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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기후위기] 토마스 쾩, <천국 범람하다 paradies fluten> 인터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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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기후위기] 토마스 쾩, <천국 범람하다 paradies fluten> 인터뷰

허튼 2022. 8. 18. 21:48

 

토마스 쾩 Thomas Köck은 최근 몇 년간 독일어권에서 크게 주목받아 온 젊은 극작가 중 하나다. 그는 2016년 <천국 범람하다 paradies fluten>을 시작으로 2017년 <천국 굶주리다 paradies hungern>, 2018년 <천국 유희하다 paradies spielen>를 잇따라 초연하며 '기후 삼부작 Klimatrilogie'을 발표했다. 그 첫 번째 텍스트인 <천국 범람하다>는 1890년대 브라질 마나우스의 고무 열풍 이야기(헤어초크의 영화 <피츠카랄도>를 모티브로 함)를 한 축으로, 1990-2000년대의 유럽 백인 중산층 가정의 이야기를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와 아주 일상화된 현대 자본주의의 형태를 독특하게 엮어낸다. 이로써 현재 인류가 마주한 기후위기의 중심 요인으로 자본주의가 지목되지만, 일방적이고 직접적인 비판은 아니다. 이 텍스트에서는 중심을 이루는 두 축 사이에 지난 수십 년의 서구문명의 역사가 매우 압축적이고 뒤섞인 방식으로 끼어 들어오며 예술성을 확보한다.
텍스트가 형식적으로 난해한 것에 비해 작가의 극작 컨셉트는 비교적 명확하고 또 단순하다. 이 텍스트의 오스트리아 공연과 관련해서 '비너 차이퉁'이 진행한 작가 인터뷰는 짧으면서도 독일어권 젊작들의 일반적인 극작 태도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또 오바쌈바 떠는 한국어로 옮겨둔다. 의역 많음.
원문은: https://www.wienerzeitung.at/nachrichten/kultur/buehne/915762_Raus-aus-der-Komfortzone.html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기"


극작가 토마스 쾩 Thomas Köck이 '기후 변화'라는 주제를 무대 위에서 다루는 것의 적합성과 사변적 현실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2017년 9월 8일, Wiener Zeitung의 Petra Paterno와의 인터뷰

기후 변화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토마스 쾩은 연극을 통해 이 현재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사진: Georg Soulek


Wiener Zeitung: 당신의 작품 <천국 범람하다 (길을 잃은 교향곡)>는 기후 변화에 관한 광범위한 삼부작의 첫 번째 텍스트입니다. 9월 9일 토요일 아카데미 극장에서 공연되구요. 이 주제에서 당신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Thomas Köck: 이 삼부작에서 저는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기후 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인가 아니면 사회적 과정, 역사적 발전, 경제적 이익 추구의 결과인가? 이런 질문이 세 작품 모두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신체의 착취를 다루든, 원자재나 자연의 착취를 다루든 간에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그에 상응하는 큰 범주의 생각을 마주세워보는 것이 [기본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과학에서는 우리 시대를 인류세 Anthropozän라고 부릅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인간은 지구의 지질층과 대기층에 대대적으로 개입했으며, 우리의 폐기물은 이미 지구의 일부로 퇴적되고 있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이렇게 된 것일까요? 그 영향은 무엇일까요? 그게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Wiener Zeitung: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Thomas Köck: 제가 적절한 답을 알고 있었다면 이러한 질문들을 연극텍스트 안에서 다루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Wiener Zeitung: 당신의 텍스트는 자주 과거와 현재 사이를 넘나듭니다. 역사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데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을까요?

Thomas Köck: 매우 자주 인용되는 "역사의 종말" 이후의 역사적 진행 과정에 대해 질문하고 조사하는 것이 제 근본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과거를 논할 때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현재구요. 중요한 것은, 역사적 조건 하에서 우리 시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한때 좌파의 포지션이었죠. 이런 작업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익숙하지 않아요. 우리는 절대적으로 시대를 상실한 현재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열망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더 이상 없습니다. 진공 상태인 거죠. 이 상태를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곤 하니까요: 대체 무엇을 위해 이걸 하고 있는 거지? 더 큰 계획이 있는 것일까?

