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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이탈리아 여행: 튀빙엔에서 밀라노까지, 그리고 베네치아

허튼 2018. 8. 26. 17:06

  바이마르 여행 이후로는 4월 말에 대선 투표 차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왔다. 그 때 한 건 눈물나는 치킨먹기 여행 뿐임.. 프랑크푸르트 대한민국 영사관 건물.. 돈까스 만드는 고기망치처럼 생겼다. 그 뒤로 있었던 멀쩡한 여행은 6월 초 함께 교환학생 생활을 하던 친구들과 다녀온 이탈리아 여행이다.



  경로는 우선 튀빙엔에서 밀라노까지 Flixbus로 10시간 정도 야간버스를 타고 밀라노까지 가는 것. 여행 일정은 밀라노 1박, 베네치아 2박, 피렌체 2박, 로마 3박으로 이동시간 포함 총 9박 10일의 여행이었다. 야간버스는 그만의 맛이 있었다. 새벽에는 추웠고 내 앞 사람이 의자를 너무 심하게 젖히는 바람에 무릎 둘 곳이 없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스위스를 통과해서 가는 경로였기에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스위스 국경에서 버스 전체 탑승인원에 대한 여권 검사를 실시했던 거다. 스위스는 EU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국경을 지날 때 모두가 여권검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국경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했는데 정말.. 신기했고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화장실 중 하나다. ㅋㅋㅋ 또 다른 하나는 새벽에 스위스를 가로지르며 버스 창 밖으로 정말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벽 5시쯤 됐었나.. 한참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상태로 만년설이 덮인 산맥들을 터널 사이로 보게 되었는데, 춥고 졸린 와중에도 아.. 이건 진짜 미쳤다..... 이러면서 넋놓고 바라봤었다. 그리고 그 때 본 풍경을 허튼은 세 달쯤 뒤에 다시 만나게 된다. 스위스 중학교 수학여행의 꽁무니에 따라붙어서..


그 와중에 사진을 이따위로 찍어서 울고 있다. 아아 이 바보야~! 


친구가 찍어준 사진! 흑흑흑 만년설 왜 저깄냐고~!

  

  밀라노에는 점심쯤 도착했다. 숙소에 짐을 두고 밀라노 두오모를 보고, 저녁을 먹고, 나는 혼자 라 스칼라에서 공연되는 토마스 햄슨과 루카 피사로니의 <돈 지오반니>를 보러 갔다. 이 공연에 대한 후기는 이미 블로그에 써 두었다. (http://youlamb.tistory.com/39) 밀라노에서 뭘 했더라?! 더웠고 젤라또 사먹었던 기억뿐이다. 그 때 기록을 보면 밀라노 두오모에서 옥상 위에 있는 조각상들의 엉덩이를 감상했던 것 같다.... 미친 거 아냐...?



  밀라노 다음 행선지는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에서 23일 동안 머무르는 내내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건 바로 토마스 만의 단편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비스콘티의 동명 영화, 그리고 같은 감독의 영화 <레오파드>였다. <레오파드>는 시칠리아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탈리아 놈들이 파주랑 제주랑 구별이나 하겠어요? 그거랑 똑같은 마음으로 나는 어쩌면 이 넘실대는 물의 도시에서 세 작품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텁텁함과 출구 없음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곤돌라는 정말 아셴바흐가 묘사한 것처럼 관짝같을까? 전염병이 휘감고 있는 그 해변가처럼 끈적거릴까? 아니면 귀족들과 혁명 장면을 함께 스크린에 내놓던 그 느린 몰락처럼 텁텁할까?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베네치아는 생기 넘치고 발랄한 관광 도시였으며 내가 이 도시에 대해 편견처럼 갖고 있었던 죽음과 몰락의 이미지는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아폴론같은 타치오도 찾아볼 수 없다.

 


  결정적으로 난 베네치아 골목들의 그 허름한 발랄함을 퍽 좋아했던 것 같다. 나무로 된 창문들, 낡은 건물 외벽들, 이끼 낀 말뚝, 차선도 없는 물 위에서 수상버스가 만들어내는 물길, 밖으로 널어 둔 빨래, 빨랫줄에 매여 바람에 날리는 하얀 천 같은 킷치한 이미지들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딱 그 정도로 내 마음도 흐뭇하게 했다. 여행의 기억들을 되살려보려 즉각적으로 기록했던 트윗들을 다시 찾아보는데 여기서 쓴 트윗들 베네치아 너무 예뻐...ㅠ밖에 없다.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누가 베네치아 물 똥물이라고 했냐? 당신들은 템즈강부터 다녀오시길 바람,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 같으니!


 

  베네치아는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예뻤다. 각각 다른 느낌으로 말이다.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했다. 낮에 달궈졌던 땅이 밤 사이에 식어서 아침까지 상쾌했고, 저녁에는 물가에서 바람이 솔솔 불었다. 물가에 앉아 조각피자에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운치로는 남부러울 것 없겠다 싶었던 곳이다.



   당연히 무라노 섬과 부라노 섬에도 다녀왔다. 이들 섬은 아기자기하고 물론 예쁘기는 했지만 베네치아 본섬만큼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각 섬마다 고양이들이 참 귀여웠네. 개냥이같이 풀어놓고 키우다가 주인 오면 집으로 들어가는 고영도 있었고 길바닥 한가운데에 퍼질러 자던 고영도 있었다. 나만 고영 없어!!!!!


  박물관이나 성당같은 곳에 들어가지 않고도 참 알차게 다녔던 여행지다. 워낙 다양한 골목과 건물과 시장, 상점들이 관광객을 맞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이곳에서부터 여행 기념품으로 핀뱃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곳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핀뱃지만큼은 토마스 만이 그려낸 베네치아의 분위기와 색깔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골랐다. 붉은 색과 짙은 남색, 이미지와 선입견이 이렇게 무섭다. 다음에 베네치아에 올 때는 꼭 더크보가드가 앉아있던 그 해변과 호텔을 가 봐야지. 그리고 다음에는 꼭 시칠리아와 몰타도 가고 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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