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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러가 태어난 마을, 마르바흐 당일치기 여행 본문

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는 것들/전공

실러가 태어난 마을, 마르바흐 당일치기 여행

허튼 2017. 7. 7. 08:42

  내가 실러를 덕질한 지도 이제 원투데이가 아니다. 1년이 좀 넘었지 싶다. 2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작년 쯤 교환학생 면접때 실러를 너무 좋아해요 하며 덕심을 뿜어냈었다. 그 교환 면접을 봐주시고 면접 후 바로 다음 학기에 실러의 <간계와 사랑> 수업을 진행하셨던 교수님이, 교환교가 발표 났을 때 어디로 가게 되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튀빙엔이 무슨 역사를 갖고 있는지도 몰라서 그냥 가볍게 튀빙엔이라고 대답했는데, 교수님이 왠지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니? 하는 표정으로 "왜 그런 시골을 가게 됐어요~?"라고 되물으셨다. 교수님 혹시 제가 실러 덕질 하러 튀빙엔 간 건 줄 아셨던건가요? 헬 예스입니다!!!!!!!!

  헬 예스 이번엔 걸어서 도시 전체를 다닐 만 한 작은 마을이지만 제법 위상을 떨칠 만 한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도시, 마르바흐에 갔다. 그 위상높은 별명이란 무엇인가? 바로 '실러가 태어난 도시'라는 것이다. 으윽 뿌스러기실러ㅠ

  튀빙엔 쯤이나 왔으니 마르바흐같은 데를 가지 2지망이었던 베를린 갔으면 바이마르나 한 세번쯤 갔겠지 마르바흐를 왔겠냐고. 교환교 리스트에 예나 대학 있었으면 그쪽으로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마르바흐에 가기 위해서는 슈투트가르트에서 S반을 타고 30분정도 더 들어가야 한다. S반에서 내리면 바로 눈 앞에서 Schillerstadt(실러 도시)라는 별명이 내 입꼬리를 내려가지 못하게 한다. 아니 솔직히 너무 웃기지 않나? 이런 기둥이 한두개가 아니다 기둥이란 기둥, 인포메이션 표지판이란 표지판은 전부 Schillerstadt라고 써 있고 실러 얼굴이랑 명언도 같이 붙여놨다. 으아아악 아무리 셀링포인트라고 해도 그렇지 과하면 보기 이상하단 말야!


  중앙역에서 나오면 바로 Schillerstraße(실러 길)다. 저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가면 마르바흐의 Alte Stadt(구 시가지)가 나온다. 관광지는 거기다. 


  Alt Stadt의 모습. 아기자기한 집이 귀여웠다. 마당은 없지만 집집마다 다닥다닥 붙어서 필사적으로 식물을 가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근처에 실러가 태어난 집이 있다. 그렇지만 첫번째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실러 국립 박물관이다.


  박물관들이 모여있고, 관광객들이 와서 쉬어갈 수도 있는 Schillerhöhe로 가는 길에 있는 조각 작품. 저것마저 실러다. 징한놈들 나보다 더 해


  Schiller Nationalmuseum의 모습. 마르바흐에 있는 건물 중 비교적 신축인데 위엄있어보인다.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실러 아카이브처럼 왠지 전문가만 들어갈 수 있는 것처럼 생겨서 혼자 들어가는 데 조금 망설였다. 사실 들어가면 별 거 없고 안내직원분이 친절하게 Kasse는 어디 있는지, 표 사고 들어오면 어느 관을 먼저 들어가야 하는지, 어디엔 무엇이 있는지 전부 알려준다. Schillerverein Marbach라고 마르바흐 내에 있는 실러와 연관된 것들을 관리하는 연합이 있는가 본데, 이 박물관의 입장 티켓은 현대 독일 문학박물관의 입장 티켓과 묶어서 팔고 있다. 학생할인 받은 가격은 7.5유로.

  지하에 있는 Kasse에서 티켓을 사면, 짐 맡기는 사물함에 가방을 넣고 1층으로 올라간다. 직원이 안내해주긴 하는데, 건물의 우측으로 들어가면 실러에 대한 것들만 있는 전시관이다. 실러가 생전에 보낸 편지들(중 괴테와 주고받은 것들은 이 박물관엔 없다. 아마 바이마르의 괴테-실러 아카이브로 전부 넘어가 있는 듯 하다. 주로 쾨르너 혹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되어있다.), 남아있는 기록들, 학창시절 문서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이 그 당시 어떻게 출판되었는지에 대한 것들이 있다. 마지막 방에는 실러가 집에 가지고 있던 물품들이나 실러의 옷가지들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의 좌측으로 들어가면 실러 전후의 문학사적 배경이나 당시 작가들에 관한 것들을 보관해놓은 전시관이다. 주로 뫼리케나 헤르더. 횔덜린. 클라이스트 등의 작가들에 관한 신변잡기들이 놓여있고, 마지막 관엔 심지어 니체가 남긴 쪽지도 있다.

  이쯤되면 감이 오겠지만 이 박물관엔 정말로 중요한 독일 작가들의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전시되어있다. 뒤에 서술하겠다.


실러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이 방이 관광객을 반긴다. 현재 남아있는 실러의 초상화, 스케치, 동상, 조각작품, 얼굴 부조 등을 전부 모아 한 방 안에 전시해놓았다. 정말 이 안은 일억이천 실러 얼굴뿐이다. 잘생겼다 톨앤핸썸이 최고다 나 실러 얼굴때문에 좋아하는 거 맞다.


