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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실러 팬픽명작] 토마스 만, <힘겨운 시간 Schwere Stunde> 번역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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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실러 팬픽명작] 토마스 만, <힘겨운 시간 Schwere Stunde> 번역

허튼 2021. 7. 28. 17:46

힘겨운 시간 Schwere Stunde (1905)


그는 책상에서, 자신의 작고 낡은 책상에서 일어나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고개를 축 늘어트리고 방의 맞은편 구석에 있는, 기둥처럼 길고 좁은 난로로 다가갔다. 난로 타일에 손을 올려놓았지만, 손은 금방 차가워졌다. 자정이 넘은 지 이미 오래 됐기 때문이었다. 자그마한 위안거리라도 찾으려 했지만 얻을 수 없게 되자, 그는 난로에 등을 기대고 기침하며 잠옷 옷자락을 여몄다. 가슴께에 젖혀진 옷깃에는 색 바랜 주름 장식이 늘어져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공기를 들이마시려 코 사이로 색색거리며 숨을 쉬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코감기에 걸려 있었다.
치료하기 어려운 별난 감기는 거의 언제나 그를 쫓아다녔다. 눈꺼풀은 열이 올라 뜨거웠고 콧구멍 가장자리는 완전히 헐어 있었으며, 이 감기로 머릿속과 팔다리는 심한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온몸이 무겁고 멍한 것이 혹 주치의가 몇 주 전 그에게 선포했던 성가신 가택연금 조치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게 원인인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염증이 영원한 것처럼 낫지 않았고, 가슴과 하복부에서는 경련이 일어났으므로 그러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예나는 몇 주째, 몇 주째 날씨가 좋지 않았다. 이런 비참하고 가증스러운 날씨는 온 몸의 모든 신경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황량하고, 음울하고, 추웠다. 12월의 바람이 난로 연통 안에서 타락하고 저주받은 듯 울부짖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한밤중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며 절망적인 비탄을 쏟아내는 영혼의 소리 같았다. 하지만 이런 좁은 집에 갇혀 있는 것이 좋지는 않았으며, 그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에도, 그 생각을 시작하게 해주는 피의 리듬에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육각형의 방은, 삭막하고 검소하고 불편했다. 하얀 칠이 되어 있는 천장 아래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비스듬한 격자무늬가 그려진 벽지에는 타원형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다리가 얇은 네다섯 개의 가구들이 양초 두 대가 비추는 불빛 속에 놓여 있었다. 양초들은 책상 위에 놓인 원고의 머릿맡에서 타올랐다. 창틀 위에는 빨간 커튼이 달려있었다. 고급 면직물로 만들어진 깃발을 대칭형으로 걷어 올린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붉은 색, 따뜻하고 쨍한 붉은 색으로 되어 있었고, 그는 이 커튼을 사랑하여 한 번도 떼어내려 하지 않았다. 이 커튼은 감각적 만족이라고는 없는 금욕적인 그 방의 궁핍함에 관능적인 풍만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난롯가에 서서 조급하고 고통스럽게 긴장된 눈빛으로 방금 자신이 도망쳐 나온 작품을, 이 짐덩이를, 원고를, 양심의 가책을, 전부 들이마셔야만 하는 바다를, 끔찍한 숙제를, 그의 자부심이자 곤궁함이자 천국이자 저주를 쳐다보았다. 작업은 질질 끌려 간신히 진행되었다가, 막혔다가, 멈춰버렸다 – 이번에도, 또 다시 말이다! 날씨 탓이었고, 그의 염증과 피로 탓이었다. 혹은 작품이? 원고 자체가 원인이었을까? 이 작업은 불운한 결과물이자 회의로 점철된 결과물이었던 걸까?
그는 작품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원고에서 공간적으로 떨어지면 보다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고, 소재를 더 넓은 시야에서,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고군분투하던 장소에서 벗어났을 때, 감격스러울 정도로 긴장이 완화되는 경우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감격은 리큐르를 마시거나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보다 죄책감이 덜했다... 책상 위에 작은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이 커피가 그에게 도움을 준다면? 아니, 아니, 더 이상은 안 된다! 주치의는 물론이거니와, 그보다 더 저명한 다른 사람도, 그러지 말라고 신중하게 충고했을 것이다. 그는 애타는 동경과도 같은 적대감을 가지고 바이마르에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현명했다. 그는 살아가는 법을, 창작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아주 사려 깊게 돌보는 사람이었다...
