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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기후위기] 연극/드라마/연극텍스트와 기후위기 (독문학) 학술대회 후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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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기후위기] 연극/드라마/연극텍스트와 기후위기 (독문학) 학술대회 후기

허튼 2023. 10. 16. 05:21

 

 

진짜 모르겠다 나는… 이걸 왜 하는지…

 

 

  폴란드 우치 대학교 독어독문학과가 주최 및 주관, 독일 연구협회 현대드라마연구 네트워크, 뮌헨대학교 연극학과, 베를린 ‘인류세의 연극’ 팀이 공동으로 주최해 폴란드 우치에서 2023년 10월 13-14일 이틀간 열린 학술대회 후기

 

  이틀간 연구발표 16개, 극작가들의 연극텍스트 발췌 낭독 세 편이 진행됐다. 대부분의 발표들에서 이론적 배경으로는 (당연하게도?) 해러웨이, 브라이도티, 라투르 – 에코페미니즘, 신유물론, 행위자연결망이론 – 가 주를 이뤘고, 작가는 (또 당연하게도?) 토마스 쾩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주제 면에서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포스트인간중심주의적 연극 Post-anthropozentrisches Theater”을 만들려는 텍스트 및 공연 분석이 대부분이었다.

 

  하… 아니 근데 진짜 모르겠단 말임… 난 이걸 너무나도 유럽적 사치라고 부르고 싶다. “포스트인간중심주의적 연극”을 한다고 예로 드는 게 뭐냐면: 숲 속에서 (자연의 풍경을 무대배경으로, 자연의 소리를 음향으로 활용해) 연극하기, 인간이 자기를 잊고 공간 또는 다른 존재들에 융해되기 (이게 진짜 되냐고), 인간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품을 가지고 동물을 몸짓으로 표현하기 또는 인간이 미상의 생물 분장을 하고 연극하기 (우리는 모두 사이보그겠죠..네네..), 너른 들판에 나무를 (공연을 기획한 인간이 계획해서 구도에 맞추어) 심고 나무가 심겨진 들판을 배경으로 오페라 공연하기 등이었다. 어쩌라고 진짜… 열사병과 홍수로 사람이 진짜 현실에서 죽고 있다고요… 시발…

 

  인류세라는 명칭을 굳이 붙인 이유가 뭐임. 인간이 만든 재앙 인간이 책임을 좀 지라는 거잖아. 근데 갑자기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하자면서 어차피 인간만이 행위주체로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연극에 자연을 동원함. 그것도 무척이나 인공적으로. 나는 이게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의 얘기를 대놓고 하는 게 낫지 않나? 왜 갑자기 자연의 일부가 돼서 책임을 회피하려 드는거임? 오염수 바다에 방류하는 거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거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대한민국 개미똥구멍만한 땅에 골프장 500개 넘게 짓고 골프장 갯수로는 세계 8위인 거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거 몰라서 그러는 거 아니잖아. 다들 아는데 지랑은 상관없을 것 같고 당장 돈이 중허다고 생각하니까 그러겠지… 다들 알면서 하는건데 새삼 인간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어요… 느껴봐 이 자연…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하나가 되어봐… 이러면 사람들이 퍽이나 비트코인 그만 캐고 패스트패션 산업이 멈추고 전자기기 2년마다 교체하도록 만드는걸 그만두고 개인 경비행기 운행이 줄겠어요. 게다가 진짜 의사결정권자들은 저런 연극 안 볼걸? ㅋㅋ 열사병과 홍수로 사람이 진짜 현실에서 죽고 있다고요… 시발…

 

