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독일 인문대 박사과정 지원 과정 정리 (현재진행형...) 본문
석사 졸업하고 그저 한국에서 정체된 채 시간을 낭비하며 보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심하게 들어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조교일이랑 각종 잡무 짬처리 외에 내 앞길을 위해서 뭘 하며 살았는지 스스로 설득해주고 싶어 쓰는 포스팅. 그러다가 저와 비슷한 처지에 계신 분이 이 글을 보고 작은 도움이나마 받으실 수 있다면 좋고요.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며 거쳤던 - 그리고 지금도 거치고 있는 과정을 정리합니다. 이딴 포스팅 써놨는데 예상치 못하게 독일 지도교수님께 차여서 낙동강 오리알 되면 쪽팔리니까 서면으로 지도승낙확인서 받고 줌으로 면담까지 한 다음에야 업로드 한다. ㅋㅋㅋㅋ 솔직히 확인 받은 지금도 차일까봐 불안함... 날... 버리지 말아요.
우선 저는 2021년 여름에 석사를 졸업하고, 바로 다음 학기 동 대학원에 박사과정으로 이름을 걸어둔 채 독일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석사 졸업한 직후에 제 한국 지도교수님께서 구상하신(ㅋㅋ) 유학 계획의 큰 얼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2021년 겨울까지 공동논문 한 편 써서 연구업적 만들어두기 (장학금 지원 시 스펙으로 활용)
2) 2022년 봄까지 어학성적 만들기
나 어학성적에 대해서 할 말 많은데 진짜 짧게 줄임. 학교마다 요구하는 어학성적 기준이 다릅니다. 잘 알아보세요. 베를린 자유대학 인문대가 외국인 학생에게 요구하는 입학용 어학성적은 Test-DaF 5 / 5 / 5 / 5 입니다. 파이팅!
3) 2022년 여름까지 독일 지도교수 구하기
4) 2022년 가을에 장학금 지원하기. 그 다음은 장학금 선발 기도메타.
실제로 이 분기별(?) 계획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공동논문은 내가 정신병으로 허덕이고 있으니까 지도교수님께서 하드캐리 해주셔서 어떻게든 발간됐고, Test-DaF도 4/5/4/5로 내가 갈 학교 입학기준은 충족했고(석사 3년간 갈고닦았던 읽기 쓰기에서 4가 나와서 기분이 심히 상했음...), 독일 지도교수도 내 주제와 아주 잘 맞는 분에게 갈 수 있게 되었고. 물론 장학금은 지원까지가 계획이고 선발은 기도메타입니다. 요즘 지원은 전부 공대에 몰빵이라 인문학에 한국인 TO 자체가 극악의 가능성이라고 해요.
아무튼 이 과정 중 교수 구하기와 장학금 지원하기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유럽권 인문학 박사 가는 경로가 대부분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이런 기본적인 정보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정말 맨땅 헤딩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일일이 털어볼게요. 저는 이런 얘기 해주는 선배가 없어서 맨날 혼났거든요... 여기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 님도 (혹시 계시다면) 정말 고난의 길을 걸으시네요... 힘 내시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지도교수 구하기
대부분의 독일 인문학 박사과정은 코스웍이 없어 이론상 논문만 통과되면 졸업이 가능하다. 물론 막상 유학 가면 현지 지도교수가 보충 개념으로 몇 학기 간 세미나 몇 개에 반드시 참석할 것을 지시한다고 함. 나는 아직까지 그런 말은 없는데 그래도 거기까지 가서 세미나 하나 안 듣는 건 말도 안되고 아쉬우니까 참여하긴 할거고, 재밌어보이는 세미나 주제들도 많고, 또 석박사들끼리 주제 공유하는 오버세미나도 있으니까 아예 수업을 안 듣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론상으로는 '과정'이라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에, 박사생으로 입학하는 것도 학교 자체에 지원해서 서류-면접을 통해 선발되는 한국식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우선 자기 연구분야와 잘 맞는 현지 교수에게 먼저 내 박사논문을 지도해달라는 구애의 춤을 춰서 교수의 지도 승낙을 받아야 한다. 대학원생이 고고하게 교수를 쇼핑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니 즐기면 좋다... 교수의 지도 승낙을 받았으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행정용 서류들과 교수의 지도승낙서를 들고 지원시기에 맞춰서 그 교수가 소속된 학교 국제처/입학처에 지원하면 된다.
요는 (학교에서 커리큘럼 짜주는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무조건 독일 교수의 지도 승낙이 먼저라는 점인데, 많은 유학준비생들이 여기서부터 벽을 마주하곤 한다더라. 안읽씹, 읽씹, 주제가 안 맞아서 거절, 지금 지도제자가 너무 많다고 거절, 그냥 거절, 처음엔 받아줬다가 나중 가서 거절, 심지어 유학 가서 학교 다니다가 파문당함 등 기기괴괴 경험담들만 진짜 많이 들었음. 그렇다고 너무 겁먹지는 맙시다. 실패담에 비례해서 성공담도 많고, 교수가 냉큼 오만 칭찬 다 해주면서 데려가려는 경우도 여러 번 들었다. 최선을 다해 구애의 춤을 춰보고 그 다음은 대천명이겠죠...
