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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운명의 힘>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13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운명의 힘>

허튼 2018. 2. 4. 08:07

******오알못, 클알못 후기 주의******




지휘: 아셔 피쉬

연출: 마틴 쿠세이

출연: 요나스 카우프만(돈 알바로), 안야 하르테로스(돈나 레오노라), 루도빅 테치에(돈 카를로), 비탈리 코발료프(칼라트라바 후작/과르디아노 신부)


쿠세이 정주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17일에 뮌헨 레지덴츠테아터에서 공연되는 쿠세이 연출 연극 <파우스트> 예매해 둠.ㅋㅋ 이번 교환학생때 유럽에서 볼 마지막 공연이다.

쿠세이 후기를 4개쯤 쓰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사실 Kusej를 쿠세이라고 읽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쿠세이보다는 "쿠수ㅖㅔ(ㅣ)"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어 쓰는 거의 모든 사람이 쿠세이라고 표기하니까 그냥 계속 쿠세이라고 쓸 예정이고.. 쿠세이가 혹시나 한국어를 배워서 자기 이름을 검색한다면 당신의 이름은 쿠수ㅖㅔ입니다.



이 프로덕션은 내게 개인적으로 낯이 익은 프로덕션이다. 때는 오페라를 <돈 카를로>로 처음 파기 시작했을 때 2012년 취리히 베흐톨프 연출 돈 카를로를 너무 보고싶어서 몸부림치던 시절..




당시 나는 취리히 돈칼의 이런 무대를 보고 와씨;; 미쳤다; 베흐톨프 갓갓연출; <<을 외쳐대고 있었다. 동시에 13짤츠 돈카를로를 빨면서 카우프만 얼빠질을 하고 있었는데, 하르테로스가 엘리사베타 의상처럼은 안 보이는 옷을 입고 저 십자가 위에 올라타있는 사진이 자꾸 검색 결과에 걸려서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게 바로 이 운명의 힘이었다. 쿠세이 제가 무대 파쿠리범 의혹 겁니다. 아 무대니까 마틴 체헤트그루버한테 파쿠리범 누명을 씌워야 하는 걸까? 여튼.

그래서 항상 보고는 싶었는데, 카우프만이 96샤틀레 돈카를로 햄슨 가발보다 더 못생긴 이상한 가발을 쓰고 나와서 볼 맛이 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쿠세이 빠는 김에 한번 보자 하고 블루레이를 질렀는데 흠... 여전히 카우프만 가발은 못생긴데다가 흰색 난닝구 정말 못생겼더라.. 4막에서 쌔끈하게 입고 나와서 봐줬지 아니었으면 블루레이 화형식 할 뻔 했다.



쿠세이 연출중에 가장 얌전한 거라고 해서 보기 전부터 살짝 겁을 먹었다. 다 보니까 진짜 얌전했다. 내가 비록 클래식/오페라 알못에 막귀 막눈이지만 같은 연출가 작품을 스트레이트로 다섯 편 쯤 보면 이 연출이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는 알게 되지 않겠음? 죽음이 도처에 산재해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얀 분칠을 한 앙상블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은 대체 2008년 맥베스와 이 운명의 힘 사이에 쿠세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의심해보게 만들었다. 2010년 루살카에도 역시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의문은 더 강해졌다. 게다가 쿠세이 트레이드마크인 속옷인간마저도 코빼기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걸 정말 쿠세이의 연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속옷인간이 등장하지 않는데??? 대체 2008년과 2013년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죽음이 이 작품에서는 원초적인 운명보다 종교적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에 흰색 분칠과 알몸인간을 쓸 수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종교는 어쨌거나 인간의 날것에 한꺼풀을 입혀야 하니까.