Wiener Zeitung: 당신은 과학적-역사적 질문을 고전적 실내극 풍의 아버지-어머니-자식 구도와 관련시킵니다. 당신은 상황과 인물을 세밀하게 분석하지만 어떤 인물도 그 상황을 잘 극복하지 못하지요. [극작을 하면서] 관객이 자신을 동일시 할 만한 인물을 만들어내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Thomas Köck: 하지만 갈등이 해결될 수 없고 인물들이 그저 부유하는 채로 남아있을 때가 가장 좋은 경우인 걸요. 갈등은 이름 붙여 부를 수 있지만 사람들의 취약성과 불안정성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나 자신이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모르는 문제가 연극 공연 한 번에 해결된다면 이상할 거예요. 현대 예술은 물음표를 던질 수 있지요.

Wiener Zeitung: 그러면 당신은 인물을 어떻게 다루나요?

Thomas Köck: 음악 이론에서 음형(昔型, 독일어로는 Figur로, 등장인물을 뜻하는 단어와 같음)은 단지 전환점에서 아주 잠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묘사를 좋아해요. <천국 범람하다>에서 인물은 텍스트의 행과 행 사이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다가 대중매체의 소음에 묻혀 다시 사라집니다. "나"는 아주 잠깐 숨을 몰아쉬고요.

Wiener Zeitung: 당신의 작품은 조사를 잘 진행한 것처럼 보이고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깝지만, 그런가 하면 또 굉장히 과장된 형태이기도 합니다. 거짓 Fake와 허구 Fiktion의 싸움에서 당신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Thomas Köck: 이 긴장의 장에서 내가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허구가 얇은 판막과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의 조형성과 구성성을 통해 이 판막 위에서 현실을 지각하도록 만드는 순간입니다. 이것은 물론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자연스럽지 않고, 구성되었던 또는 구성되는 것이며, 저는 이 구성의 법칙을 따르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거짓은 그로테스크한 순간들, 과잉과 익살로 가득 찬 장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청중이 "잠깐만, 지금 이게 맞아?"라고 되묻는 순간이 좋아요. 그렇게 관객을 깨울 수 있으니까요.

Wiener Zeitung: 그럼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Thomas Köck: 물론 저는 조사를 많이 하고, 자료를 파헤치고, 저를 혹사시켜가며 작업합니다. 제가 목격자나 전문가의 말을 활용하거나 역사적 문헌들에서 인용해 오는 경우는 있지만, 그렇더라도 제 텍스트에서 권위 있는 진정한 전문가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현실은 [섬광처럼] 번쩍일 수 있고 또 번쩍여야 합니다 - 변화 가능하고 구성 가능한 것으로서,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 구성 가능한 것으로서, 가능태로서, 사변적인 것으로서요.

Wiener Zeitung: 연상 작용과 한 번 비틀어진 맥락들이 풍부하기 때문에 당신 텍스트에 "압도적인 드라마"라는 개념이 붙었습니다. 납득하실 수 있나요?

Thomas Köck: 개념 자체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정복(독일어 Überwältigung에는 압도와 정복이라는 뜻이 같이 들어있음)에 대한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요구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텍스트가 그렇게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스스로 저항 드라마의 전통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연극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형식에 천착하고, 저항을 위한 제안들에 대해 논의하기를 즐기는 관객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는 드라마요. 저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Wiener Zeitung: 기후 삼부작 <천국 범람하다> / <천국 굶주리다> / <천국 유희하다>를 하루 저녁에 한꺼번에 공연해야 할까요? 고대 그리스 연극제의 경우처럼 관련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요.

Thomas Köck: 좋은 생각이네요, 엄청난 기획이 될 거예요. 각 작품들은 서로 관련을 맺고 있고 텍스트 안에는 다른 텍스트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만, 또한 각 작품은 별도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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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건대 여기서 '안전지대 / 컴포트 존 Komfortzone / comfort zone'는 아무래도 포스트드라마적 연극을 염두에 둔 단어 선택인 듯 싶다. 정치적인 것의 중단을 통해 정치성을 획득하려는 기본 기획에서 갈라져 나와서 결과적으로는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경향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싶음. 거기서 벗어나서 다시 드라마를 다루려는 극작가들의 이런 방향성이 얘기되기 시작한 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쾩도 여기서 그리 특별한 말을 하고있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는 쾩이 인류세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도 지층의 단면들을 보여주듯이 이 텍스트를 구성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지구의 지질과 대기에 인간이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려는 텍스트를 퇴적물의 형식으로 구성했다는 게 기발한 컨셉인 듯. 근데 누가 봐도 벤야민 빨아먹은 것 같은데 죽어도 지 입으로는 벤야민 얘기 안 하는 게 웃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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