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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떼시스 Tesis>(1996), "너 변태지?"라는 물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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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떼시스 Tesis>(1996), "너 변태지?"라는 물음

허튼 2020. 5. 12. 14:57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오프닝 시퀀스. '철로에 떨어져 머리가 잘린 사람이 있으니, 지금 당장 지하철에서 내려 선로를 보지 마시고 이동해주세요'라는 역무원의 말에, 지하철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모두 플랫폼으로 내린다. 선로를 보지 말라는 역무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은 굳이 선로로 몰려가 머리가 잘렸다던 시체를 보려고 한다. 승객들은 죽은 사람을 본다. 죽은 사람을 보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도 선로로 다가간다. 하지만 그녀는 시체를 보기 직전에 역무원에게 제지당한다. 주인공도 관객도 결국은 시체를 보지 못한다. 영화는 온통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

 

  예시를 두 개쯤 더 들자. 주인공 앙헬라가 스너프필름을 처음 접하는 영화 초반의 장면에서 감독은 작품 속 스너프필름을 우리(관객)에게 직접 보여주는 걸 극도로 제한한다. 관객에게 주어지는 정보값은 스너프필름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이 전부다. 주인공의 지도교수가 죽어버린 와중에 그 죽음의 결정적 단서가 되는 비디오를.... 영상은 안 보여주고 소리만 들려준다니? 공포영화의 관객은 그 영상이 보고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영상을 욕망하도록 유도하고, 관객은 적극적으로 거기에 부응한다. 재밌는 건 앙헬라도 처음에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뒤를 돌아서 영상을 직접 보지 않는다는 거다. 관객(우리)과 주인공이 겹쳐진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서서히 손가락을 벌려 자신의 눈으로 스너프필름을 본다. 보기 싫다는 윤리적/심정적 측면과 보고싶다는 욕망이 충돌하다가 보고싶음이 이기고야 만다.

 

 

  온갖 살인이 일어나고 사건이 해결된 뒤 가장 마지막 장면으로 가보면, 이 영화의 자기반영성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음지에 숨어있는 스너프필름 산업을 주인공이 방송사에 폭로하는데, 방송사는 입수한 스너프필름을 지금부터 뉴스를 통해 방영하겠다고 공지한다.

 

 

  "매우 잔인"한, "방송하기에는 지나친" "끔직한 영화"를 "여러분의 볼 권리"를 위해 방영한다. 병원에 누워있는, 어쩌면 저 뉴스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 공포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관객들을 대변하는 저 환자들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영화는 경고와 함께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폭력적 영상매체의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서 그것에 대해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과, 사람들은 '진짜' 폭력을 좋아하고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걸 찍어야 한다는 두 번째 지도교수의 범죄의도가 교묘하게 뒤섞인다. 엄청난 자기반영성! 

 

  그러니까 이건 작정하고 매체 얘기 하려고 만든 영화인 셈이다. 주인공의 졸업논문 주제가 '영화에 나타난 폭력성'이고 이 영화의 제목이 <논문>인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목하고 있는 거다. 감독은 영화로 논문을 쓰고싶었던 거지 장르로서 스릴러는 연구방법으로 채택된 것이고. 알려져 있듯 공포영화는 관음증적이다. 물론 다른 영화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공포영화의 관객은 스크린 안에 갇힌 인물들의 고통을 일종의 주이상스로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관음증적이다. 영화 속에서 케마가 앙헬라에게 "너 변태지?" 하고 물어보는 것은 사실 관객에게 묻고 있는 거다. 굳이 스너프 필름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를 보다니, 너희들 다 변태지?

 

  하지만 우리(관객)은 이렇게 변명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놀릴 거면 공포영화를 왜 굳이 찍어서 보여주는건데? 웃기잖아... 니 이거 공포영화라고 찍은 거잖아.. 니 공포영화 감독이잖아... 디아더스 감독이잖아.. 근데 공포영화 관객들한테 '너네 폭력적인 거 이거 보고싶지? 보고싶지? 그게 니 욕망이야! 낄낄!' 이렇게 훈수 꼰대질을 하면 어떡해... ㅋㅋㅋ 이래서 감독들이 재수가 없다. 재수없는 놈들아!

 

 

 

  이것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건 앙헬라의 지도교수님 두 분이 모두 돌아가셨고.... 이걸 모두 겪은 앙헬라는 논문 쓰기를 관뒀다는 것이다....... ㅠㅠ 어떡해...... 지도교수 킬러 앙헬라.... 착했던 첫째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너무나도 침착하던 당신의.... 그.... 태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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