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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자폐적 글쓰기

허튼 2021. 4. 15. 22:40

석사논문 쓰면서 가장 많이 들은 피드백인데, 무슨 뜻인지도 알고, 그 원인도 알고, 해결방법도 알지만 절대 고쳐지지 않는다. 사실 잘 보면 이 블로그에 있는 대부분의 글들도 자폐적으로 쓰여 있다. 

 

내가 생각하는 걸 남도 알아들을 수 있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설명해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한다는 뜻이다.

왜 차근차근 안 써주냐면, 일단 나는,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해야되는지 확신이 없어서.. 쓰다보면 하고싶은 말이 나오겠지.. 싶어서 시나리오를 제대로 안 짜놓고 글쓰기 시작함.

그러니까 논증은 널뛰고 문장은 빙글빙글 돈다. 여기서 했던 말 저기서는 필요 없는데 또 하고 또 하고, 공들여 설명해줘야 할 부분은 가볍게 넘기고.

이걸 고치려면 그냥 성실하게 공부를 하면 된다. 참고문헌을 충분히 읽고, 남의 분석도 충분히 보고. 그렇게 내 분석에 확신을 가지면 그만임. 지가 뭐 아무런 기반 없는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읽을 거 산더미처럼 있는데 그 중 내가 지지대 삼을만한 게 한 개도 없을 리가 없잖아. 지가 하고싶은 말이 뭔지 확신이 서면 시나리오는 따라 나오게 되어 있지 않겠냐고.

결국 게을러서 안 고치는 것임.. 

 

다른 성실한 대학원생들은 뭐 다른 이유로도 자폐적 글쓰기를 한다더라. 너무 머리가 빨리 돌아가서 이게 이렇게까지 설명해줬는데 이해가 안돼?하고 지만 아는 이야기 한다던가.. 여튼 나는 게을러서 그럼.

 

근데 나는 또 나한테 면죄부를 주고싶잖아. 내 편 들어주는 사람 나밖에 없으니까...

사람이 면전에서 글이 자폐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들으면 주눅이 든다. 눈치를 보고. 내가 하는 말에는 점점 더 확신이 없어지고. 한문장 한문장 전부 검사를 받아야 할것만 같다. 내 분석이 맞나? 여기서 더 가면 너무 오바하는건가? 또 나 혼자 급발진하는건가? 그럼 그냥 자세히 다루진 말고 살짝만 건드리고 갈까? 이렇게 악순환이 된다. 살짝만 건드리고 간다는 건 결국 논증은 안했는데 주장은 하겠다는 걸로 읽히게 될 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마지막으로 남탓 한 번만 더 하면, 나는 원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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