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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첫 번째, 두 번째 편지 - 왜 지금, 예술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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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 첫 번째, 두 번째 편지 - 왜 지금, 예술인가?

허튼 2018. 3. 27. 12:07

텍스트: 2015, 『프리드리히 실러의 미적 교육론』, 대화문화아카데미

참고 논문:  위의 책 2부에 수록되어있는 논문. 조경식, 「프리드리히 실러 미적 교육론』의 논리 구조에 관하여




 1791년 실러는 에어푸르트에서 졸도한 후 심한 폐결핵에 시달렸다. 이 때 실러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소문이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덴마크의 폰 쉼멜만 백작[각주:1] 폰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은 실러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매년 1000탈러씩 3년 동안 보내주기를 약속했다.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던 실러는 와병기간동안 칸트 공부에 매진했다. 


 실러의 미학과 도덕에는 칸트의 흔적이 숨김없이 들어 있다. 하지만 실러는 칸트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실러는 칸트에게서 해결하지 못한 부분과 틀린 부분을 찾아내었다. 1) 칸트는 아름다운 대상과 추한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2) 도덕성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실러는 첫 번째 지점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현상 속에서의 자유(Die Freiheit in der Erscheinung)"라고 정의내렸다[각주:2]. 두 번째에 대해서는 "도덕성은 순수하게 의무에 따른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칸트), 애호(Neigung)[각주:3]와 의무가 하나가 된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즉, 감각적 욕망이나 자연적 경향성이 그 뱡향에 있어서 이성의 의무와 합치되었을 때 비로소 완벽한 인간(종종 책에서는 '전인적 인간'이라고도 불리는)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래에 상술한다. 실러는 이 합치를 위한 교육의 방법을 미적 교육에서 찾았다.



 실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편지에서 그가 아름다움을, 그리고 예술을 연구하는 목적과 정당성을 먼저 밝힌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논리적인 전개 뿐만 아니라 호소성 짙은 어조로도 얘기할 것을 숨기지 않는다. 실러는 우선 첫 번째 편지에서 아름다움과 예술이 "인간의 최고 행복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앞서 말했듯 실러에게 인간의 최고 행복이란 경향성과 의무라는 두 인간의 힘이 균일하게 조화될 때 이루어진다. 이는 미적 상태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에 실러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행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실러는 미적 교육론』에서 "아름다움이, 혹은 아름다움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는 문학과 예술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느냐"[각주:4]를 먼저 따져본다. 두 번째 편지에서 실러는 "왜 하필 지금 예술이냐?"는, 가능한 비아냥을 미리 제시한다. 프랑스 혁명과 그에 뒤따랐던 혼란스러운 정세의 경과, 독일 통일의 요원 등 실러의 시대는 정치적 대 혼란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실러의 정치적 스탠스에 프랑스 혁명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각주:5] 이러한 정치적 대 혼란의 시기에 이상적 예술을 논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실러는 가장 잘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러는 예술이 정치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연구의 내용이 우리 시대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우리 시대의 필요와는 멀지 않다는 것, 그리고 현실에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적인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확신할 수 있길 바랍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은 바로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러에게 예술은 즉 가장 정치적인 영역이었던 셈이다. 아름다움과 예술의 교육을 통해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 책은 약 두 페이지에 걸친 각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자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칸트 그리고 실러의 차이가 설명된다.


1. 라이프니츠의 자유.

라이프니츠에게 자유는 두 가지다. 필연으로부터의 자유, 강제로부터의 자유.

필연으로부터의 자유는 우연이다. 즉, 필연성에서 벗어나 우리가 선택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유롭다.

강제로부터의 자유는 순수한 이성의 판단으로 가능한 자유다. 우리의 정념이나 욕구는 우리를 강제하기 때문에, 순수한 이성으로 이러한 강제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자유롭다.

2. 스피노자의 자유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의 두 가지 자유 중 정념의 강제로부터의 자유만을 인정했다.

3. 칸트의 자유

칸트에게 자유는 곧 자율이다. 라이프니츠의 두 가지 자유 개념이 결합된 방식으로 표현된다. 즉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상황에서(필연으로부터의 자유) 욕구의 경향성이 아닌 자율적인 이성의 판단에 따르는 것(강제로부터의 자유)을 말한다.

욕구의 경향성을 부정하고 자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의 힘은 순수실천이성이다. 순수실천이성은 욕구의 저항을 받으며, 이는 인간에게는 일종의 부담감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의무감이다.

4. 실러의 자유[각주:6]

실러에게 칸트가 말하는 의무감은 바로 "욕구에 대한 이성의 강제"가 된다. 이 또한 일종의 억압인 셈이다. 의무감이 강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욕구에 의한 경향의 대상이, 순수실천이성의 자율성에 따라 판단한 옳은 것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실러가 보기에 미적 교육이었다.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사회 개혁 대신에 사회를 형성하는 인간 자체의 개혁, 즉 예술에 의한 인간의 교육"[각주:7]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것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실러는 세 번째 편지에서 우선 자신이 생각하는 도덕국가의 모습을 설명한다.




  1. 실러도 'Sch'iller고 쉼멜만도 'Sch'immelmann인데 심멜만이라고 하든지 쉴러라고 하든지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ㅋㅋㅋ [본문으로]
  2. 이 정의는 <칼리아스 편지>에서 시도되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새롭게 시도한 것이 <미적 교육 편지>다. (논문 참조) [본문으로]
  3. 궁금한 점1. 칸트에게서 Neigung은 보통 '경향성'으로 번역되는데, 이 책에서 "애호"로 번역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본문으로]
  4. 같은 논문에서 인용 [본문으로]
  5. 궁금한 점2. <군도>에서부터 폭력을 수반한 혁명에 대해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내게 그가 정치적 혁명에는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일부 보수적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실러는 프랑스 혁명의 경과를 보고 이전의 스탠스를 바꾼 것이 아니라, 사실 그냥 이전부터 갖고있었던 생각이 프랑스 혁명의 경과로 정당성을 얻게 된 것 아닐까? [본문으로]
  6. 궁금한 점3. 이 각주에서 "무차별적 상태"와 "뷔리당의 당나귀 비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후 좀 더 자세히 읽어볼 것. [본문으로]
  7. 같은 논문에서 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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