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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세 번째~다섯 번째 편지 - 자연 국가와 도덕 국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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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세 번째~다섯 번째 편지 - 자연 국가와 도덕 국가

허튼 2018. 3. 30. 22:44

텍스트: 2015,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 대화문화아카데미

참고 논문:  위의 책 2부에 수록되어있는 논문. 조경식, 「프리드리히 실러 미적 교육론』의 논리 구조에 관하여



 실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실러는 국가의 존재 가능성 여부 자체를 의심한 적은 없다. 실러에게 국가는 자연적이고 당연한 존재다.


 이전 글에서 설명한 실러의 자유를 지금의 인간이 성취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러는 이것이 "한 세기 이상 걸릴 일"이라고 보았으나 실러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간은 실러가 주장한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했다. 쓸 거면 좀 더 쓰지 쪼잔하게 한 세기가 뭐냐, 한 세기가. 상황이 이렇기에 "자유로운 지성적 존재로서 인간이 스스로 행동할 수 없을 때, 자연은 인간을 대신해서 행동"한다. 자연이 인간을 대신해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국가를 만들어준다는 말이다. 이 국가는 단지 인간 생존을 위해,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실러는 이러한 국가를 '자연적 필요국가(Notstaat)라고 부른다. 책에서는 각주를 달아 여기서 Notstaat가 '임시변통 국가' 또는 '불가피한 국가'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 후 우리가 이성법칙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임시 국가, 자연 국가(Naturstaat)에 만족할 수 없다. 그 때가 되면 우리에겐 '도덕 국가(sittlicher Staat)'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에 자연적 본능에 따라 행동했던 것을, 성인이 되어 이성을 사용하여 되짚어보는 상황이 있다. 자연 국가에서 도덕 국가로의 이행은 마치 이 상황과 같다. 자유에 따라 행동할 수 없었을 때 자연이 인간 대신 구성한 자연 국가를, 이성 법칙에 따라 자유로워진 인간이 다시 되짚어보며 합리적인 계약을 통해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행의 과정에서 인간은 도덕적 국가가 채 완성되지 않았을 때 물리적 국가(필요 국가, 임시 국가, 자연 국가 등으로 표현되었던 것)를 폐기해버리면 안 된다고 실러는 말한다. "물리적인 인간[각주:1]현실적(wirklich)으로 존재하지만, 도덕적 인간은 단지 가능적(problematisch)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실제적 존재를 걸고 단지 가능적일 뿐인 사회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실러에겐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것이. 즉, 이상적인 도덕 국가의 실현을 위해(이 말은 곧 아직 도덕 국가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하지, 현실에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 국가를 미리부터 폐기하여, 현실의 존재들, 특히 물리적인 인간들을 전부 기반 없는 위험에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는 실러가 프랑스 혁명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며, 또한 혁명에 대한 실러의 보수성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관념 안에 있는 도덕적 사회가 형성되는 동안, 시간 안에 있는 물리적 사회가 한순간이라도 중단되어선 안 되며,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 인간의 현존이 위험에 처해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자가 시계를 고칠 때는 돌아가는 시계의 톱니바퀴를 멈춰 세웁니다. 하지만 국가라는 살아 있는 시계는 그것이 작동하는 동안 수리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전하는 시계의 톱니바퀴를 회전하는 동안에 교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실러에게 문제되는 것은, 자연 국가에서 도덕 국가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떤 방법으로[각주:2] 국가라는 시계를 멈추지 않고 수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실러는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제3의 성격", 즉 미적 성격이라고 말한다. 제3의 성격은 물리적인 성격[각주:3]을 이성의 법칙과 일치시킨 상태, 도덕적인 성격을 감각적 인상에 의존시킨 상태, 결론적으로 물리적인 인간과 도덕적인 인간의 성격들이 한 인간 안에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성이나 감성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인간이 바로 제3의 성격을 가진 인간이 된다. 다시 말하면 성격의 총체성을 가진 전인적 존재이다.


 그리고 제3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 국가 속에 다수를 차지할 때, 자연 국가에서 도덕 국가로의 이행이 아무런 피해 없이 진행될 수 있다. '아무런 피해 없이'라는 조건은 실러에게 매우 중요하다.


 도덕 국가의 설립은 당연하게도 도덕 법칙에 기대고 있다. 그리고 도덕 국가 내에서 국가를 형성하는 인간들은 자유 의지로 도덕 법칙을 따른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 의지는 의무나 경향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격의 존엄한 권리이며 그 어떤 강제도 이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개인의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주관적이고 특수한 성격도 존중해야 하며, 보이지 않는 도덕의 왕국을 확장시키기 위해 현상의 왕국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몰아내선 안 됩니다."



 도덕 국가는 따라서 인간의 개별성을 억압해서도 안 되며 동시에 인간의 주관적 인간성으로 파괴되어서도 안 된다. 실러는 이 충돌을 해결하려면, 현상 세계에서 인간의 두 동력인 의무와 경향성이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실러는 하나 하나의 인간이 스스로 자율적으로 선택한 도덕성이 국가 전체의 이념과 일치되는 상태를 이상으로 삼는다.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인간만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주관적 인간성과 객관적인 보편적 인간성을 일치시켰을 때 그의 이상이 완성된다.[각주:4] "개인이 국가가 되고 시간 속의 인간이 이념 속의 인간으로 고양되는 것"이 바로 실러가 생각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이다. 다시 한 번 주의하자, 이것은 강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는 한 세기 이상 걸릴 이상인데, 왜냐하면 실러는 당대의 사람들이 모두 물리적 상태(자연적 욕구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실러는 자신 시대의 인간이 처한 물리적 상태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미개인(Wilder)이며, 하나는 야만인(Barbar)이다. 미개인은 아직 이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자연적 욕구에 따르는 사람이다. 실러는 이런 사람을 동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경멸해야 할 사람은 야만인이다. 야만인은 이성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기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역시 이미 알고 있지만, 무기력으로 인해 실천을 포기하고 자연적 욕구에 따르는 사람이다.


 프랑스 혁명은 실러에게 한때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는 물리적 가능성이었을 뿐, 도덕적 가능성은 그 안에 없었다. 프랑스 혁명의 경과에서 이제 시대에 남은 것은 미개한 인간과 무기력한 인간 뿐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교육받지 못한 하위 계층은 폭력적으로 내달려 국가를 해체해버렸다. 여기서 오히려 국가의 정당성이 부각된다. 국가의 해체 아래에서 인간 존엄성이 더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더 나쁜 것은 교육받은 '세련된 계층'이다. 이들은 준칙에 순종하기만 할 뿐, 정작 도덕적 행동을 해야할 때에는 충동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한다. 실러는 이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자유로운 판단을 사회의 폭군적인 의견에 종속시키고, 우리의 감정을 사회의 기괴한 관습에, 우리의 의지를 사회의 유혹에 예속시킵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실패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 우리는 이런 두 가지 방식으로, 총체성을 잃어버린 물리적 상태에만 빠져있게 된 것일까? 실러는 다음 편지에서 바로 '인간의 자기 소외'가 우리로 하여금 총체성을 잃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1.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힘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 (각주 인용) [본문으로]
  2. 실러의 표현으로는 "우리가 해체하려고 하는 자연국가와 독립적으로 존속하도록 해주는 발판"이다. [본문으로]
  3. 앞의 글과 연결시킨다면 경향성이나 기호라고 볼 수 있을 듯 [본문으로]
  4. 이 대목에서 나는 니체가 실러를 '도덕의 나팔수'라고 칭했다는 것이 생각났다.ㅋㅋㅋㅋㅋ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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