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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1826) 본문

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는 것들/번역

괴테,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1826)

허튼 2022. 2. 6. 21:28

 

 

* 참고:

독일 위키  https://de.wikipedia.org/wiki/Bei_Betrachtung_von_Schillers_Sch%C3%A4del

장제형: 테르치네 운의 독일적 실현 - 괴테의 「쉴러의 유골」과 『파우스트』를 중심으로. 괴테연구 제29권. 2016. 53-79.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183325

 

 

  1805년 쉴러가 죽은 후 그의 시신은 바이마르의 작은 교회에 위치한 재정부 지하공동묘지 Kassengewölbe에 안장되었다. 1825년 말 바이마르 행정당국에서 이 지하 묘지에 더 이상 관을 넣을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대대적으로 정리할 것을 요청했는데, 그 당시에 이미 관리상태가 매우 불량하여 쉴러의 유해는 더 이상 특정지을 수 없이 다른 유골들과 함께 뒤섞여버리게 되었다.

  괴테가 참석하지 않았던 쉴러의 장례식에서 그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하기까지 모든 애도의 길을 따라갔던 청년 추종자 카를 레버레히트 슈바베 Carl Leberrecht Schwabe는 1826년 쉴러의 유골을 이장했던 당시 바이마르 시장의 지위에 있었다. 여전히 쉴러를 존경했던 슈바베는 무덤 관리인 한 명과 세 명의 노동자를 동원해, 절대로 함구할 것을 명령하고 3일동안 탐색한 끝에 지하공동묘지에서 23개의 두개골을 발굴해 온다. 그는 쉴러의 임종 당시 본뜬 데드마스크와 이 23개의 두개골들을 비교한 후, 가장 고상하고 edle, 균질한 regelmäßige 형상을 띠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두개골을 골라 해부학교수 등의 공증을 얻어 쉴러의 것으로 판정했다.

 

  카롤리네 폰 볼초겐을 포함한 쉴러의 유족들은 그의 해골을 궁정도서관에 안치할 것을 요청했으나, 이후 1826년 9월, 해골은 프라우엔플란에 있는 괴테의 대저택으로 옮겨진다. 괴테는 쉴러의 것으로 판정된 두개골을 파란 벨벳 위에 올려 서재에 두었고, 나머지 해골들은 상자에 넣어 다른 방에 보관했다. 1826년 12월 29일, 빌헬름 폰 훔볼트는 자신의 아내에게 괴테의 집에서 쉴러의 두개골을 본 일에 대해 편지를 쓴다. 

 

  "오늘 오후에 괴테의 집에서 쉴러의 두개골을 보았소. 괴테와 나는 - 리머도 함께 있었죠 - 그 앞에 오랫동안 앉아있었고, 그렇게 응시하고 있자니 마음이 굉장히 요동치더군요. 살아있을때는 그리도 위대하고 동정심도 많고 생각과 감정에 잠겨 동요하는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이제는 마치 돌로 조각한 것처럼 뻣뻣하게 죽은 채로 누워 있더이다. 괴테는 두개골을 자신의 금고에 넣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요. 지금까지 그 두개골을 본 건 나 뿐인데,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했소."

 

  괴테는 자신이 죽으면 쉴러와 함께 묻히기를 원했다. 그래서 지금 바이마르에 가면 둘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음. 그러나 2008년 쉴러 일가에서 가장 가까운 촌수에 있는 후손의 DNA를 비교분석한 결과, 괴테가 보관한 해골은 쉴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렇게 쉴러 해골의 행방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되었다.

 

 

  괴테가 쉴러의 두개골을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1826년 9월 25일과 26일 그의 일기장에서는 "테르치네 작업" / "옮겨 적음" / "퇴고 계속"이라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테르치네'가 바로 괴테쉴러 오타쿠들에게 영원히 회자되는 그 유명한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라는 시가 되겠다. 테르치네 운으로 쓰인 괴테의 이 시는 본디 제목이 없었다. 1827년 한 편지에서 "쉴러의 유골"로 칭해졌지만, 1829년 처음 출간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3부 마지막 부분에 포함되어 발표되었을 때도 무제로 남았다. 괴테 사후 1년 뒤 괴테 유고집에서 비로소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이 붙었다. 이 시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과 점진적으로 확장되며 전개되는 운율 형식인 테르치네의 형식적, 내용적 의의에 관해서는 맨 앞에 붙여둔 장제형 선생님의 논문을 참고해보세요. 오픈액세스니까요... 저같은 오타쿠 입장에서는...... 뽕참... ... ...

