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18 백성희장민호극장 <가지 Aubergine> 본문
극: 줄리아 조
연출: 정승현
출연: 김종태(레이), 김재건(아버지), 우정원(코넬리아), 김정호(삼촌), 신안진(루시앙), 김광덕(다이앤), 이현주(병원직원)
시각보다 어떤 기억을 더 강렬하게 호출해내는 다른 감각들이 있다. 내겐 겨울방학을 기억하게 하는 늦은 겨울아침의 냄새, 그리고 5살의 집 앞 놀이터를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이제는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와 밥 냄새가 그것이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닐 때, 여름에 몰래 치킨을 시켜 화장실 좁은 한 칸에 6명이 들어가 먹었던 기억을 불러내려면 그 치킨보다는 피부로 느껴졌던 끈적함을 떠올려야 한다. 뭐 그런 것들.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어떤 맛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다. 내 어머니한테는 할머니의 김치찌개고, 나한테는 초등학생때 길거리에서 나눠줬던 교촌치킨 닭다리다.ㅋㅋㅋㅋ 우리는 그 맛의 이데아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느끼기도 한다. 사라진 것에 대한 이런 멜랑콜리는 어쩌면 과거, 또는 죽음과 맞닿아 있다. 음식은 삶을 연장시키는 것이지만 이 극에서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것을 불러내는 역할을 해 준다.
나는 정말 뜬금없게도 이 극을 보며 독일에서의 한 끼가 떠올랐다. 이것이 재미교포의 어떤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있어서일수도 있겠다. 내가 독일에 있었을 때, 한 2개월정도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야말로 사회부적응자였다. ㅋㅋㅋㅋㅋ 부엌에 나가기가 싫었다. 안 통하는 독일어나 영어로 망할놈의 스몰 토킹을 해야 하니까. 그게 싫었다. 물론 이게 내 독일어와 영어 실력 증진에 엄청난 해를 끼쳤지만,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나. 어쨌든 그렇게 자발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인 1일1식을 했다. 11시쯤 느즈막히 일어나서 굶다가 4시쯤 너구리 하나 끓여먹으면 땡이다. 아니면 초코 씨리얼. 그런데 방 안에서 혼자 먹으면 적적하니까 엠브로 먹방을 틀어놓고 같이 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엠브로가 (독일에선 못 먹는)회 10몇만원어치를 쌓아놓고 먹는 걸 보면서 나는 너구리나 씨리얼을 씹는 거다. 웃기지, 그게 레이 아버지가 거울 놓고 밥 먹는 얘기 하는 독백 장면에서 떠올라버렸다. 내가 엠브로 먹방에서 죽음을 본 건 아닐텐데 말이다!ㅋㅋㅋ 극을 이렇게 정줄 놓고 보면 안 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경험한 죽음이, 피부로 느낀 죽음이 몇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해방이다. 어쨌거나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개인에겐 큰 행운이다. 이런 생각이 이 극과 어느 정도 결을 같이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내게 있어 삶과 죽음은 그다지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죽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대사는 확 깬단 말입니다..... 극이 삶과 죽음의 간극을 따뜻하게 이어주고는 있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내게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 극 진행 내내 나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던 것은 따로 있다. 내 부모님도 높은 확률로 근 몇십 년 이내에 레이의 아버지처럼 병에 걸리게 될지도 모르는데, 길고 길게 생명유지장치를 달아야 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병원비를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자신이 없다....
영어로 쓰였을 극이고, 재미교포 부자의 이야기라 그런지 한국어로 번안되었을 때 오는 재미있는 현상들이 있었다. 이 극을 한국어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재미 면에서는 굉장한 축복일지도.
나도 쇠고기뭇국 좋아하는데. 조만간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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