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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두근두근 문예부>, 메타와 체험은 함께 갈 수 있을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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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두근두근 문예부>, 메타와 체험은 함께 갈 수 있을까

허튼 2018. 2. 4. 18:32

*스포 주의* 

강한 스포는 자제하겠지만 어쨌든 스포 없이 플레이하실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도키 도키!" 원래부터 오타쿠 블로그였지만 이 짤이 썸네일로 올라가니까 더 확실한 오타쿠같다.. 


교환학생으로 와서 만난 친구가 "도키도키 리터라쳐 클럽을 아느냐"고 먼저 운을 뗐다. 자기가 영문과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이 게임을 언급하며 찬양을 했기에 플레이해보겠다고 선언을 하는 것이었다. 몇 주 전부터 트위터에서 워낙 부정적으로 시끄러웠던 게임이라 나도 마침 궁금했던 차에 스스로 해보겠다니 쌍수를 들고 반겼다. 근데 한시간쯤 뒤에 온갖 욕이 담긴 카톡이 날라오는 거라.ㅋㅋㅋㅋㅋㅋㅋ 원래 남이 욕하면 괜히 더 보고싶고 하고싶고 그러는 게 허튼의 본성이라 바로 스팀으로 달려갔다.


후.... 호기심이 허튼을 죽인다더니... 새벽 3시에 1부 플레이 하고 충격받아서 껐다가 무서워서 화장실도 못 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날 오후에 마음 잡고 2부를 플레이했는데 옆에 친구 없었으면 중간에 꺼버렸을것임.....ㅠㅠ 너무 무섭다 나는 나츠키 공략하고 싶었는데 내 동심!!!!!!!!!!!! 그나마 나츠키가 가장 정상같아서 살았다. 처음엔 유리가 취향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나츠키가 좋아졌다. 모니카가 흑막인건 1부 플레이할때부터 감이 왔음. 사요리 스포씬 전부터 모니카가 쎄하긴 했는데 후................................................ 멘탈갈린다..........

엔딩을 보고 나서 몇 분간은 멘탈이 털린 채로 멍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잘 만든 게임이었다. 개발자의 애정이 느껴질 정도로. 게임에 트리거 요소가 있는 건 맞다. 내게는 트리거까진 아니었지만 이 게임을 통해 전 연애와 얼마 전에 당했던 거지같은 플러팅이 떠올라 좀 깊고 오래 빡쳤다. 그렇다고 해도 이 게임이 반전 공포 게임으로만 소비되는 건 재미없다. 이 게임은 단순히 반전이라는 단어보단 조금 더 흥미롭다. 사요리 스포씬이 과도하게 충격적이지만 스포트라이트가 거기에만 비춰지는 건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니다.



미소녀/년 연애 시뮬레이션(약. 미연시)은 일본 감성답게 빻았지만 나름 마니아층이 넓고 깊게 형성되어 있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미연시를 표방하면서 실상은 미연시가 아니다. 이건 심리공포게임에 가깝다. 플레이하기 전에 경고문구도 나온다. 심약자 플레이 금지라고.ㅋㅋㅋㅋㅋㅋㅋ


내 캐릭터 이름은 실러라고 지었다. 문예부에 들어간 실러 넘나 좋은 것


ㅠㅠ 학교 축제를 위해 역할분담을 하는데 플레이어가 도와줄 캐릭터를 골라야 한다.


선택지는 원래 나츠키, 유리, 모니카 순. 그런데 내가 나츠키를 고르려고 마우스 커서를 나츠키에게 가져다 대면 커서가 저절로 모니카에게로 내려간다. 커서가 내려가기 전에 신속하게 다른 선택지를 클릭하면 저렇게 배경에 눈알과 함께 수없이 많은 모니카 선택지가 나오게 된다. 이 게임에서 그 어떤 고어요소보다 무서웠던 장면이다.ㅠㅠ 

글씨 깨지는 건 이 게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한글패치 과정에서 무슨 오류가 난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게임의 일부다. 1부 사요리 스포씬 이후에도 오류가 났길래 리셋하려고 했는데, 그 오류 자체가 게임의 한 요소다. 


어쩔 수 없이 모니카를 선택하면 나츠키가 빡쳐있다. 나츠키 마음 = 내 마음.


게임을 진행하여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게임이 깔리는 폴더에 직접 들어가서 캐릭터 파일을 지워야 하는 점도 흥미롭다. 스팀게임 깔리는 경로 모르면 엔딩 못 본다는 얘기다.ㅋㅋㅋ


캐릭터 파일을 삭제하면 오프닝 화면에서 정말 그 캐릭터가 삭제되어 나온다.

캐릭터별로 파일을 만졌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도 다르다.



메타나 제 4의 벽 깨기는 못 만들었을 때의 리스크가 정말 크다. 이걸 시도했는데 못 만들었다면 퀄리티가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멋만 잔뜩 부린 알맹이 없는 콘텐츠가 되기 십상이다. <두근두근 문예부>는 제4의 벽을 깨는 동시에 플레이어를 게임에 참여시킨다. 이 때 메타와 체험이 동시에 가능해지며 바로 이 점이 <두근두근 문예부>가 잘 만든 지점이다. 굉장히 정교하고 참신하다.


제4의 벽 허물기는 보통 관객/플레이어를 무대/스크린에의 이입에서 나오게 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데드풀처럼 단순 재미를 위해, 그리고 캐릭터성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낯설게 하기"의 목적으로 활용된다. 관객을 무대에서 떼어놓고 이 무대를 좀 비판적으로 바라보라는 메시지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재미있는 전환이 발생한 것이다. 제 4의 벽을 깨고 게임 속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메타 발언을 함으로써 플레이어는 게임 속으로 더더욱 이입되어 간다. 현실의 게임화,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이 게임은 메타와 체험을 동시에 가능케 하기 위해, 플레이어를 게임 내부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게임 외부까지 게임으로 만들어버린다. 엔딩이 다가왔을 때 모니카가 플레이어의 이름(실명 또는 닉네임. 아무튼 플레이어가 생성한 캐릭터의 이름은 아니다)을 직접 호명하는 것은 이 과정의 절정. 아마 내 파일이나 인터넷 기록 등을 훑는 것 같은데 기분 진짜 나쁘다.ㅋㅋㅋㅋㅋㅋㅋ 플레이어가 현존하는 공간 즉 현실마저 게임의 한 요소로 바꿔버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은 여느 게임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체험이다. 이를 위해서 꼭 고어 요소를 넣었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게임이 노린 것은 모두 성공적으로 성취한 듯 싶다.



언더테일 팬들은 이따위 게임을 언더테일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하기도 한다던데 이건 내가 아직 언텔을 안해봐서 뭐라 말할 수가 없다. 해서 다음 게임 후기는 아마 언더테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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