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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베를린 슈타츠오퍼-실러테아터 <돈 카를로> 후기 본문

오페라, 클래식

2017 베를린 슈타츠오퍼-실러테아터 <돈 카를로> 후기

허튼 2017. 6. 13. 21:52

*****클알못 후기 주의*****



지휘: 마시모 자네티

연출: 필립 힘멜만

출연: 르네 파페(펠리페2세), 파비오 사르토리(카를로스), 로만 테르켈(로드리고), 리아나 하로토니안(엘리사베타), 마리나 푸르덴스카야(에볼리), 미카엘 카자코프(그란데인퀴지터)



2017. 05. 14 내 최애베이스 르네 파페가 펠리페로 출연하는 베를린 슈타츠오퍼 실러 테아터의 <돈 카를로>. 이탈리아어 4막 버전이며, 펠리페를 메인으로 팔아먹으면서 라크리모사는 빠져 있는 단팥없는 붕어빵 프로덕션이다.




내가 사는 Tübingen에서 베를린까지는 대략 7시간에서 10시간정도 걸린다. 본에 벚꽃놀이 다녀오면서 다시는 밤기차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나마 저렴한 기차표 앞에서 그 다짐은 한줌 재만큼의 힘도 없었다. 그래도 대선투표하러 프랑크푸르트 가는 기차 끊었을때보단 덜 아까웠다. 어덕행덕,,,

이 답이없는 오타쿠는 단지 파페 펠리페를 보기 위해서 베를린까지 가는 것을 택했다. 로드리고도, 카를로스도, 엘리사베타도, 에볼리도 알지 못하는 가수인데다가 표도 잘 안팔린다. 공연 1주일 전인데도 표가 거의 안 나갔다. 이거 어떻게 메꾸려고 그러지? 현장매매 데이시트같은걸로 다 팔아버리나? 그걸로 사도 4열중앙 자리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렇게 표가 안 나갈까 연출에 무슨 하자라도 있는걸까 파페가 공연 전에 갑자기 캔슬해버렸는데 그걸 나만 모르고 있는건가 옆동네 빈 슈타츠오퍼에서 6월 11일쯤에 하는 돈카를로는 바르가스, 도밍고, 푸를라네토에 정명훈지휘고 전회차 전석 솔드아웃이던데 너넨.. 왜 그래...?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예매를 해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출에 하자가 있었던 게 맞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내가 예매한 자리는 주황색으로 표시해놓은 저 자리다. 모처럼 잘생긴 펠리페 얼굴 핥으러 가는 거니까 앞열로 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서구인의 앉은키를 당해낼 재간이 없으므로 또 앞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단차가 없지는 않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없었으며 내 앞열에 앉은 서구인은 앉은키가 컸다 그 앉은키를 이길 수 없었던 쟈근 똥양인은 매우 슬펐다)
온라인예매 말고 전화로 예매하면 50% 할인해준다길래 한국에서 인터파크로도 잘 안하는 전화예매를 해버렸다 전화받아주신분 매우 속이 터지셨을게다.. 결국 44유로에 예매해버리고 마음졸이며 공연일을 기다렸다.

7시간을 달려 베를린에 도착


전공병 돌게 하는 도로명도 보고


최애 이름 도로명이랑 최애 이름 극장 도로명도 보고 쭉쭉 걷다보니


실러테아터에서 공연한 파페 파르치팔 포스터가 보임


도착했습니다,,,,,, 제가,, 드디어,,, 섹시컨셉 파페 펠리페를 봅니다,,,,,

공연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세종M에서 과제때문에 본 사랑의 묘약을 제하면 처음으로 영상이 아닌 직접 보는 오페라라서 설레는 마음 한가득, 최애 오페라를 본다는 기대 한가득, 최애 베이스를 애정 롤에서 본다는 행복감 한가득 안고 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니 이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좀 그랬다.