그 다음 방에는 실러가 태어났을때부터 죽을 때까지 그에 관해 남아있는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위의 사진처럼, 실러의 학창시절 시간표와 같은 것들이다. 초딩때 아니면 카를스슐레 시절이 아닐까 하는데, 배우는 과목들은 만만히 볼 게 아니다. 그는 이 시기에 그리기, 해부학, 동물학, 영어, 역사, 프랑스어, 외과술, 예습, 복습, 식물학, 종교, 검술, 춤... 을 배웠다. 너무 엄청난 사람이고 춤 배운 거에서 너무 귀여워져버렸다.....ㅠㅠ 그래 당신도 18세기 사람이지... ㅜ..


  마지막 방에는 실러의 옷가지와 작은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시대 사람들은 타나토스를 제법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양인지라 죽은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보관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러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들이다,... 크ㅡ리ㅡ피


  국립 실러박물관 건물 안에 있는 카페 문으로 나오면 정말 예쁜 전경이 펼쳐져 있다. 마르바흐 전경은 아니지만, 푸른 자연이 튀빙엔과는 또 달라서 색다르다. 이 Schillerhöhe 공원 안에 실러의 아버지 카스파르가 가꿨다던 과일정원도 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볼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

멀리 네카강이 보인다!!! 반가워 네카!!


  묶어서 입장할 수 있는 현대 독일문학 박물관에는 4개쯤 되는 방이 릴케를 위해 꾸려져 있고, 1900년대 독일 주요 문학작가들(벤야민, 아렌트, 하이데거, 니체 등 철학자도 있다)의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뫼리케의 지팡이, 토마스 만의 여행증명서와 여행 사진첩, 헤세의 스케치노트, 하이데거의 횔덜린 수업노트 등을 예로 들 수 있다ㅋㅋㅋㅋㅋ 그 중 가장 안 중요해 보였던 것은


  카프카의 여행가방에서 나온 포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전시해놓는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건 어쨌든간 상관없잖앜ㅋㅋㅋㅋㅋㅋㅋ

  여기에 있는 박물관은 정말 관광객이 적은 편이다. 대신 여러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을 오는 모양이었다. 도슨트 프로그램도 있는가 보더라. 단체로 마르바흐에 오다니... 정말 신기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다시 Alte Stadt로 가는 길. 중세시대 도시의 흔적처럼 성곽이 남아있다. 멀리 네카강 너머의 도시까지 보인다. 마르바흐라는 이 마을이 제법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음을 실감케 한다.


  실러가 태어난 집은 찾기 어렵지 않다. 중앙역에서 Alte Stadt로 진입하자마자 있는 건물이기도 하거니와, 누가봐도 중요해보이는 현판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Schiller's Geburtshaus라고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다. 45년밖에 못 산 실러님 제가 너무 사랑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집에 볼 건 별로 없다. 실러 인생에서 중요했던 시기는 두말할것없이 도망자 시절이거나 바이마르 시절이기에, 실러에 관한 중요한 것들은 다 바이마르에 가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너무 귀엽지 않나요 실러가 뿌스러기때 입었다던 배냇저고리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실러야 나는 너를 사랑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기념품과 실러에 관한 책들을 파는 기념품가게. 독일사람들 미감 다 망했냐 어떻게 굿즈로 저딴 괴이한 괴테실러 인형을 팔고있을 수 있지???? 심지어 누가 옛날에 사갔는지 wieder?????? wieder zu haben????? 손님도 별로 없고 내가봤을때 이 가게 주인아저씨는 실러를 너무좋아해서 취미로 이거 하고있거나, 아니면 실러 연구자인데 부업으로 이거 하고있는 게 분명하다. 가게 안에 있는 책들이 너무 덕후 마음에 불질러놓는것들이었다. 예를들면 <프리드리히 실러: 자유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것들. 바이마르의 괴테하우스 굿즈샵에서 팔고 있는 괴테 만화책과 시리즈인듯 한 실러 만화책도 팔고 있었다. 이건 좀 사고싶었는데. 괴테와 실러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것도 중고책이라고 16유로에 팔고 있었다. 물론 살 필요는 없다. http://www.briefwechsel-schiller-goethe.de/seiten/zeittafel.php 여기 가면 10년치 편지 다 볼 수 있다. 


  이 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에 7월의 태양이 작열하는 날씨였다. 나를 구워버리겠다는 태양의 의지마저 느껴지는 날씨여서, 4시쯤 되자 어딘가에 들어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것만 같았다. 급하게 들어간 카페에서 앞펠숄레와 케익을 하나 시켜두고 점원과 스몰토크 하면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기다렸다. 이 마을을 돌아보기에 실러오타쿠인 내게 6시간은 너무 짧았다...ㅠ......

돌아가는 아쉬운 발걸음을 달래주는 것은 역시 S반을 타러 가는 지하도에 있던 실러 그라피티!

  알았어, 알았어... 니네 셀링포인트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해도 돼........ㅠ.......... 마을을 떠날때까지 실러 셀링을 멈추지 않는다, 마르바흐는.

  과할 정도로 실러로 범벅되어있는 도시였다. 실러 말고는 토비아스 마이어 박물관도 있던데 이 마이어가 실러가 죽었을 때 괴테의 집에 손님으로 있었던 그 마이어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 맞지 싶은데. 실러가 죽었다는 부고가 괴테의 집에 전해졌을 때, 이 소식을 괴테가 듣고 나서 필연적으로 그에게 찾아올 깊고 깊은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괴테의 집에서 도망쳤다는 마이어... 동네 친구였던 건지..

  아무튼 나에게는 매우 즐거웠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6시간은 너무 짧았다는 것 빼고는.. 한 8시간이었으면 더 만족스럽게 관광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재밌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니 언젠가 또 한번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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