물론 이 프로덕션에 빤쓰만 입고 등장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쿠세이의 속옷인간'은 정말 무대 위에 하얀색 또는 살색 또는 피칠갑한 속옷만 입고 등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거나 움직이는 소품처럼 사용되는 인간이다. 그런 속옷인간이 이 무대엔 없다. 단지 3막에서 알바로의 아리아 때 y축이 돌아버려서 팔을 부들거리며 불편한 자세로 멈춰있는 앙상블들과 옷을 전부 입은 채로 바닥에 깔리는 앙상블들만이 '그래도 쿠세이 냄새는 나지 않냐?'며 소품처럼 활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쿠세이가 머리 풀고 달린 건 아닌 것 같은 점 빼고는 정말 다 좋았다.ㅋㅋㅋㅋㅋ 이게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보려면 유튜브에 있는 다른 쿠세이 연출작들의 따봉 비율과 댓글을 보면 됨. 쿠세이스러움을 빼내고 대중성을 획득하였다! 특히 가수들의 연기력이 훌륭했다. 나는 진짜 내가 이미 내 인생을 무단점거하고있는 덕질감이 없었으면 카를로x알바로 팔 준비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기가 그 정도로 좋았다.ㅋㅋㅋㅋ 오페라 파면서 본 것들 중에 가수들 평균 연기력이 가장 높았을 듯. 근데 녹색 가디건 입은 테치에는 좀 적응 안되더라. 후 진짜 내가 못생긴 걸 보면 발작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알바로가 카를로랑 싸울 때 연기랑 연출 넘 좋아서 용서한다 이것도.

 

테이블의 활용도 좋았다. 이 테이블은 서곡의 저녁식사 장면부터 마지막 씬까지 계속 무대 위에 서 있다. 작년 5월에 봤던 베를린 <돈카를로>도 이와 비슷하게 계속 무대 위에 테이블이 올라와 있었는데, 거기서는 딱히 상징적으로 쓰였다는 생각이 안 들었지만 여기서는 좀 다르다. 쿠세이의 인터뷰에 따르면 탁자는 레오노라의 근원적인 트라우마다. 그러니까 무대는 지금 레오노라의 머릿속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상상이라고 할 수도, 꿈이라고 할 수도. 또는 죽어가는 레오노라의 마지막 주마등이라고 할 수도. 막간의 레오노라 얼굴 영상도 그런 의미에서 삽입된 것일 테다. 쿠세이 인터뷰 보니까 이 테이블은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운명의 가시적 상징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 세 명은 다 '권총 오발로 인한 칼라트라바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매여 있다. 그 죽음은 바로 이 식탁 앞에서 이뤄지며 트라우마는 공간에 각인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주요 인물 세 명은 인생을 조졌다. 특히 카를로는 나머지 두 명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았다. 얜 이 프로덕션 안에서는 어릴 때 그 사건을 겪고 인생 자체가 복수로 점철된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탁자는 항상 무대 위에 있으면서 크게는 레오노라의 상상 또는 기억 속에서, 작게는 무대 위의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그 때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트라우마적 공간을 호출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카를로와 알바로는 탁자 위에서 싸울 수밖에 없으며, 레오노라와 카를로는 탁자 위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윽 그리고 칼라트라바 후작과 과르디아노 신부를 같은 가수로 올린 것도 좋았고ㅠㅠ 혹시 다른 프로덕션에서도 이 두 캐릭터를 같은 가수로 올리는지 궁금해진다. 아무튼 극의 무게감이나 운명의 묘한 지배력이 이 가수의 얼굴을 통해 보였다.ㅋㅋㅋㅋㅋ <얼빠입니다 지나가세요



개인적으로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는 레오노라가 와닿았다. 죽으면 현세의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가끔씩 최고의 위안을 주곤 하니까 말이다. 그런 게 죽어가는 레오노라에게서 보여서 참 좋았다. 죽음이라는 최후이자 최고의 보루가 있다는 건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듬직한 위안이다. 레오노라에겐 종교적이었지만, 내게는 종교는 좀 덜어내고, 그냥 원초적인 죽음이 주는 어떤 안정감이 있다. 내세가 있다면 좀 싫을 것 같아.



나 진짜 어쩌다가 이렇게 쿠세이 광인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걸 보고도 쿠세이를 탈덕하지 못하여 한국 돌아가면 루살카를 볼 예정이다. 그 전에 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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