 

  아래에는 이 글의 본래 목적인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의 전문 번역을... 직접 번역해서 올려두려고 했는데, 위 논문에 이미 전문번역이 되어 있어서 또 하는 건 필요가 없어보인다. ... 그래서 저 논문에서 대부분의 얼개를 가져왔지만, 본질적으로는 스스로 오타쿠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번역하려 했던 것이므로 직역투를 유지하며 또한 많은 구절을 바꿨다. (문제가 있으면 고소하시기 전에 제발 알려주세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논문 읽어보세요... 뽕참... ... .. ....... 진짜 뽕참... ...

 

 

 

쉴러의 두개골을 바라보며

 

저 근엄한 납골당에서 나는 바라보았다,

  두개골과 두개골들이 정돈된 채 짜맞추어진 모양에;

  빛바래버린, 오래 전 세월을 나는 회고한다.

이전에는 서로 반목했을 이들은 열을 맞춰 서로 꽉 끼어있었네,

  서로 죽도록 치고받았을 단단한 뼈들조차,

  그저 안식 속에서 순순히 이 곳에 뉘여 있네.

비틀려 빠진 견갑골들아! 이들이 무엇을 짊어졌던가,

  더이상 아무도 묻지 않네, 우아하고 활동적이던 사지도,

  손도, 발도, 흩뿌려진 채 삶의 이음매로부터 어긋나 있다.

그대들의 노고는 이렇게 헛되이 늘어져 있고,

  무덤에서조차 그대들을 가만히 두지 않네, 내몰린 채

  그대들은 다시 밝은 대낮으로 끌려내오고,

말라빠진 껍데기를 사랑하는 자 아무도 없는데,

  그것이 간직했던 건 어떤 찬란하고 고귀한 알맹이였을지.

  나같은 전문가에게는 그저 글씨로 쓰여 있을 뿐이네,

그 성스러운 의미가 모두에게 현시되는 건 아닐 테지,

  내 이리도 뻣뻣한 무더기 한가운데서

  형언할 수 없이 찬란한 형상을 발견했을 찰나,

음습하고 협소한 이 공간 안에서

  자유롭고 따뜻한 기분이 나를 북돋는구나,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샘이 터져나오는 듯이.

비밀로 가득찬 형식이 얼마나 나를 매혹시켰던가!

  보존하고 있는 신적인 발상의 흔적이여!

  나를 황홀경에 빠트리는, 저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아,

범람하고 휘몰아치며 솟아오르는 형상이여.

  비밀스러운 그릇이여! 신탁을 베풀어주는구나,

  내 그대를 손에 드니 이 얼마나 값진가,

썩어가는 것들로부터 가장 고상한 보물을 경건하게 빼돌려내어

  자유로운 생각을 위해 탁 트인 공기 속에서,

  햇빛을 향해 경건하게 몸을 튼다.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무엇을 더 얻을 수 있겠는가,

  신적인 자연이 그에게 현시하는 것보다?

  자연이 확고한 것을 정신으로 흘려보내듯,

  자연이 정신의 산물을 확고하게 보존하듯.

 

더보기

Bei Betrachtung von Schillers Schädel (1826)

Johann Wolfgang von Goethe

 

Im ernsten Beinhaus wars, wo ich beschaute,

  Wie Schädel Schädeln angeordnet paßten;

  Die alte Zeit gedacht ich, die ergraute.

Sie stehn in Reih geklemmt, die sonst sich haßten,

  Und derbe Knochen, die sich tödlich schlugen,

  Sie liegen kreuzweis, zahm allhier zu rasten.

Entrenkte Schulterblätter! was sie trugen,

  Fragt niemand mehr, und zierlich tätge Glieder,

  Die Hand, der Fuß, zerstreut aus Lebensfugen.

