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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2018 명동예술극장 <성>

허튼 2018. 4. 12. 22:42


2018. 04. 11 공연
국립극단

각색: 이미경
연출: 구태환


무대, 조명, 대사와 연기의 밀도가 특히 훌륭했다. 함께 보자고 추천해주시고 극장에도 동행하신 선생님은, 내가 '뭔소리야..'이러고 있으니까 나오셔서 힌트 주듯 엄청나게 무섭고 섬뜩하다고 하셨는데, 아하, 그 때 이해가 됐다.

무대로 많은 칭찬을 받고 있고, 나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무대감독 이름 보고 내가 처음 뮤지컬 입덕했을 때가 떠올라서 살짝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 때 ㅂㄷㅇ 무대 좋아했었거든... 수많은 문들, 그 문을 열어야만 무언가가 보이는 구조, 쌓인 눈과 적절한 조명. 각자 자신의 족쇄가 더 빛나고 아름답다며, 또는 서로의 족쇄를 빼앗으려(클람 국장의 애인 자리) 서로 다투는 노예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떨어진 이방인. 참 좋았는데 비슷한 외관의 대규모 자본 버전을 쿠세이의 짤츠 <티토>에서 먼저 보는 바람에 감동이 덜했다. 물론 <티토>와 <성>의 무대 사용과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중요 장면에서의 외관만 비슷했다는 말이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잘 된 강약조절에 있다. 이 극이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기만 했다면 그리 흥미롭지 않았을 거다. 이런 이야기들은 현대인들에겐 제법 익숙하니까. 극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해 주는 대사와 행동지문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보는 게 피곤하지 않았다.

극 내에서 가장 고통받는 캐릭터는 K인데, 사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마을 주민들이다. 백작은 실재하는 사람인가, 아니 더 밑으로 내려가 클람 국장이야말로 그 방 안에 있긴 한가, 이 성을 지배하는 사람은 대체 누군가, 성이 정말 있긴 한걸까, 대체 성이 무언가. 주민들은 질문할 줄도 모르고, 질문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 



+ 멍청한 질문 하나. 지금 칸트랑 니체를 배우고 있어서 생각이 이 쪽으로만 흘러간다. 나는 이 극의 '성'을 물자체나 진리의 상징이라고 말해도 될까? 나는 이 불쌍한 토지측량사를 방황하는 이성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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