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03 짤츠 <티토의 자비>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03 짤츠 <티토의 자비>

허튼 2018. 1. 23. 09:04

*********오알못, 클알못 감상 주의*********




지휘: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연출: 마틴 쿠세이

출연: 베셀리나 카사로바(세스토), 도로테아 뢰쉬만(비텔리아), 미하엘 샤데(티토), 엘리나 가랑차(안니오), 바바라 보니(세빌리아), 루카 피사로니(푸블리오)



카르멘이나 마술피리에 비해 막 그렇게 엄청나게 재밌진 않았다. 2003년 연출인지라 앞의 두 작품보다 몇 년 일찍 연출된 공연. 유로트레쉬라 칭할 정도로 공격적인 연출이 없었기 때문일까, 이야기 자체가 그리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어서였을수도 있겠다. 엄청나게 문제적이고 돌려까는 그런 맛이 없어서 밍숭맹숭했을 정도. 음악적으로도 살짝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레치타티보가 너무 재미없음ㅠㅠㅠㅠㅠ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좋았다. 세스토 역의 카사로바가 세스토에게 매력을 몰빵시켜버렸다. 세스토가 비텔리아에게 왜 매달리는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겠을 정도다. 막.... 차라리 비텔리아가 세스토한테 매달리면 매달렸지 세스토는 평생 존멋일것같음.ㅋㅋㅋㅋㅋ 티토 역의 미하엘 샤데도 이 프로덕션에 잘 맞아들어갔다. 나 가수들 얼빠짓 하는 거 옆에서 관전하시는 분들은 내가 바리톤이랑 베이스만 좋아하는 줄 아시는데 사실 저는 테너 보이스를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얼빠짓하기엔 내가 테너 역들을 찐따밖에 못 봐서 그렇지....


<티토의 자비>는 이 프로덕션으로 처음 보는 작품이다. 스토리 자체에서 매력을 느끼진 못하겠다. 사실 이 작품의 존재 의의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음.. 이게... 어.. 그니까 이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내가 뮤지컬 체스 라이센스 공연에서도 존재의의를 착즙해내는 사람이란 말임. 근데 <티토의 자비>는 어디에서 착즙해야할 지 정말 모르겠다. 취향의 문제입니다. 필사적으로 착즙해보자면 티토와 푸블리오를 제외한 주요 인물에 전부 여자가수를 쓴다는 점일까? 덕분에 가랑차 얼굴의 세스토와 가랑차 얼굴의 안니오를 둘 다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 지구의 아름다움에 한 몫을 했구나.. 모차르트 만세다.


존재의의를 못 찾았다는 게 몸부림 칠 정도로 재미없었다는 얘기까진 아니다. 좀 늘어지면서 재미없긴 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부분은 있었음. 예를 들면 푸블리오의 캐릭터라던지. 이 영상 외에 이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프로덕션에서 푸블리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봐도 다른 프로덕션에서 이런 푸블리오는 나오지 않았을 것 같음. 신이 점지해 준 레포렐로 피사로니가 푸블리오를 맡았다. 젊은 피사로니 정말 피지컬도 좋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구축했다.

우선 이 프로덕션 티토의 캐릭터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이 프로덕션에서의 티토는 어린 또는 미성숙한 소년이다. 소년인 것은 티토의 내면일 수도 있고, 티토 자체일수도 있다. 이는 극의 맨 처음과 맨 마지막에 매우 명확하게 보여진다.


쿠세이의 속옷인간은 2003년 이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티토가 무대 위에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으며, 티토는 혼란스런 얼굴로 무대 위에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을 휘젓고 뛰어다닌다. 마침내 티토가 무대 지층에 마련된 침소-정신병동 또는 고아원을 연상시키는-에 와서 침대 위에 앉으면, 이 건물의 모든 방에서 속옷을 입은 소년들이 등장한다. 망할 쿠세이 진짜 쿠세이가 사람한테 빤쓰만 입혀서 무대에 내보낸 장면 없는 프로덕션 제보받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 극 속에서 티토는 계속 손을 배배 꼬고 어딘가 이상한 모션을 선보인다. (연기 미스인 건지 디렉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딘가 이상한 모션은 세스토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알았을 때 사라져 있었다.)

3층짜리 건물을 거대하게 세워 둔 무대는 피날레 씬에서 빛을 발한다. 티토가 "이런 성격을 주셨으면 차라리 왕좌를 빼앗던가, 왕좌를 줄거면 이런 성격을 주지 말던가! 차라리 죽여달라!"고 절규하는 장면에서, 서곡 때처럼 건물의 모든 방에서 소년들이 다시 한번 등장한다. 하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다양한 나이대의 남녀 한 쌍이 테이블을 들고 와 자리를 세팅하며, 이 소년들을 테이블 위에 눕힌다.   