적막함이 집안을 휘감았다. 성벽 길을 따라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다. 집주인과 그 식구들, 로테와 아이들까지. 그는 혼자 외로이 잠에서 깨어, 식어버린 난로 근처에서 부자연스럽게 눈을 끔뻑이며 작품을 쳐다보았다. 병적인 불만족스러움이 그로 하여금 작품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창백한 목이 옷깃 리본 사이로 길게 뻗어 있었고, 잠옷 자락 틈 안쪽으로는 굽은 다리가 보였다. 빨간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높게 솟은 이마 뒤쪽으로 쓸어 넘겨 창백하게 핏줄이 돋아 있는 관자놀이를 드러냈고, 성긴 곱슬머리는 귀를 덮고 있었다. 커다랗고 굽은 채로 쭉 뻗어나가다가 끝부분에서 돌연 하얗게 뾰족해지는 코가 시작하는 곳에선 머리카락보다 짙고 뻣뻣한 눈썹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 때문에 깊게 패인 두 눈이 바라보는 눈빛은 다소 비극적으로 보였다. 숨을 입으로 쉬어야 했기에 얇은 입술을 벌렸고, 주근깨가 난 뺨은 방 안의 공기에 핏기 없이 늘어진 채 푹 꺼져 있었다...
그래, 이건 실패했다, 모든 게 헛된 짓이야! 군대가! 군대가 직접 등장했어야 됐는데! 군대가 이 모든 것의 토대였어! 군대를 눈 앞에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야 – 상상력을 강제로 동원해서 군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엄청난 기교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영웅은 영웅이 아니게 되지. 고귀하지도 않고 격정은 식어버려! 설정도 가짜, 언어도 가짜였어. 이건 무미건조하고 활기 없는 역사 강의에 불과했어. 지루하고, 썰렁하고, 연극 무대에 올리는 데도 글렀어!
좋아, 다 끝났어. 패배다. 실패한 작업이고. 파산이야. 그는 이 일에 대해 쾨르너에게 편지를 쓰려 했다. 자신의 천재성에 어린아이처럼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는 선량한 쾨르너에게 말이다. 이 친구는 비웃고 애원하고 잔소리할 것이다. 그에게 <돈 카를로스>를 상기시키면서, 그것도 역시 의심하고 괴로워하고 여러 번 갈아엎으면서 완성하지 않았느냐고,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고통을 겪은 뒤에, 전국에 탁월하고 영광스러운 작품으로 이름나지 않았느냐고 일깨워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행운이 따르는 손으로 상황을 움켜잡아 거기서 승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의구심과 투쟁이라? 천만에. 과거의 그는 지금보다 더 병들어 있었을 것이다. 더 궁핍했고, 수배에 쫓기고 있었고, 세상과 반목했고, 억압당했으며 인간적인 것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젊었다, 그 때는 아주 젊었다! 얼마나 깊게 꺾이든지 간에, 그의 정신은 언제나 유연하게 튀어올랐고, 비탄에 찬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내면에서부터 믿음과 승리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런 시간들은 점점 드물어지다가, 이제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분위기로 가득 찬 어느 날 밤에 단 한 번이라도 찬란한 열정의 빛을 보게 된다면, 이러한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 다른 한 주를 어둠 속에서 마비된 채 보내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는 지쳤고, 겨우 37세였지만 벌써 생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비참하던 시절 그에겐 북극성과도 같았던, 미래에 대한 믿음은 죽어버렸다. 그렇게 이 지경이 되었다. 이것이 절망적인 진실이었다. 궁핍하고 결실이 없던 몇 년, 그가 고난과 시련의 세월이라고 생각했던 그 몇 년은 사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세월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지금, 약간의 행복을 손에 쥐고, 정신적인 약탈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의 권리를 얻었을 뿐 아니라 시민적인 관계 안에 들어가 직책과 명예를 부여받고 아내와 아이까지 가지게 된 지금, 그는 소진되었고 메말라버렸다. 포기와 좌절만이 그에게 남아있는 전부였다.