그럼 교수에게 구애의 춤을 어떻게 춰야 할까? 그게... 크게 특별한 건 없다.
우선 석사논문 쓰면서 지겹게 본 본인 연구분야의 연구자들을 몇 명 추려서 교수 후보 리스트를 만든다.
학교 홈페이지 잘 보고 박사 지도 가능한 사람 중에서 고르십시오... 저는 지겹게 본 연구자들이 죄다 이미 은퇴했거나 아직 교수임용 안 된 사람들이라 후보 풀 자체가 극악으로 적었어요. 님들은 좀 낫길 바랍니다. 학교마다, 학과마다 다르지만 독일은 대부분 테뉴어 교수 외에 Privatdozent라고 정규직 강사도 박사 지도가 가능합니다. 1순위를 테뉴어 교수로 하되 정 인물이 없다 싶으면 PD도 고려해보세요. 물론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게 좋지는 않고 또 지도교수 후광(...)의 문제가 중요해지는 순간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지위나 타이틀이 가르침의 퀄리티를 정해주는 건 아니니까요.
교수 리스트가 나오면 독일 기준으로 학기 중에 자기PR 메일을 뿌린다.
학기 중에 보내는 이유는 독일놈들이 여름겨울 휴가를 가면 2~3주는 일 자체를 안하기 때문. 메일도 안읽씹 당할 확률이 무척 높아진다고 합니다. 제 독일 지도교수님은 휴가 가 있는 동안에도 메일 받으면 재깍 답장해서 급한일이냐 물어보시던데 이건 아마 이 분이 친절한 거고 보통은 걍 자동응답 옴. ㅋㅋㅋ 안전하게 학기 중에 보내는 게 좋다.
자기PR 메일에 들어가야 하는 건 자기소개서, 이력서, 연구계획서. +@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어학증명서를 첨부하기도 하고, 자기소개서는 메일 본문으로 갈음하기도 한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인데 당신께 20xx년 x학기부터 박사 지도를 받고 싶다. 상산에서 진행해 온 연구분야는 xx고 박사논문 주제는 xx다. 특히 당신의 연구는 xxx한 면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참고해 왔기 때문에 당신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더 자세한 내용은 첨부한 파일들을 참고해 주십시오." 정도로 두괄식 메일을 보냅니다.
저 서류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계획서인데, 여기에 이미 박사논문의 문제의식과 핵심 테제, 대략적인 개요 정도는 들어있어야 한다. 보통 7~10페이지. 유학 가서 막상 작업에 착수하면 자연스럽게 전부 갈아엎게 되겠지만 아무튼 구애의 춤 단계에서 이미 연구계획서에 완결성은 있어야 함. 제가 이걸 못해서 5페이지짜리 연구계획서만 4개월 썼잖아요. 제가 바보인 것도 맞는데 연구계획서를 제일 공들여 써야하는 것도 맞음... 학술적 명함이라고까지 말하더라고요.
내 경우는 독일 지도교수 후보로 교수 네 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공상 다들 문학 교수들이었는데, 딱 한 명만 연극학 교수였다. 개인적으로 연극학은 좀 다루기 곤란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교수에게 지도받는다면 연극학이라도 나를 투신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심지어 지도받고 싶은 사람 1순위로 두었다. 메일도 맨 처음에 이 분에게만 딱 한 통 보냈고.
근데 이 분이 무슨... 내가 메일 보내자마자 1분만에 읽더니 3일을 읽씹 함. 피말려 뒤지는줄 알았음. 솔직히 독일 교수랑 메일하는데 3일이면 양반인데도... 그리고 3일 뒤에 보낸 답장이 거절이었다. 본인은 펀딩 되는 자리는 못 주니까 자기네 학과장 아니면 학과장 후임한테 다시 연락하라고. 보통은 그렇게 온다고... ... 하... 아니? 내 돈은 내가 알아서 장학금 알아본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이러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구애의 춤을 췄고 그제서야 내 연구주제가 자기 관심사랑 잘 맞는다며 날 받아줬다. 당연히 잘 맞겠지... 내가 쇼핑한건데. 아무튼 그래서 진짜 장학금 받아야 됨. 뭐 어쨌든 저는 첫사랑이 끝사랑 됐다 이겁니다.
나중에 줌으로 면담할 때 들어보니 이 사람 입장에서도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하긴 하겠다 싶었다. 내가 논문에서 다루겠다고 한 작품들이 전부 21세기 텍스트고 개중엔 2018년에 초연된 것도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 먼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최신의 경향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거냐?"고 놀라는 게 이상하지는 않음. 하지만 2018년도 벌써 4년 전인데. 아무튼 이런 동양인 여자 다양성 토큰이 알게모르게 작용해서 독일 교수가 날 받아주는 걸 더 쉽게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연구분야가 최신 극작이라 이색 대학원생 다양성 컬렉션에 들어가기 용이해서 망정이지 무슨 쉴러같은 거 했으면 주인 못찾아서 고아 됐을지도 모름. 고전 하는 분들 파이팅!
