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편지 번역] 1794년 8월 31일 예나, 쉴러가 괴테에게. 본문
* 오역이 많을 테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틀린 곳은 부디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 ]: 역자 추가, ( ): 몇몇 관계대명사 절. 원문에서는 괄호가 아닌 콤마 등으로 이어집니다. 강조는 원문을 따릅니다.
이 편지는 쉴러가 괴테에게 보낸 생일 편지에 대한 괴테의 답장에 다시 쉴러가 답장한 것이다.
괴테는 생일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쉴러에게 "당신의 방식대로 이제는 당신에 대해서, 특히 최근 몇 년간의 당신에 대해서 알려주십시오." 라고 요구하며 이 예상치 못한 만남 이후로 둘이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될 것을 암시했다.
<Jena den 31. Aug. 1794> Schiller, an Goethe
드레스덴의 제 친구 쾨르너와 만나기 위해 간 바이센펠스에서 돌아오고 나서, 당신께서 보낸 최근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저를 배로 기쁘게 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당신의 존재에 대한 저의 견해가 당신이 [원래 스스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느낌과 만났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께서 제 솔직함을 (이 솔직함이 제 마음으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했습니다만) 불만족스럽게 느끼지 않으셨다는 것을 미루어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추후의 관계([이후의 일이지만] 이것이 제게는 조금은 즐거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군요)는 굉장한 부지런함으로 예측하는 것보다 우연에 맡겨두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제게 재차 증명해주었습니다. 작가의 정신과 그의 가장 주의깊은 독자 사이에 가능한 것보다 더 가까운 관계를 당신과 맺고 싶다는 저의 열망이 얼마나 강렬했던지요. 그렇게 저는 당신과 제가 걸어왔던 그 수많은 길들이 지금 이 때만큼 유익하게 하나로 결합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단지 그 길이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든지 간에 우리가 함께 그 위를 걸어가기를, 그리고 더욱더 큰 이익과 함께 이 긴 여행의 마지막 동반자로서 항상 최우선적으로 함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게서 이념의 커다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기대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제가 당신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저의 욕구와 노력은 적은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만약 당신께서 사람들이 ‘획득한 인식’이라고 부르는 저의 빈곤함을 무엇이든 한 번 더 잘 알아보고자 하신다면, 당신께선 아마도 제가 어떤 작품들에서는 꽤 성공했다는 사실을 발견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의 범위가 작기 때문에 저는 그것들을 더 빠르게, 더 자주 돌려볼 수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의 작은 재산을 더욱 잘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내용에서 결여된 다양성은 형식으로 채워 넣을 수 있게 됩니다. 당신께선 당신의 커다란 이념 세계를 단순화시키려 애쓰고, 저는 제 작은 소유물들을 위한 다양성을 찾으려 애씁니다. 당신께선 한 왕국을 통치하지만, 저는 단지 개념들로 이루어진 식구 많은 가족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진심으로 저는 이것들을 작은 세계가 될 때까지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당신의 정신은 비범한 수준으로 직관을 성취했고 당신의 모든 사유하는 능력들은 상상력의 위에서, 마치 그것의 공동 대변인을 손상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본디 인간이 자신의 직관을 일반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입법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때, 이는 인간 스스로가 해낼 수 있는 것의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 당신은 애썼습니다. 당신께서 얼마나 높은 경지에 도달해 계신지 보십시오! 저의 오성은 실은 더욱 상징적인 것을 성취했고, 저는 개념과 직관 사이에서, 규칙과 감정 사이에서, 기교적 지식과 천재성 사이에서 양가적인 방식으로 부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게, 특히 초기의 몇 년간 사변적 영역에서도 문학의 영역에서도 퍽 서투른 관점을 주었지요. 왜냐하면 시인은 제게 철학을 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철학적 정신은 제게 시를 쓰고자 한다고 부추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상상력은 제 추상적인 개념들을 방해하고, 차가운 오성은 제 문학을 방해하곤 합니다. 제가 이 두 가지 힘들 중 하나를 [온전히] 자율적으로 한계 지어줄 수 있는 한에서만 이들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아직까지 멋진 운명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제가 저의 도덕적인 힘들을 잘 알게 되고 그것을 사용하게 된 이후로 질병이 제 정신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거대하고 광범위한 정신적 혁명을 제 안에서 완성시킬 시간을 가질 수 없었지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제 정신이라는] 건물이 붕괴된다면, 아마도 제가 이미 그 재난으로부터 보존가치를 포기하고 달아난 이후겠지요.
당신께선 제 자신이 스스로 저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하셨고 저는 당신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사용했습니다. 당신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이 고백을 드리오니, 바라건대 사랑으로 이를 받아주십시오.
오늘 저는 당신의 작품의 디테일을 파고드는 것을 그만두겠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퍽 풍성한 결실을 맺었음에도 말입니다. 제가 여러 방법으로 행한 연구들은 꽤나 동일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고, 당신께서도 아마 동봉한 문서들에서 당신과 일치하는 아이디어들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이 문서들은 이미 1년 반 전에 써 둔 것이고, 그것의 편협한 동기를 고려했을 때 그 조야한 모습에 대해 사과를 요청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지금에 이르러 더 나은 기반을 가지게 되었고, 제 안에서 더욱 큰 확신을 가지게 되어서, 당신께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빌헬름 마이스터』를 우리 잡지에 실을 수 없다고 하시니 그 어떤 탄식도 제 아쉬움을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셔도 저는 이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의 이 잡지 기획을 위해 당신의 풍요로운 정신과 친절한 열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로써 당신의 천재성의 친구들은 더불어 두 배로 유익할 테지요. 제가 여기 동봉하는 <탈리아>의 작품에서 쾨르너가 낭송에 대해 논한 몇 가지 아이디어들을 발견하실 터인데, 당신께선 이를 만족스럽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저희 모두가 당신의 관대한 배려에 인사를 올립니다. 경의를 표하며 [회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의
쉴러
디터 보르히마이어나 이후 뤼디거 자프란스키는 쉴러가 괴테에게 "사랑과 증오의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 양가감정이 있냐 여기는 무조건 사랑밖에 안 보이는데.. 하지만 여기에는 괴테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의도로 제법 계산된 강한 겸손함이 섞여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참사랑으로 보임.
웃기는 건 8월 31일에 쓰여진 이 편지를 받고 괴테는 9월 4일 쉴러에게 자신의 집으로 14일간의 동거를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들의 사랑의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동거 제안 편지와 그에 대한 답변은 정말 가관인데, 다음 포스팅으로 미룬다.
'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는 것들 > 번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너 뮐러, 교육극과 결별하며 쓴 편지 번역 (0) | 2021.02.04 |
---|---|
[편지 번역] 1797년 12월 26일 예나, 비극은 서사적이어야 한다. (2) | 2020.09.02 |
프리드리히 실러, <비극에서 코러스 활용에 대하여> 번역 (3) | 2020.08.06 |
[편지 번역] 1794년 9월 4일, 7일, 10일 괴테와 실러 사이의 동거 제안 편지 교환 (0) | 2019.05.04 |
[편지 번역] 1794년 8월 23일 예나, 쉴러가 괴테에게. (0) | 2019.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