그는 신음 소리를 내며 두 눈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고는 쫓기는 사람처럼 방 안을 돌아다녔다. 방금 떠올린 생각은 너무도 끔찍해서 생각을 떠올린 자리에 그대로 머무를 수가 없었다. 그는 벽에 기대놓은 의자에 앉아서 두 손을 모아 무릎 사이에 늘어뜨리고는 침울한 눈으로 마룻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양심이... 그의 양심이 어찌나 크게 울부짖었던가! 그는 죄를 지었다. 지나온 모든 세월동안 자기 자신에게, 자기 몸 속의 연약한 장기들에게 죄를 지었다. 젊은 혈기에 저지른 방종, 지새웠던 수많은 밤, 담배 연기로 가득 찬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낮, 몸은 생각하지 않고 정신을 혹사시켜 온 나날들, 작업할 때 자극을 위해 들이마셨던 환각제들 – 이제 그것들이 복수를, 복수를 하러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를 당하면서도, 그는 죄를 짓게 해놓고 벌을 내리는 신들에게 도전하려 했다. 그는 그에게 주어진 대로 살았을 뿐이다. 그에겐 시간이 없었다, 현명하고, 사려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 가슴의 이 부분이, 그가 숨쉬고, 기침하고, 하품할 때마다 언제나 같은 부분에 이러한 고통이, 이런 작고, 지독하고, 찌르는 듯 파고드는 경고가 엄습했다. 이 지독한 가슴 통증은 결코 침묵하는 법 없이 오 년 전 에르푸르트에서 폐렴에 시달렸을 때부터 그를 괴롭혀 왔다. 이 통증이 말하려던 게 무엇이었을까? 사실, 그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의사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표명할 수 있었다. 그는 너그럽게 도덕성을 아껴가며 더 영리하게 몸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그가 하려고 하는 일은, 반드시 곧장 해야만 했다, 오늘 당장, 빠르게... 그런데 도덕성이라니? 하지만 어쩌다가 마침내 그는 현명함이나 냉철한 규율보다 해롭고 소모적인 것들을 탐닉하는 일이 더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죄를 짓게 된 것일까? 선량한 양심의 경멸스러운 기교, 그건 윤리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군분투와 궁핍함, 열정과 고통이 더 윤리적이었다!
고통... 어떻게 이 단어가 그의 가슴에 자리 잡게 된 것인가! 그는 기지개를 켠 뒤, 팔짱을 꼈다. 이어져 있는 붉은 눈썹 아래에서 빛나는 눈빛은 아름다운 탄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의 비참함에 당당하고 고귀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한, 비참한 것이 아직은, 아직은 완전히 비참한 것이 아니었다. 필수적인 한 가지, 자신의 삶에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부여하는 탁월한 용기! 고통의 원인을 방 안의 탁한 공기와 변비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 말이다! 격정적으로 행동할 만큼은, 신체적인 것들을 무시하고 감각을 모르는 체 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건강하지 않은가! 다른 모든 것들을 알고 있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만큼은 순진하다고 할 만 하다. 믿는 것, 고통을 믿을 수 있다는 것 만큼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아주 깊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믿고 있어서, 이 믿음에 따르면 고통을 겪으며 생겨나는 모든 일이 쓸모없는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원고 너머로 흘깃 시선을 던졌고, 가슴 위로 더욱 단단하게 팔짱을 꼈다... 재능이라는 것 자체가 – 고통이 아니었을까? 저기 있는 저것이, 저 운명적인 작품이 그를 고통 받게 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심지어는 좋은 징조에 가깝지 않겠는가? 아직 단 한 번도 재능이 샘솟아 나온 적이 없었는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는 우선 의심부터 하게 될 것이었다. 재능은 그것의 압박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서투른 아마추어들이나 딜레탕트들, 금방 만족하는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에게서나 샘솟아 나온다. 왜냐하면 재능이란, 객석에 계신 존경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재능이란 가볍게 장난처럼 볼 게 아니고, 단순히 일을 해내는 능력보다 더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능의 뿌리는 욕구이고, 이상을 향한 비판적인 지식이자, 자신의 능력을 고통과 함께 창조해내고 발전시키는 불만족이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자들에게, 가장 불만족한 자들에게 재능은 가장 매서운 채찍과도 같다... 탄식하지 말라! 과시하지도 말라! 자신이 견뎌낸 것에 대해 겸손하고 참을성 있게 생각하라. 일주일에 하루도, 심지어는 한 시간도 고통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 그게 어떻단 말인가? 부담과 성과, 요구, 불평, 모진 고통을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여기는 것, - 이런 것들이 위대함을 부여하지 않는가!
