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영화 <맥베스> 감상 본문
감독: 저스틴 커젤
출연: 마이클 패스벤더(맥베스), 마리옹 꼬띠아르(레이디 맥베스). 패디 콘시딘(뱅코우), 숀 해리스(맥더프), 데이빗 듈리스(덩컨)
영화정보: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364
얼마 전부터 계속 듣고 있는 오페라 아리아가 있다. 베르디 <맥베스>의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Pietà, rispetto, amore)'.
레이디 맥베스가 죄책감에 미쳐 죽고 난 뒤, 맥베스는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며 아리아를 부른다.
"연민도, 존경도 사랑도 모두 사라졌구나,
늘그막에 위안을 주는 것들이...
그들은 네 만년에 꽃 한송이조차 던져주지 않을 것이다.
내 묘비에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새겨지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저주가 있을 뿐이다.
저주가 네 죽음을 위한 장송곡이 되리라."
이 아리아에 꽂혀서 오페라 맥베스가 궁금해졌더랬다. 블루레이를 주문해두었는데, 그 전에 내용 예습이라도 할까 싶어서 본 것이 이 영화다.
나는 원작이 있는 영화에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웬만큼 잘 만들지 않는 이상 원작 이상의 가치를 가지긴 커녕 대부분의 경우 원작의 감동을 난도질해놓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 내가 아직 셰선생의 맥베스를 읽지 않았기 때문인걸까, 생각보다 훨씬 좋다.
우선 내용적인 면.
셰선생의 문학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대사들이 도처에 즐비하다. 특히 레이디맥베스가 맥베스의 편지를 읽고 예언의 내용을 들은 후 덩컨 살해의 음모를 읊조리는 장면과, 맥베스가 덩컨을 죽이러 가기 전 단검의 환영을 보는 장면, 맥베스가 손을 씻는 장면이 무척 인상깊었다.
레이디 맥베스의 독백
덩컨 시해 후 맥베스가 손을 씻는 장면의 대사는 특히 마음에 쿡쿡 와서 박혔다.
맥베스 내 손이 왜 이런 것이냐?
내 두 눈을 뽑은 것 같구나.
위대한 넵튠의 바닷물을 다 쓰면 이 손의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지.
오히려 이 손이 대양을 붉게 물들여
푸른 바다를 붉게 바꾸리라.
레이디 맥베스: 제 손도 같은 색이에요.
허나 제 심장은 부끄러움으로 창백하지 않아요.
약간의 물이면 씻겨질 죄입니다,
아주 쉽게!
"내 두 눈을 뽑은 것 같구나" 이 대사는 마지막에 맥베스가 맥더프와 싸우며 울부짓는 장면에서 내게 다시 한 번 상기되었다.
"내가 왜 바보같은 로마인 흉내를 내어 내 칼에 죽는가?" 이 대사와 함께 오이디푸스를 호출해낸다. 운명과 예언과 비극, 잘 어울리는 쌍이지 않은가.
"내 마음 속에 전갈들이 우글우글하오."
배우진들의 연기력은 말해 뭣하리... 모두가 고전에 걸맞는 무거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뱅쿠오가 좋더라. 역시 나는 베이스를 덕질할 몸.. 마이 바디 이즈 레디.....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연극적 화법을 영화적 화법으로 잘 옮겨오면서도 원래 장르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거의 모든 대사를 읊조리듯 말하고, 이는 연극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객석 뒤에까지 대사전달이 원활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고, 읊조리는듯한 톤이 잘 어울렸으며, 결과적으로 훌륭했다. 연극적 연기와 영화적 연기의 차이를 제대로 활용한 것인데 이런 걸 언제 또 봤더라. 아, 톰 후퍼의 영화 <레 미제라블>에서 앤 헤서웨이가 팡틴의 'I Dreamed a Dream'을 불렀을 때였던 것 같다.
아주 오래 된 연극만이 말할 수 있는 극도의 문어체와,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익스트림 롱 쇼트와 슬로우모션, 짧게짧게 쳐대는 장면전환 등을 황홀하게 섞어놨다. 특히 장엄한 원경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새삼 이 유명한 내용을 더욱 웅장한 비극으로 만들어준다. 스크린 전체에 깔리는 짙은 피의 색깔과 먼지의 텁텁함 역시 마찬가지. 혹자는 영화적 어법에 매몰되어 연극적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평하던데, 이 작품이 이미 영화인데 연극적 본질을 가지고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충분히 연극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특히 인상깊어, 머릿속에 이미지로 각인된 성과 빛.
고증에도 무척 신경을 많이 써 공들여 만든 티가 났다. 맥베스의 침실과 성, 교회들... 연회장의 모습까지 이 영화적 무대(감히 무대라 말하고 싶다.)는 내게 너무 아름다웠다. 고전 작품을 굳이 현대까지 가지고 온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베르디의 맥베스를 볼 차례다. 루치치와 네트렙코, 파페가 나오는 14년 메트 블루레이를 사 뒀다. 영화에서도 뱅코우가 가장 좋았는데, 파페 뱅코우는 어떨까. 너무 일찍 퇴장하는 캐릭터라 조금 나오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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