장학금 지원하기
돈 많으면 자비로 가세요 제발~! 나같이 장학금 없으면 유학 못나가는 쌉그지만 지원해 다들!!!!!
농담이고. 인문대 장학금은 준비도 빡세게 하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기도메타인 것 같아요. 근데 또 주변에 유학나간 분들 보면 다 어디선가 장학금 하나씩 받아서 나가계심. 대체 뭐임...? 다들 어떻게들 받는거임...? 나도 하나만 줘라 진짜 열심히 살잖아 나...
독일 나가는 인문대생이 지원해볼 만 한 장학금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장학금들도 물론 더 많이 있어요. 진짜로 받았다는 증언 들어본 장학금만 추리면 이렇다는 겁니다.
국비
독일정부초청장학금 (DAAD) https://www.daad.or.kr/ko/search-scholarshiprogramm/phd-postdocs/
한국 국비유학생 https://www.studyinkorea.go.kr/ko/sub/gks/allnew_government.do
독일 정당장학금
콘라드 아데나우어 재단 (CDU) https://www.kas.de/de/web/begabtenfoerderung-und-kultur/stipendien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SPD) https://www.fes.de/studienfoerderung
하인리히 뵐 재단 (녹색당) https://www.boell.de/de/stipendien-bewerbung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좌파당) https://www.rosalux.de/stiftung/studienwerk/studienstipendium
아데나우어 말고는 왼쪽이라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 왼쪽들은 장학금을 신청할 때 활동내역도 첨부하도록 되어 있다. 자조적으로 지들을 룸펜이라 부르는 천하의 기만자 부르주아 백면서생들은 알아서 돈내고 유학 가시라고요. 특히 로자룩스 장학금은 지원공고에 "동지"(!)라고까지 표현함.
국내 장학금
관정이종환교육재단 http://www.ikef.or.kr/page.php?id=/student/local/local
김희경유럽정신문화장학재단 http://www.khk.or.kr/
장학금 종류는 많지만 결국 지원 시 필요한 서류들은 비슷비슷합니다. 양식에 맞는 장학금 지원서, 연구계획서, 연구일정표, 자기소개서(Motivation), 이력서, 논문/저역서 리스트, 한국 지도교수 추천서, 독일 지도교수(예정) 지도확인서 또는 입학증명서, 어학성적증명서, 학부 및 석사 졸업증명서 및 성적표. 그 밖에 재단에 따라 근무확인서나 활동증명서를 요청하는 곳도 있습니다. 여전히 여기서도 연구계획서가 가장 중요하겠죠... 저는 연구계획서랑 모티바찌온 독일어 첨삭 받고 서류 검토하는 데만 한 달 넘게 썼습니다. 그러고도 마지막에는 정신없이 허둥지둥 지원했는데 진짜 정신건강 안좋을 땐 못 했겠다 싶었습니다... 지금 많이 좋아진건데도 그냥 정신에 지속데미지 들어옴... 어쨌든 여기까지 최근에 끝마쳤습니다.
현재 저는 장학금 지원까지만 해서 이 이상 말을 덧붙이지는 못하겠습니다. 혹시나 받게 되면 따로 포스팅을 쓰겠습니다. 아무 포스팅 없으면 떨어진 줄 아십시오... ... ... ... ... ... 나진짜열심히사는데... 진짜... 하... 우리 독일 지도교수가 완전 톨레스 프로옉트라고 했단 말이야!!!! 나 아는 사람들한테 다 물어봐 세상에 허튼만큼 열심히 사는 대학원생 있냐고!! 있겠죠... 하지만 나도 열심히 산다고!!
장학금 걱정 했더니 독일 지도교수가 "떨어질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장학금 지원이 거절당한 것일 뿐, 당신 연구주제 자체에 대한 거절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 어쨌든 나는 당신 주제가 좋으니까! 당신 지원서를 심사한 심사자와 대화의 기회가 생긴 거라고 생각하세요~" 요딴 소리 함. 뭔소리예요. 짜증나게 뭔소리냐고요! 제 주제 좋으면 선생님이 돈 주시든가요!!
아무튼 저는 내년 여름~가을 쯤 독일에 나가게 될 듯 합니다. 큰 변동이 없으면요. 독일 지도교수님이 한국에서 논문 착수해도 된다고 해서 그 전까지는 한국에서 모을 수 있는 자료들은 (이미 대부분 모았지만) 싹 모으고 독일 나가야만 볼 수 있는 자료들은 리스트업 해두려고 합니다. 물론 개요에 맞게 이리저리 글도 써보고요.
사실은 번역을 하고싶은데 독일어도 못 하고 박사도 못 딴 찐따가 번역하면 나같은 사람을 번역자로 한국에 소개될 독일 작가에게 실례이자 모욕이라고 단칼에 차단당함.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이 안 떠올라서... 번역은 그냥 혼자 몰래 하고 작성중인 파일들의 공동묘지 깊은 곳에 묻어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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