그는 일어나 담뱃갑을 열고 게걸스럽게 코담배를 들이마신 뒤, 뒷짐을 지고 거친 발걸음으로 방 안을 서성였다. 그 바람에 촛불이 일렁였다... 위대함! 비범함! 세계에 울려퍼지는 불후의 명성! 이러한 목표에서 등을 돌리고 영원히 이름나지 않는 자가 행복한들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름나는 것, - 세계의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사랑받게 되는 것! 이런 꿈과 충동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르는 그대들은 이기심에 대해서나 지껄이라지! 비범한 자들은, 고통 받는 한, 모두 이기적인 법이다. 비범한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대들, 사명감 없는 자들이여, 이 세상에서 그렇게나 쉽게 살아가는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그리고 마음속의 야심이 말한다. 이 고통이 허무하게 사라져야겠는가? 이 고통은 나를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의 콧볼이 긴장되어 있었고, 그의 눈빛은 위협적으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왼손 주먹을 꽉 쥔 채 늘어트리면서 오른손을 잠옷 자락에 거칠고 깊숙이 꽂아넣었다. 핼쓱한 두 뺨 위로 홍조가 드리웠고, 흥분이, 그의 예술가적인 이기심이 만들어낸 격정적인 상승욕구가, 그의 자아를 위한 열정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꺼질 기미 없이 불타올랐다. 그는 사랑의 이런 비밀스러운 도취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감격스러운 애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단지 자신의 두 손을 쳐다보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예술이라는 무기를 전부 이 사랑에 복무하도록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에는 고상하지 않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이런 이기심보다 더 깊은 곳에는 무엇보다 모종의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서,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이익과 사적인 욕심 없이, 필연성에 따라, 자신을 내던지고 바치겠다는 의식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차원적인 것을 위해 자신보다 더 깊이 고통받지 않은 자는 그 누구도 자신보다 위대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가 품고 있는 질투심이었다.
그 누구도!... 그는 두 손을 눈에 가져다대고, 상체는 반쯤 옆으로 숙인 채 상황을 피해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도망가고픈 심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심장에서부터 피할 수 없는 생각의 가시들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람, 바로 그 다른 사람, 밝은 사람, 축복받음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 무의식적으로 신적인 사람, 바로 그 곳, 바이마르에 있는 사람, 그가 동경에 가까운 적대감을 가지고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의 가시들이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언제나처럼 깊은 불안감 속에서 조급하고 열정적으로, 그 다른 사람의 고유한 본질과 예술가로서의 특징에 맞서 자기 자신을 구분하고 주장하려는 작업이 자기 안에서 다시금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그가 진정 더 위대한 사람이었는가? 어떤 점에서? 무엇 때문에? 그가 승리했을 때에도 피를 흘렸는가? 그의 패배는 비극적인 연극이 되겠는가? 그는 어쩌면, 신이었을 수는 있어도, - 영웅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이 되는 것이, 영웅이 되는 것보다 쉬웠다! - 그게 더 쉬웠다... 이 다른 사람이 더 쉬웠다! 현명하고 행운이 따르는 두 손으로 인식과 창조를 구분하고, 명랑하고 고통스럽지 않게 샘솟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창조가 신적인 일이라면 인식은 영웅적인 일이었지만, 그 사람은 양면을 모두 갖추었고, 인식하면서 창조하는, 신이자 동시에 영웅이었다!
힘겨움에 대한 의지... 하나의 문장, 하나의 엄격한 생각을 위해서 그가 얼마나 많이 훈련하고 자신을 극복해왔는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까지 그는 무지하고 잘 훈련되어있지 않은, 공허하고 이상주의적인 몽상가였기 때문이다.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율리우스 시저의 편지 한 통을 써내는 것이 더 어려웠다, - 하지만 바로 이런 점에서 더 고차원적인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 소재, 질료, 뻗어나갈 여러 가능성들에 대해 가장 처음 발생하는 내면적 예술의 활발한 충동에서 출발해서, – 사상, 이미지, 단어, 시행에 이르기까지, 어찌나 전력을 다해 분투해야 하는가! 이 무슨 고난의 길인가! 그의 작품들은 갈망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형식, 형상, 경계, 구체성에 대한 갈망, 모든 사물들이 환한 햇살 아래 드러나 있다는 듯 신적인 입으로 그 이름을 곧장 말하는, 바로 그 다른 사람이 그려내는 선명한 세계 너머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과 같은 시인이나 예술가는 없었겠는가? 그처럼 무로부터, 자신의 가슴 속으로부터 창조해내는 사람이 없었겠는가? 시라는 것은 현상의 세계로부터 비유와 의상을 빌려오기 전부터 이미 음악으로서, 존재에 대한 순수한 근원적 형상으로서 그의 영혼 속에서 태어나지 않았던가? 역사, 철학, 열정은 더 이상 창조하는 일에는 어딘가 부족하지만 오르페우스적인 심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나 핑계가 아니다. 단어와 개념들은 숨겨진 현악 연주가 울려퍼지도록 그의 예술성이 두드리는 건반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았겠는가? 선량한 그들은, 그가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그 신념의 힘에 대해서 아주 칭찬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자 그의 마지막 남은 파토스, 영혼의 가장 고상한 축제 때 울렸던 위대한 종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했다... 자유... 그는 진정으로 이 단어를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 단어에 보내온 환호들보다 더 탁월한 무언가로 여기고 있었다. 자유 –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시민의 자그마한 존엄이란 왕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한 정신이 이 단어를 통해 감히 말하고자 하는 바를 꿈에서라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란 말인가? 궁극적으로 무엇에서 벗어나려는 것인가? 어쩌면 심지어 행복으로부터, 인간적인 행복으로부터, 비단으로 만들어진 족쇄로부터, 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의무로부터...
