... 햄슨이 05년 영상에는 문어머리 하고 나오지만 17년엔 머리까지 예뻐서 이것도 봐야 함......... 이 작품을 영원히 같은 연출로만 보고 있다. 혹시 이거 말고 다른 연출로 추천하고 싶은 영상물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주저없이 찔러주세요.



2년전인가 3년전인가 <오페라의 이해와 감상>이라는 일반교양을 들었다. 그 때는 오페라의 오자도 몰랐고 지금보다 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단지 그 수업이 꿀교양이라고 해서 갔을 뿐이었다. 정말 백지 상태로 들으러 간 거라, 교수님이 본인 최애 가수라며 브린터펠 호프만 이야기를 보여줬을 땐 와 저사람 엠마톰슨이랑 스위니토드 했던 사람 아녀?!?!?! 저사람 오페라가수였어?!?!?!??! 뮤배가 아니라?!?!?!? <<<이랬었다.


아직도 기억 나는 건 그 수업 교수님이 세기의 얼빠였다는 것. 얼빠이신 분 최애 가수가 터펠인 건 좀 웃기긴 하지만 터펠은 귀여우니까요. 오페라 파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얼빠일수밖에 없는 것인지 이 교수님은 매 수업마다 오늘 수업할 작품의 DVD를 두 개씩 챙겨오곤 했다. 서로 다른 프로덕션의 DVD 두 개를 학생들한테 보여주고는 "이거는 나오는 가수들의 평균 외모가 좋고요, 이거는 클래식하게 잘 뽑힌 버전인데, 저는 잘생긴 게 좋으니까 이걸로 틀게요." 하고 가랑차 나오는 카르멘 틀어줬던 것 같음. 거의 모든 작품에 그렇게 두 개씩 챙겨오셔서 잘생긴사람걸로 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본인이 정하실거면 왜 두 개 가져오신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클래식하게 잘 뽑힌 건 높은 확률로 쓰리테너 중 한 사람이 나왔겠지.



그러고는 PPT에 섹시한 지오반니라면서 호주 오페라하우스 이 프로덕션 사진을 올려두시던 분이었는데. 교수님 저게 정말 섹시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무튼 빌리데커의 05짤츠 라트라비아타도 교수님이 비올레타가 그렇게 예쁘다며 영업을 하셔서 수업시간에 보게 됐더랬다. 불경한 제자는 그 영상을 보고 네트렙코에 치이긴커녕 햄슨과 제르몽에 낚여서 헉헉 아버님 ;; <이 길을 걷게 되었지만..

이 얼빠 교수님은 기말고사의 마지막 문제도 넘 얼빠같이 내셨음. 문제가 "지금까지 수업 중에 배운 오페라 남자 캐릭터들 중 가장 사귀고 싶은 캐릭터를 쓰고 이유를 서술하시오." 였다. 교수님 교수님같으면 오페라 남캐랑 사귀시겠어요?;;;;;;;;;;;; 하나같이 멀쩡한 놈이 없는데;;;; 나는 사실 제르몽 쓰고 싶었음. 얜 K국의 노답 시부모와 핸냄 기질이 있긴 하지만 여자 패는 사람은 아닐것같아섴ㅋㅋㅋ 근데 얘는 유부남이니까 그때까지만해도 PC충이었던 나는 차마 시험 답안지에 "유부남과 사귀고싶어요!!!!!!!!!!!"라고 쓰지는 못하고 고민 끝에 라다메스를 썼다. 그나마 제일 멀쩡한 놈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학기에 동일 수업을 들었던 선배는 오페라 남캐에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 암네리스를 써서 냈다고 했다. 나도 (가랑차 마스크의)에볼리 써 낼걸..


그렇게 내 오페라 입덕은 시작되었는데 그 후에 어떻게 본격적으로 파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음. 아마 1년 뒤 독문과 전공을 듣게 되고 실러를 파고 돈 카를로스를 파면서 13짤츠 돈카를로에 앗 그때 그 제르몽이 여기 포사 후작이라고?! 이 루트로 본격적인 입덕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프로덕션이 내게는 그런 프로덕션이란 말을 너무 구구절절 썼네.



흐보옹 본진이신 트친분이 이 영상 제르몽은 소극적 개새끼인 보통 제르몽과는 달리 대놓고 개ㅆ새끼라고 하시길래 처음엔 비올레타라도 패는 줄 알았음. 근데 평범하게 비올레타 꼬시러 온 중년남성 K-시부모였다. 오히려 알프레도를 인정사정없이 후려패길랰ㅋㅋㅋㅋㅋㅋㅋ 아!! 이 사람은 된사람이다!!! 라는 내적환호가 터져버렸다. 성매매충 친구 둔 남자는 높은 확률로 성매매충이라더니 정말로 성매매하러 와서는 자기 뇌내 창녀구원서사 청사진을 세우다가 맘대로 안되자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알프레도보단 적어도 겉으론 멀쩡한 사람 코스프레하는 제르몽이 훨씬 나아보임.

베르디가 제르몽 캐릭터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제르몽에게 성적/로맨스적 끌림을 느끼도록-아니면 적어도 비올레타와 제르몽 사이의 그것을 느끼도록' 이라는 항목을 넣지 않았다면 제르몽이 이렇게 매력적일리가 없다.









정작 이 영상에서의 비올레타 본인은 드세이의 캐해석인건지 그냥 내 필터가 미친듯이 작동되었던 건지 죽음과 가장 마음아픈 케미를 보여줬다. 





사랑하는 알프레도와도 행복해질 수 없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그냥 아버지처럼 안아달라 말하는 것도 가슴 시리게 비참했을 거고. 기쁨에 살고 즐거움에 살 것이라 되뇌여보지만 죽음의 분침은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비올레타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알프레도가 자신에게 돌아와 파리를 떠나자고 할 때 드디어 비올레타는 행복해질 수 있지만 야속하게도 죽음이 그것을 허락해주지 않는 것도.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고립된 처지에서 비올레타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야속한 죽음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친 얼굴로 죽음의 품에 안기는 비올레타. 이 장면에서 감정을 엄청나게 건드리더라. 빌리데커의 연출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진짜 갓갓연출ㅠㅠ 2막 마지막에 알프레도가 폭주해서 시계 위에 널부러진 비올레타에게 돈 뿌리는 장면이 워낙 폭력적이어서, 이 지친 비올레타가 그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브린디시랑 투우사얘기 합창때랑 돈뿌리는장면에서 앙상블이 무리지어 주인공들을 궁지로 몰아넣는 연출 진짜 너무 무서움. 이거는 폭력을 넘어선 공포다. 그걸 보고있으면 내가 다 고통스러워짐. 트리거워닝이라도 달아놔야하는 거 아닌가 몰라.



이걸 보면서 베르디가 은근 여캐를 잘썼다는 생각을 하게 돼버렸는데 내가 뮤지컬을 체스같은 걸 파다 이 장르로 넘어와서 상대적으로 그래보이는건지 객관적으로도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베르디는 레이디맥베스 잘 살린것만으로 까방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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