  결국 도대체 연극이 이 주제에 도대체 어떤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다루는 사람은 적었다… 기조강연을 한 프랑크 라닷츠는 기후위기는 결국 인식론이라면서 포스트인간중심주의적 연극의 원천을 저 고대에서부터 찾아서 (니체가 디오니소스적이라고 이름 붙인 고대연극에선 인간은 죄다 동물과 하나가 되었다고… 네네…) 정당성을 부여하려 함… 그나마 안드레아스 엥글하르트가 어떻게 연극으로 정치적 참여를 독려할 것인가, 결국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와 드라마 – 그리고 결국 비극이 중심이어야 되지 않겠냐 정도를 얘기했고 펠릭스 렘프가 아동•청소년극의 참여적 형식에 집중했다. 카롤리나 시도프스카는 기후위기는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데 연극텍스트가 그 상상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걸 어필했음. 그리고 그 밖엔 숲속에서 연극을 하고 인간이 동물 흉내를 내고 뭐 어떻게든 자연과 동물을 갖다쓰면 마치 자동적으로 기후위기라는 주제에 기여를 하게 되는 것 마냥 얘기를 함… 극작가들이 직접 자기 작품 읽는 낭독 시간도 있었는데 그때도 작품에 개, 공룡, 알 등등등 비인간들이 잔뜩 등장해서 인간의 말로 대사를 읊고 아주 난리 나셨어요. 연극텍스트를 분석한 문학연구자들 쪽은 좀 나았는데, 그 이유도 문학이 어떤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대답해서 나았던 게 아니라, 그냥 이 주제를 작가들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나 좀 더 집중해서 그런 듯. 아무리 봐도 연극은 예술가들의 자기표현과 자의식을 위해 너무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소모하는 예술인 것 같음. 

 

  그러다 결국 여러 발표들 이후에 이어진 토론시간에서 모아진 중론은 ‘연극은 이차적으로, 간접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연극은 예술이고 교육세미나가 아니라면서… 근데 뭔 이차적인 것도 적당히여야지, 나는 지금 마음이 급하다고!! 

 

  가장 싸가지없었던 건 이 학술대회장에 전부 독일/폴란드/오스트리아/스위스에서 온 백인들밖에 없었다는 점임. 이게 얼마나 싸가지없는 일이냐면… 청중으로 앉아서 모든 발표에 한마디씩 얹던 노교수가 “온난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평범한 사람들 normale Leute”은 따뜻해지면 대부분 좋아할 걸?” 이딴 소리 하는데 사람들이 웃는 걸 실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거. 열사병과 홍수로 사람이 진짜 현실에서 죽고 있다고요… 시발… 이게 유럽적 사치가 아니면 뭐야. 나 혼자 동양인이라 사진 계속 찍히고 주최측의 편리한 토큰ㅋㅋ으로 쓰인 건 여담.

 

  나쁜 얘기만 했는데 좋았던 것도 있긴 했다. 아르투어 펠카가 연극텍스트 속 홍수들을 분석하면서 하이너뮐러부터 시작한 것도 재밌었고, 기후위기를 다룬 연극텍스트들의 프롤로그들이 가진 공통점을 발견하려 한 클레멘스 외첼트의 발표는 이번 학술대회의 가장 마지막 발표였는데(프롤로그 분석 발표를 마지막에 넣은 건 주최측의 노림수였음) 진짜진짜 인상적이어서 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발표를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독일어권 현대연극텍스트 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난 것도 좋았고. 근데 그게 이 주제에 대한 회의감을 없애주진 않잖아요. 진짜 어쩔거냐고!!! 

 

  우리나라에서도 한 2~3년 전부터 차차 유행 타고 있죠, 이 주제. 지금으로선 그냥 유행이라고밖엔 못하겠음. 한국연극계에서의 페미니즘이랑 퀴어라는 주제처럼...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도대체 이런 긴급한 상황에 연극이 필요한 자리가 있긴 한건지 대답해주세요. 댓글 열려있습니다. 댓글 다시면 저한테 알림 옵니다. 일단 내가 찾은 (임시적) 답은 라투르/슐츠의 생태계급인데 연극이 생태계급의식 조직을 위한 이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거였음. 근데 학회에서 반응이 너무 안좋아서 (그럴법도 한게 이젠 계급의식 조직 이념 이런 단어 나오면 다들 경기 일으킴) 더 나은 답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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