가운데 자리가 비어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저 자리는 필시 티토의 자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전체샷이 아닌 클로즈업때는 저 가운데 자리에 소년이 있더라.... 그렇다고 해도 보내는 메시지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지만. 결국 여기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주요인물들은 물론 백성들도- 티토의 순수성이나 자비를 제물로 삼아 사회를 이어나갔던 것이다. 티토가 군중에 시달리는 연예인같이 보였는데 뭐 이것은 정치인으로 보아도 되고 전제군주로 보아도 되고.. 일정부분 대상화되는 모든 직종을 다 갖다놔도 티토에게 이입할 수 있을 듯. 이 마지막 장면은 좀 대중적인 테이스트로 기괴해서 대중적 취향인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연출이었다. 나름의 미학이 느껴진다고!


아무튼 이런 캐릭터의 티토가 이 프로덕션의 푸블리오를 만나면? 유사부자 또는 보호자 관계가 형성이 되어버립니다! 티토가 푸블리오보다 나이가 많은 게 보이는데도 말이죠! 심지어 이 때 피사로니 완전 젊었다, 28세였다고!

주요 등장인물이 네 명인데 자길 사랑하는 한명은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오랜 친구였던 한명은 배신을 때리고, 충실한 신하는 배신때린 친구를 용서해달라 그러고,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은 배신때린 친구 동생임. 게다가 쿠세이 종특이 앙상블 막 데려다놓고 마네킹/소품으로 쓰는 거잖아요. 그 인간마네킹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자기가 자비를 베푸나 안 베푸나 건물 윗층에 달라붙어서 지켜보고 있음. 와 진짜 다 때려치고 그냥 본인 집에 불 한번 더 질러버리고 세상하직할거같은데 거기에 유일하게 티토 진심으로 걱정해주는(척 하는) 사람이 푸블리오임. 유일하게 티토의 편에 서서 티토 도담도담해주는 사람이 푸블리오란 말이다ㅠㅠㅠㅠㅠㅠㅠ 하지만 그것은 걱정해주는 척이고, 사실 푸블리오는 야심이 있음. 황제의 시종이나 근위병이 아니라 세스토나 안니오같은 귀족급 관리들하고 동급이 되고 싶을수도, 나아가 아예 본인이 황제를 먹어버리고 싶기도 하다.


티토가 세스토의 처형을 결정하고 퇴장한 뒤, 티토의 왕관을 써보려다 비텔리아에게 걸리는 푸블리오.


푸블리오가 야심을 숨기지 않는 건 세스토와 비텔리아, 푸블리오의 삼중창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게 진짜 이상한 장면이었는데, 푸블리오가 세스토에게 계속 재판하러 가자고 말하면서 비텔리아, 세스토랑 계속 섹슈얼 텐션을 세우는 것임. 아니 그니까 왜??????????? 그 장면을 제외하면 티토와 푸블리오의 관계는 허수아비 왕과 흑막책사 머 이런 클리셰로 소비할 수 있지 않겠읍니까 허튼님 그런거 되게 좋아함.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대체 쿠세이에게 얼굴에 하얀 분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걸 보고 난 직후에분칠이 '죽음'의 가시적 상징인 줄 알았다. 적어도 죽음에 대한 결심을 말할 때 분칠하는 줄 알았다. 뭐 백골은 말그대로 하얀색이니깐요?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맥베스>에서 맥베스도 죽은 레이디맥을 보며 얼굴에 분칠했던 걸로 기억하고, 카르멘에서도 죽음 카드점 볼 때 분칠한 앙상블이 나왔다. 게다가 파이널 씬에서 호세가 카르멘 죽이기 전에 앙상블은 얼굴에 직접 분칠한다. 마술피리에서는 냉장고에서 튀어나온 냉동여왕이 파미나에게 칼을 쥐어줄 때 얼굴이 비정상적으로 밝고 하얗게 반짝거렸고(이건 냉동돼서 그런걸수도), 티토에서도 비텔리아가 자신이 세스토를 사주했다며 티토에게 고백하러 결심하는 장면에 직접 하얀 분을 바른다. 그 왜 마치 <M.버터플라이>에서 르네가 마지막 씬에 죽기 전에 스스로 화장을 하듯 뭐 그런 걸수도 있잖음. 


아 근데 아까 M22 <돈 지오반니> 보는데 다르칸젤로가 열심히 카탈로그 부르는 와중에 분칠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임!!!!!!!!!!!! 이것이 섹스셀링용 화장인지 쿠세이가 자주 쓰는 분칠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후자라면 카탈로그송이랑 죽음이랑 뭔 상관인 걸가요?!?!?!?!??!? 알수없어 알수없어 쿠세이 알려줘요 알려줘요 쿠세이 왜 칠하나요 (핏.겟세마네





좀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의외로 초반에 있었다. 안니오와 세빌리아의 이중창 최고ㅠㅠ
가랑차 얼굴 최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얼굴천재 가랑차 사랑해요 가랑차는 얼굴의 신이다!!!! ㅠㅠㅠㅠㅠㅠㅠ  얼굴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한다 심지어 음악도 좋다. 이것 말고는 딱히 내게 남는 음악은 없었다.

다음 후기는 M22 돈지오반니.. 3년전 쯤 처음볼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마제토가 피사로니더라. 장인이 사위 아내 될 사람(???딸 아니냐????) 뺏어서.......... 자려고 하는걸로 보인다고..........................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