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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석사논문 끝

허튼 2021. 7. 2. 16:28

 

가장 크게 드는 생각은

'분하다...'

 

내 생각에 나는 열심히 해왔던 것 같은데 대체 왜 결과는 요 모양 요 꼴일까 분하다는 생각만 든다.

시간만 열심히 들이고 막상 공부의 질은 가라였다는 걸 더 이상 숨기지 못해 자폭한 것이겠지만.. 그걸 인정하더라도 좀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지금은 진짜 걍 분하기만 함. 힝입니다...

5월부터 심사+완제본 직전까지는 정말 지옥같았다.. 아니 사실 4월부터 지옥같았음. 간사일 하는 학회 학술지평가 때문에.ㅋㅋ

5월 1일에는 자가격리대상자가 돼서 2주동안 집에 갇혀있어야만 했고 (내 의지의 문제였겠지만 2주간 논문은 한글자도 못?안?봤다.) 자가격리 해제 후에 어떻게든 이악물고 논문 수정해서 수정고 만들어놨더니만 6월 1일에는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와 이 때는 진짜 제정신으로 못 살았음. 심사가 17일이었는데, 심사고 뭐고 엄마가 중환자실에 있으니까 ㅋㅋㅋ 진짜 걍 포기하고싶었다. 미친 코로나라서 면회도 못하고 진짜 정신 나감. 지금은 다행인지 재활병원으로 옮겼다. 재활병원으로 옮겼어도 면회는 안 됨. 아빠가 상주간병인으로 있는데, 이건 아빠만 고생이지 나야 뭐.
게다가 6월부터는 간사일 하고 있는 학회 학술지가 본격 발간작업 시작하는 때라 잡무에까지 시달려야 했다.

보내놨던 수정고 피드백은 정말 끔찍하게도 신랄했고. 아 다시 생각하면 슬프네.

어쨌든 이걸 모두 이겨내고 내가.. 하.. 석사논문도 마치고 박사과정 지원도 함. 학술지도 한 이틀 미뤄졌지만 여튼 발간 마침. 미뤄진 건 내 탓 아냐. 난 혹시 개천재인가??? 이정도면 논문 퀄리티는 쌉망이더라도 그냥 이해해줘야 하지 않냐? 교수님들도 아마 이 모든것을 참작해서 바보논문이지만 통과시켜준 듯. 엄마 의식 돌아온 다음에 나 졸업 미뤄졌다는 얘기 들으면 우울증 걸릴까봐 이악물고 졸업한다 세상아!

그래 정말 결과는 이딴 논문이더라도 난 할 수 있는 만큼 성심껏 최선을 다해 썼고, 내가 다루지 못했던 영역까지 다룰 수 있도록 확장해보려 노력했고 무던히도 뚝딱거리다가 장렬하게 패배했다. 영웅처럼 죽는 게 신으로 군림하는 것보다 멋지다고 토마스 만이 실러의 입을 빌어서 말했어.

무엇보다 이 논문으로 지도교수님을 너무 고생시켰다. 쓰는 동안에도 거의 한두달에는 꼭 한 번씩 갖다드렸고 그때마다 나의 자폐적 글쓰기로 선생님의 한숨을 늘려드렸다. ㅋㅋ ㅠㅠ .. ㅠㅠ... 심사 후 수정본을 넘 늦게 드려서 제본 직전 사흘동안 거의 고문을 시켜드리기도 했다. 근데 이것도.. 애초에 내가 게으름을 피운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이렇게.. 이렇게 됐지.....? 교수님 삶이 너무 평탄해보여서 제가 당신의 단기적 시련이 되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제겐 중장기적인 시련이셨으니 이번 한 번만 그러려니 하시길.....

지도교수님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까지 내 인생에 이렇게까지 양가적인 감정을 갖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상세한 얘기를 쓰긴 좀 그렇고 어떨 땐 진짜 화나다가 어떨 땐 진짜 존경스러운 그런 분임.. 이번에도 역시 애증증증의 선생님이셨는데 논문 막판 윤문 봐주실 때 너무 꼼꼼하고 사려깊게 봐주셔서 갑자기 ^애^의 감정이 ^증^의 감정을 이기고 엄청나게 존경하게 됐다. 그 전에 내용 수정할때도 맨날 맞는 말씀만 하셔서 나를 언제나... 성장의 고통에 빠트리기도 했고..

결국 이 논문에 괜찮은 부분이 있다면 다 교수님 덕분이고 개구린 부분은 내가 마감에 쫓겨 미처 교수님 피드백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임.. 이거는... 아부가 아니고 사실인데 꼭 감사하다고 말해야지..


아무튼 끝났고 이제는 더는 수정할수도 없고 여기서 석사논문은 매듭짓는다. 개구려도 뭐...... 누가 보겠습니까. 레포트 쓰는 학부생이나 보겠지. 내 지도교수님 수업 듣는 학부생이 레포트에 인용하면 웃기겠다.

이제 지도교수님과 함께 논문쓰기 미션이 남아있다. 논문 제본 맡기고 두 시간 뒤에 지도교수님과 마주쳤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논문 다 냈나? 그럼 이제 쉴 거 아냐? 다음 논문 뭐 쓸지 ^가볍게^ 생각하고 있어봐."

내 생각엔... 이게 지금까지 겪어왔던 그 모든 일들을 다 합친것보다 힘들 듯...

교수님 지금 내 주제 공부하신다고 관련 책 중에 당신께서 안 갖고 계신 거 다 가져오라는 명령 내리셨거든..?

나는.. 공부하는 선생님이 제일 무서워. 진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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