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에발트 팔메츠호퍼 <결혼하지 않은 여자 die unverheiratete> 인터뷰 본문
어쩌다보니 연달아 두 명 인터뷰를 번역하는데 둘 다 의도적으로 지 연극텍스트 제목에 대문자 안 쓰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정치적 입장표명인데 솔직히 미안한 말이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싶기는 함... 그리고 팔메츠호퍼는 또 요즘은 잘만 대문자로 씀.
에발트 팔메츠호퍼는 1978년생 오스트리아 작가로, 이제 벌써 많이 알려져 더이상 !젊은! 작가 축에는 못 끼는 듯 하다. 그래도 새로운 세대의 독일 드라마에 포함되는 대표 작가고, 신학-철학적 베이스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이라서 다른 현독드 작가들보다 연구논문의 대상이 되는 빈도가 꽤 많다. 한국에도 소개되면 좋겠지만 번역하기 결코 쉽지 않은 언어로 글을 써서 과연 누가 번역을 해줄지... 근데 옐리넥도 누군가는 번역을 해주는데 팔메츠호퍼도 언젠간 누군가 하겠지.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팔메츠호퍼 작품들 중에서도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고 또 논문에도 들어가게 될 것 같아서 인터뷰 하나를 옮겨놓는다. 중반까진 내용이 괜찮은데 끝으로 갈수록 질문이 이상해짐... 그래도 이 사람이 어떤 바탕 위에서 이런 글을 쓰는지는 잘 보인다. 그리고 사회부적응자처럼 생겼는데 사회복지과에서 계속 알바했다는 게 신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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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트 팔메츠호퍼: 기억 속에서의 방황
https://www.diepresse.com/4616195/ewald-palmetshofer-wanderschaft-in-den-erinnerungen
에발트 팔메츠호퍼 Ewald Palmetshofer는 고전 작품을 새로이 쓰는 작가로, 이번에는 엘렉트라 신화를 수용해 오직 여성 배우만을 위한 작품을 만든다.
그는 <햄릿>, <파우스트> 그리고 쉴러의 <군도>를 패러디하거나 개작해 왔다. 12월 14일 아카데미테아터에서 초연되는 오버외스터라이히 주 출신 작가 에발트 팔메츠호퍼의 새 연극텍스트는 엘렉트라 신화에 관한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 die unverheiratete> 안에는 삶의 현실과 시대상이 서로 뒤얽혀 있다: "저는 오직 여성 배우만을 위한 텍스트를 쓰고 싶었고, 이 제목은 세 명의 주인공들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죠"라고 팔메츠호퍼는 설명한다. “엘렉트라 신화와 오레스테스에 관해 조사를 하다 보니 이 이름이 번역될 수 있는 다른 가닥들이 있더군요. 그다지 증거가 확실한 주장은 아니었습니다만 엘렉트라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1978년 린츠에서 태어난 - 연극전문잡지 <테아터 호이테 Theater heute>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비평가들에 의해 2008년 올해의 젊은 작가로 선정된 - 이 극작가는 나아가서 노동자 계급 가정에서의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 연극을 처음 보았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쉴러의 <마리아 슈트아르트>를 정치범과의 대면으로 생각했었다.
당신의 새 연극텍스트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나치 시기의 전범과 그녀의 후손 두 세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노부인의 시선을 통해 그녀의 기억을 헤매는 설정이지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과거와 현재가 서로 침투해 들어오는 법입니다. 노인이 쓰러지고, 그녀의 딸이 방바닥에서 노인을 발견해 구급차를 부르죠. 병원 안에서 노부인의 경험들과 사람들은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었던 세월과 구분할 수 없게 모호해집니다. 노인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어떤 시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문장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게 반드시 치매 증상에 관한 것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겠지요.
당신은 리허설에 참석하는 작가이고, 당신의 텍스트로 어떤 무대가 꾸려지는지 보고는 경악하는 작가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네. 저는 Elisabeth Orth, Christiane von Poelnitz, Stefanie Reinsperger를 포함한 총 7명의 여성 앙상블이 제 텍스트를 발화하는 방식에 감동했습니다. 제가 리허설에 전부 참여하지는 않아요. 저는 연출가 로버트 보르크만 Robert Borgmann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는데, 그는 베를린 샤우뷔네에서 2008년에 진행한 "독일 60년"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 텍스트를 상연했었지요.