Ihr Müden also lagt vergebens nieder,

  Nicht Ruh im Grabe ließ man euch, vertrieben

  Seid ihr herauf zum lichten Tage wieder,

Und niemand kann die dürre Schale lieben,

  Welch herrlich edlen Kern sie auch bewahrte,

  Doch mir Adepten war die Schrift geschrieben,

Die heilgen Sinn nicht jedem offenbarte,

  Als ich inmitten solcher starren Menge

  Unschätzbar herrlich ein Gebild gewahrte,

Daß in des Raumes Moderkält und Enge

  Ich frei und wärmefühlend mich erquickte,

  Als ob ein Lebensquell dem Tod entspränge,

Wie mich geheimnisvoll die Form entzückte!

  Die gottgedachte Spur, die sich erhalten!

  Ein Blick, der mich an jenes Meer entrückte,

Das flutend strömt gesteigerte Gestalten.

  Geheim Gefäß! Orakelsprüche spendend,

  Wie bin ich wert, dich in der Hand zu halten?

Dich höchsten Schatz aus Moder fromm entwendend

  Und in die freie Luft, zu freiem Sinnen,

  Zum Sonnenlicht andächtig hin mich wendend.

Was kann der Mensch im Leben mehr gewinnen,

  Als daß sich Gott-Natur ihm offenbare?

  Wie sie das Feste läßt zu Geist verrinnen,

  Wie sie das Geisterzeugte fest bewahre.

 

 

  각운 맞추는 건 신의 영역인듯... 그리고 중간에 "삶의 이음매로부터 어긋나 있다" 부분에 햄릿 인용인가?싶은 건 너무 오바일까?? 아무튼 이렇게 끝내는 건 조금 아쉬우니까 그간 모아뒀던 괴테쉴러에 대한 진술들을 몇 개 번역해서 덧붙여보겠습니다.

 

1. 1806년, 괴테가 베티네 폰 브렌타노와의 대화에서 쉴러에 대해

"[...] 그리고 극장에 와서 그의 전용좌석을 볼 때면, 쉴러가 이 세상에 더이상 없다는 사실을 나는 떠올릴 수밖에 없소, 그의 두 눈이 더이상 나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리고 나면 나는 내가 살아있음에 화가 나요, 나 역시도 더이상 세상에 존재하고싶지 않아집니다." (ㄹㅇ 원문은 한문장인데 "nicht mehr"가 세 번 연속으로 나옴.ㅋㅋㅋ)

 

2. 1810년, 쉴러의 부인 샤를로테 폰 쉴러가 쾨르너에게 보낸 편지 중

"괴테가 자신의 인생을 깊이 반추하면 반추할수록, 그는 자신에게 쉴러라는 사람이 얼마나 유일무이한 존재였는지 느낄 뿐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그의 [바이마르 국립극장] 전용좌석에 앉아 예술과 취미에 대해 깊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괴테는 깊이 통탄하며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고 말했지요!"

 

3. 1818년 1월 16일, 샤를로테 폰 쉴러가 아들 에른스트에게 쉴러와 괴테에 대해

"나는 네 아버지가 그[괴테]를 가장 순수하게 알고 있었으며 사랑했다고 생각한단다, 괴테가 네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4. 1820년 5월, 카를 프리드리히 안톤 폰 콘타와의 대화에서 괴테가 쉴러의 장례식에 대해

"우리 극장에서 [쉴러에 대한] 추모식을 치르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여러모로 비난했죠, 다른 극장들에서는 추모식을 개최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걸 했겠습니까? 나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는데요!"

 

  그리고 괴테쉴러 올타임 레전드는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이 증언인듯...

"괴테는 이 병들고 자주 기분에 따라 불안정해지는 시인[쉴러]을 섬세한 연인이라도 된 양 대했고, 그를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으며, 그를 보살피는 동시에 그의 비극이 공연되도록 애썼다."

 

  믿거나 말거나...^^ 자극적인 기사 퍼나르는 기레기처럼 번역했으나 여튼 있는 진술은 맞음. 내 오타쿠렌즈를 보호하기 위해 원문과 출처는 생략하겠습니다. 근데 진짜 있는 진술은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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