행복으로부터... 그의 입술이 움찔거리는 모습이 마치 그가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는 듯 했다. 그리고 천천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옆방으로 갔다. 등불에서는 푸른 빛이 흘러나오고, 꽃무늬가 그려진 커튼은 차분하게 주름진 채로 창문을 덮고 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서서 베개에 놓여 있는 그 귀여운 얼굴 위로 몸을 숙였다... 창백한 진주처럼 빛나는 두 뺨 위를 검정 곱슬머리가 휘감았고, 어린아이 같은 입술이 잠결에 벌어져 있었다... 나의 아내!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대는 내 갈망을 쫓아서, 내 행복이 되어주기 위해 내 앞에 나타났던가? 그대는 나의 행복이니, 평온하길! 평온히 자고 있길!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나를 찾고 부르고 바라보기 위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그 귀여운 속눈썹을 들어올리지 말길! 신에 맹세컨대, 신에 맹세컨대, 그대를 너무 사랑해! 나는 스스로 세운 과제에 고군분투하며 고통받는 데에도 이미 아주 피곤하기 때문에 종종 내 감정을 알아채지 못할 때도 있소. 그리고 내가 부여받은 사명 때문에 나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어서도 안 되고, 당신 안에서 행복해서도 안 되오...
그는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잠든 사람의 사랑스러운 따뜻함으로부터 벗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등을 돌렸다. 밤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 종소리가 그를 일깨워주었고, 동시에 친절하게도 이 힘겨운 시간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한숨을 내뱉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는 책상 앞으로 다가가 깃펜을 그러쥐었다... 너무 파고들지 말자! 파고들기에 그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다! 혼란에 빠져들지 말고, 적어도 거기서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충만한 혼란으로부터 빠져나와, 형식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성숙된 빛으로 상승하자. 파고들지 말고, 작업을 하자! 경계를 설정하고, 제외시키고, 형상화해서, 완성시키자...
그렇게 고난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어쩌면 좋은 작품이 아닐지라도,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보라, 심지어 훌륭하기까지 했다. 그의 영혼에서, 음악과 이념에서 새로운 작품이 솟아나왔고, 은은하게 울려퍼지며 빛나는 이 창조물은 마치 소라껍데기가 자신이 머물렀던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려주는 것과 같이 성스러운 형식으로 무한한 고향을 놀랍게 비추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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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괴테실러 팬픽 통틀어서 가장 팬픽같은 실러 묘사 하고 있음. 내가 칼 오이겐한테 감금방치플 당하는 의대생 실러랑 법대교수 괴테의 구원서사물 팬픽까지 봤거든? 근데 그것보다 이 힘겨운 시간이 훨 미친 팬픽인 것 같다. 앞에 주구장창 비엘뽕빨 하다가 마지막 와서는 헤테로결혼 시켜버리는것까지 진짜 완전팬픽같음 개짱남 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지금 젊마스만이 실러한테 자기투영하면서 징징대고있는거라고 생각하면 짜증이 두 배가 됨 ㅠㅠ 언제나 토마스만은 괴테 쪽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늙마스만에 국한된 거였다니... 지가 뭐라고 실러까지 훔쳐간단 말이냐?

암튼 이것도 이렇게 번역 올려도 되는건지 안되는건지 잘 모르겠음.. 100년 넘은건데 괜찮나? 안되나? 안되면 고소하시기 전에 알려주세요 제발..... 오타쿠 된 입장에서 이런 팬픽은 저잣거리에 걸어놓고 돌려봐야된단 말이에요.

번역 원문은 Thomas Mann: Schwere Stunde. In: Sämtliche Erzählungen. Frankfurt/M 1963. S. 294-300.참고한 번역문은 토마스 만: 힘든 시간. 실린 곳: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중단편집. 홍성광 역. 열린책들 2019. 227-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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