당신은 어떤 경로로 발굴된 작가인가요?
안드레아스 벡 Andreas Beck을 통해서요. 그는 함부르크에서 비엔나에 이르기까지 젊은 작가들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2006년에 부르크테아터 Burgtheater에서 진행된 워크숍에 참여했어요. 벡이 빈 샤우슈필하우스 Wiener Schauspielhaus에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직후, 그는 제게 극장 시즌 개막을 위해 <햄릿>과 관련된 텍스트(<햄릿은 죽었다. 중력은 없다>)를 써줄 수 있는지, 그리고 첫 번째 시즌에 극장 전속작가가 되어줄 수 있는지 물었지요.
극작 스타일을 어떻게 발전시키셨나요?
외부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은 언제나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햄릿은 죽었다>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 이르기까지 제 언어가 바뀌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의 제 [극작] 원칙은 생략이었지만, 이제는 언어의 간결함과 리듬에 더 가깝습니다. 지금의 작품에는 다소 악보같은 면모가 있지요.
계속해서 엘프리데 옐리넥 Elfriede Jelinek의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극작을 하시나요?
옐리넥의 후기 텍스트는 확고한 드라마 형식이 아니라 언어적 재료 sprachliches Material입니다. 그 반면에 저는 단순히 언어에만 천착하거나 언어재료들만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작품의 드라마적 구조를 개발하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저는 좀 유보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요, 이 또한 스스로 그리 잘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글쓰기가 어려우신가요? 극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시나요?
저는 꽤 느리게 작업합니다. 언어를 차치하고서라도 언제나 기능적 원리, 즉 연극 작품이 작동되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각 작품들마다 규칙을 새로이 발명해야 하고, 이 규칙은 반드시 내용에서 비롯되어야만 합니다.
당신의 작품들은 무대 위에서 작동하기는 하지만 독서하기엔 어렵습니다. 새 작품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포함해서요. 의도된 것인가요?
제 작품은 레제드라마가 아니라, 무대를 위해 기획되었고 또 만들어졌습니다. 말하기 Sprechen를 위해서요.
어릴 적 연극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저는 오버외스터라이히 주립 극장에서 <마리아 슈트아르트 Maria Stuart>를, 린츠의 피닉스 극장에서 <빈 숲 속의 이야기 Geschichte aus dem Wiener Wald>를 보았습니다. <마리아 슈트아르트>는 제가 분명히 기억할 수 있지요. 그 작품은 쉴러가 현대에도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린 제게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던 아주 멋진 현대화 연출이었습니다. 메리 스튜어트는 공연 내내 무대 위 감옥 안에 있었고, "정치범"이라는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었죠.
당신은 말하자면 시골에서 고급 문화, 고급 문학으로 온 셈입니다. 가족 중에 예술가가 있습니까?
저는 노동계급 가정 출신입니다. 제가 예술과 처음 접한 건 피아노를 통해서였고, 9살에 시작했지요. 그리고 나서는 교회오르간으로 갈아탔습니다. 누나와 제가 악기를 배우는 게 저희 부모님께는 중요한 일이었죠. 빈에 갔을 때 음악을 그만두었습니다. 저는 독문학과 연극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문학과 연극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이해할 지적인 도구가 제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 당시 <빌헬름 텔>이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속 폭군 살해에 대한 강의가 있었고, 저는 우선 아는 게 많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학기 후에 가톨릭 신학, 철학, 심리학으로 전과했습니다. 교직을 염두에 두었고요. 저는 긴 시간동안 대학을 다녔고, 졸업했을 때에는 이미 극작가였습니다.
종교가 있나요?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어떤 철학자들이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나요? 그들의 어떤 점이 당신의 작업에 중요했습니까?
현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 Alain Badiou가 한동안 중요했습니다. 그는 해체 이후 다시 사상의 전체 건축물을 설계하려고 시도했고, 이 주제는 라캉이나 지젝에게도 유효했구요. 바디우는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지젝을 경유해 알려진 사람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념을 예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참여란 무엇인지, 정치적 실천은 무엇인지,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빼앗아 올 수 있고, 포스트모던에 맞서서 구원해내야 하는 진리개념이 있는지 등의 질문이요.
