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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피가로의 결혼>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15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피가로의 결혼>

허튼 2018. 12. 22. 12:46


지휘: 단 에팅거

연출: 스벤-에릭 베흐톨프.

출연: 마르티나 얀코바(수잔나), 아담 플라체트카(피가로), 루카 피사로니(알마비바 백작), 아네트 프리취(백작부인)



  ㅋㅋㅋ 웃기네 베흐톨프 생긴건 깡패처럼 생겼는데 이렇게 귀여운 연출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종강 기념으로 뭘 볼까 하다가 이걸 집어들었다. 예전부터 스벤-에릭 베흐톨프의 연출을 한 번쯤 보고 싶었긴 했다. 유명한 연극/오페라 연출인 건 아는데 정작 내가 본 건 부르크테아터에서 안드레아 브레트 연출로 올라간 연극 <돈 카를로스>의 펠리페 2세로 직접 출연했던 영상뿐이었으니까. 그 이후로는 2012년에 취리히에서 올렸던 오페라 <돈 카를로> 연출 인터뷰나 다른 작품 연출 인터뷰 영상으로 봐 왔다. 아, 2017년 연말쯤에 운터덴린덴 재개장한다고 공연했던 슈만의 <파우스트 장면들> 중계에서도 봤지, 참. 메피스토펠레스 역이었는데 그레트헨으로 여장하고 (마찬가지로 메피스토인)르네파페가 노래하는 걸 립싱크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그의 연출작 영상을 풀로 보게 된 건 처음이라는 말임.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피가로의 결혼>은 이 영상으로 두 번째 보게 되는 작품이다. 첫 피가로의 결혼은 구트 연출의 M22 그것이었음........ 난 그거 보고 와!!! 모페라 존나 개노잼!!!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지금 다시 보면 좀 다르겠지. 그 때도 메이드복 입은 네트렙코 예쁘다고 환호하긴 했지만..


  아무튼 내가 베흐톨프한테 가지고 있던 편견은 '아.. 이 인간도 성격 겁나 더러워 보이는데 연출도 성격 더럽겠지 완전 재밌겠다..' 였다. 난 진짜 이 사람도 죄다 살짝 맛 간것처럼 연출할 줄 알았다. 막상 이 프로덕션을 보니 아주 모범적이고 생각보다 귀엽고 아기자기해서 놀랐다. 게다가 모든 가수들의 움직임이 불필요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햄슨이나 보 스코부스도 연기 잘 한다고 칭찬받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의 연기를 보면 불필요한 팔 휘두르기나 허리굽히기 등 많잖아요? 그런데 이 프로덕션에서는 그런 게 별로 없다. 물론 출연한 가수들이 잘 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정도까지 정돈되어 있는 건 분명 노련한 연출의 승리다. 


  '정돈'되어 있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가수들의 움직임들은 분명 정돈되어 있고, 디렉션의 조종선들이 보이는 느낌마저 준다. 이 프로덕션의 위험 요소는 따로 있는데 바로 공간 분할과 관련된 여러 부수적인 움직임들이다. 


  베흐톨프는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무대를 깊이 사용하기보다는 평면성을 강조하여 공간을 나눈다. 1층과 2층, 나뉘어 있는 방들, 지하실과 부엌, 밖과 안... 그렇게 해서 한 방에서 어떤 커플이 중요 줄거리에 해당되는 노래를 하고 있을 때, 그 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서도 동시에 계속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연출의 탁월함은 아마 이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노래에만 집중해도 충분한데 주위에서 부산스럽게 뭔가 계속 움직이고 있으면 당연히 감상자 입장에서는 집중이 깨지고 주인공이 아닌 나머지 움직임들이 거슬리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흐톨프는 과감하게 돌파한다. 어차피 가사에 별 뜻도 없는데! 다행히 나는 안 그래도 이 작품을 좀 지루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 부산스러움을 즐길 수 있었다. 공간분할과 그 활용력에 있어서는 정말 탁월하다. 그리고 이 부산스러움이 오히려 감상 집중력에 큰 도움을 줬던지 다른 공간분할 없이 오직 한 공간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어놓은 4막에서는 지루해서 졸 뻔 했다. 여기는 좀 커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가수들도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모두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잘 한다. 아니 수잔나역의 마르티나 얀코바 귀여워서 큰일 날 뻔 했잖아요... 그리고 피사로니 쌈싸먹는 피지컬의 피가로 역 아담 플라체트카.. 정말 귀엽다...... 이들의 잔망스러움이 이 작품을 살립니다.... 베흐톨프에 대한 가장 큰 배신감은 피사로니가 맡은 알마비바의 캐릭터에서 들었다. 나는 알마비바가 안경쓰고 옷에 신경쓰는데다가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라서 수잔나 꼬실 때 더러움 추접의 극치를 보여줄 줄 알았단 말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교양변태 판타지 같은 거.. 그런데 그냥 겉으로 보이는 캐릭터 그대로 끝까지 가더라. 아니 사람이 좀 겉과 속이 다르고 그래야 골려먹는 재미가 있지 어쩜 저렇게 겉도 속도 일관적으로 보이는 그대로냐.

  

  

  연출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알마비바의 먹먹문 에버노트 자필 반성문이 끝나고 결혼식 피로연이 정원에서 열린다. 합창과 음악 연주가 끝나도 막은 내려오지 않고 가수들과 합창단은 계속 무대 위에 남아서 샴페인을 나눈다. 관객들도 어리둥절한 나머지 한참 후에야 박수가 터져나온다. 인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가수들은 계속 건배를 하고 자기들끼리의 뒷풀이 분위기를 유지한다. 분명 이렇게 극과 커튼콜을 모호하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있을 텐데, 추측하기 어렵다. 사람이 생긴 건 연출하다가 테너 뺨 수백대는 갈겼을 것 같이 생겨서는 이런 귀엽고 아기자기한 해피엔딩을 만들어놓고 마무리를 이렇게 한다면 분명 흑막이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연출을 너무 믿지 못하는 걸까ㅜㅜ!


  어쨌든 전혀 부족함이 없는 한 편의 완결된 그림책같은 프로덕션이었다. 이상하게 모차르트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얄미워 죽겠는데 그래서 그런지 얘한테는 호감이 안 생김. 

  졸업논문 이후로 긴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요즘 블로그에도 똥감상들만 올리고 있다. 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진짜 큰일났다.... 이렇게 생각 없이 영상 보면 안 되는데. 하지만 이게 내 잘못일까? 길게 감상 쓰고 싶은 작품을 아직 못 만나서 그런 건 아닐까? 라고 오늘도 내 자신에게 면죄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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