그런 개념이 있습니까?
바디우는 진리를 절차 Prozedur로 이해합니다. 이는 우리가 견지해야 할 본질적인 사상입니다. 예를 들면 평등은 정치적 실천을 촉발하는 정치적 진리라는 거죠.
당신은 정치적으로 어떤 입장입니까? 우리의 정치 체제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2012년 아카데미 극장에서 상영된 제 작품 <군도. 빚의 생식기 räuber. schuldengenital>를 통해 저는 우리 부모 세대, 즉 볼프강-쉬셀-세대나, 크리스토프-라이틀-세대의 정치적 유산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확장과 이윤의 극대화는 미래에 적합한 정치적 격언이 아닙니다. 이를 넘어서서, 세계화의 맥락에서도, 공생에 대한 이념의 형식이 있어야 합니다.
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원 분배에 대한 투쟁으로 인해 종말론적인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종말론자가 아니며 세상의 종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은 또한 현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든 저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단순히 관리하는 것이나, 현재를 미래로 단순히 확장하는 것에는 믿음이 거의 없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물질주의, 소비와 성공을 극대화하는 데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오히려] 부르주아적 보수주의로 전향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진되는 한계까지 일을 하고요. 이에 맞서서 삶에 대한 다른 관념으로의 전환이 주어져야 합니다. [노동]유연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요. 부모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경험했던 경제적 성장을 이제는 달성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불확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그 실망을 어느 방향으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굴욕적인 세대입니다. 빈 선거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유럽에서는 우익으로 치우치려는 움직임이 강하고, 민족주의가 다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걱정스러워요.
이에 맞서는 전개나 균형추는 무엇일까요?
타인을 댓가로 자신을 부유하게 만드는 데서 벗어나서, 행복한 삶을 위해 무엇이 좋고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줄 좌파 스펙트럼에서의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1990년대에 빈으로 오셨죠. 도시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1996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에서 두 달 동안 일했습니다. 그 때 체첸 전쟁을 배경으로 모든 격변을 겪은 대도시를 경험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격차도 뚜렷했고요. 모스크바에는 전체 인구 중 터무니없이 적은 일부를 위해 서구의 거의 모든 제품들이 있었습니다. 이 경험 이후 빈은...
...아주 안락했나요?
빈은 확실히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빈 역시도 아주 많이 변했지요. 저는 원래 오타크링에 살았는데 집값이 너무 비싸져서 이사하게 되었죠.
운동은 좋아하시나요?
항상 실패합니다. 전 수영과 달리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 개를 키우고 있어서 운동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개가 제 하루를 잘 조직해주죠.
요즘 사람들은 가족 대신 개를 키우는 것 같아요.
개가 가족을 대체하거나, 대화 또는 이성적인 논쟁을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개를 키우는 것은 제게는 어린 시절의 흔적이지요. 집에서 개를 키웠거든요.
이제 부모들은 아이들이 미술계에 뛰어든다고 하면 예전보다 더 긍정적이거나 관대하게 반응합니다. 예전에는 제발 돈을 벌거나 최소한 안정적인 뭔가를 할 수는 없는거냐고 했잖아요.
부모와 자녀는 서로 대화하고 그걸 통해서 양쪽 모두 배우는 게 있습니다. 제 세대에는 그 누구도 은퇴 연금을 받을 만큼 일할 수 있을지, 또는 도대체 은퇴 연금이라는 게 있기는 할지 확실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어디로 나아가야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십대 때는 마치 방향을 아는 것처럼 꾸며내야 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없었죠. 성인이 되니 체면을 지키면서도 모른다는 걸 인정할 수 있고요.
극작가가 아니었다면 어떤 다른 직업을 가졌을 것 같은가요?
저는 사회복지과에서 지속적으로 일하면서 학비를 벌었습니다. 장애 청소년 시설,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이나 노숙자를 위한 시설 등이요. 극작가 대신 그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돌봄에는 참을성과 온화함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저는 인내심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화함과 자애로움만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어느정도는 명확성이 필요하고, 처음에는 그저 일에 치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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