무대는 직각의 암막이 가로세로로 움직이며 등장인물들에게 집중케 하고, 소품이라고는 무대 정중앙의 테이블이 전부다. 그리고 이 모든 장치가 펠리페를 위해 꾸려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로드리고가 죽고 나서 구질구질하게 엘리사베타와 카를로스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4막은 통째로 자체휴식시간이 되어버린다는 게 가장 큰 에러였다. 라크리모사가 없으면 이 돈카를로는 내게 의미가 반감되어버리기도 하고,,,,, 내 돈칼 관전포인트는 로드리고/펠리페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 프로덕션의 로드리고는 내 취향을 꿰뚫는 대머리를 가지고 내 뒤통수를 쳐버리신 것이다.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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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버츄어가 흘러나올때 와 씨 진짜 내가 이거 보러 독일 온 게 실화냐 싶을 정도로 벅찼다. 사실상 한국에서부터 이 공연 보려고 벼르고 벼르며 월공강도 만들고 했으니까..(결국 실전에선 월공강을 만들지 못해서 무박2일 기차여행하고 돌아와서 4시간만에 시험 봄ㅋㅋㅋ) 그걸 진짜로 보러 왔다니 살짝 그 사실에 감동했다.
합창도 좋았고! 초반 연출도 좋았단 말이다! 근데! 카를로스가 덜 풀린 목으로 엄마사랑해요를 부르는 순간! 현실에 들어와버렸고! 로드리고가 답답한 성량으로 카를로스사랑해 그치만 후 케어스 어바웃 유어 론리 소울.. 때려치고 네덜란드를 구하자고 하는 순간! 너무 슬퍼져버린 것이다! 로드리고가! 노래를 너무 못하고! 카를로스와 로드리고의 우정의 이중창에서 지휘자는 베르디의 과도한 뽕짝뽕에 취해 약을 한사발 해버린 뒤 미친 듯 지휘봉을 내달려 50초만에 베를린에서 스페인까지 가버리신것이다 세상에!

2. 그 충격은 컸으나 짱쎄고 섹시한 에볼리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었다. 이 프로덕션의 에볼리는 정말.. 섹시하고... 이정도로 섹시하고 당당한 에볼리가 왜 카를로스따위 이물질을 사랑하는 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에볼리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고 노래를 못 하는 로드리고를 볼 바에야 차라리 에볼리의 흰 셔츠를 보는 게 훨씬 내 눈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여튼 궁정 여인들을 다루는 로드리고의 솜씨도 영 아니었다 내가 햄슨에 길들여져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카를로스와 엘리사베타의 절절한 사랑은 내 알 바가 아니다.

3. 펠리페가 올리바레즈를 추방하고 엘리사베타가 올리바레즈를 향해 절절한 아리아를 부르는 씬은 역시 펠리페 표정을 핥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올리바레즈 역 가수분 노래 한마디도 안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질 수가 있지?? 반할뻔했음 ㄹㅇ 너무 충견느낌 나고 내가 생각하던 상상속의 올리바레즈 그 자체셨다;; 그리고 솔직히 여기 진짜 오지는 감정포인트인데 이렇게 아무 감정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이 프로덕션 자체가 좀 끈적끈적하고 이게 사랑인지 우정인지 알 수가 없어야 하는 장면에서 감정을 차단해버리는 연출로 밀어버려서.. 진짜.. 알수가 없었다.... 오페라 원래 감정과잉의 맛으로 보는 거 아니었나 왜 감정이 폭발해야 하는 장면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절제했던거지? 그래서 너무나 밍숭맹숭한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감정의 차단은 비단 엘리사베타-올리바레즈 씬 뿐만 아니라 우정의 이중창, 레스타테, 왕비-에볼리, 로드리고의 죽음 등 끈적끈적한 감정 과잉이 일어나야 하는 부분에서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흐느적 하고 흘러가버린다. 에바참치꽁치김치가문의수치 모든 뽕이 터져야 할 곳에서 단 1나노그램의 케미도 터지지 않는다 건조 그자체 다스뮤지컬 건조 연출 솔직히 말해봐 디나이얼이지?


감정뽕이 터지지 않는다는 것 이게 왜 중요한가? 사실 돈카를로스는 호모소셜을 빼면 껍데기만 남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정치적인 메시지는 카를로스의 열병이 로드리고의 이성과 이상을 잠식하며 옮아와 종국에는 로드리고가 열병에 가득 차게 되는, 그 맥락 속에서 전해지는데, 그런 뽕이 없는 돈칼은,, 그저,, 다큐멘터리로 만든 브이포벤데타일 뿐이라고,,, 



레스타테는 진짜,,,, 로드리고 역 맡은 바리톤 가수분 너무 답답해서 내가 베를린까지 와서 오페라극장 안에서 군밤 군고구마를 몇개나 사먹은거지 싶을 정도였다. 파페 울림통이 좋아서 봐줬다 진짜,,,ㅜㅠ 좋았던 디테일은

"나는 그들에게 평화라는 선물을 주었다." / "그 선물은 그들에게 무덤속의 평화입니다. 사상의 자유를 주십시오. 폐하 자신을 두 번째 네로로 만들지는 마십시오." 

하는 부분에서 펠리페가 로드리고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로드리고의 코 앞까지 치받아들고 목을 조르려는 시늉을 한 것... 흑... 나이들고 노련해서 모든 감정을 숨길 수 있는 펠리페도 좋지만, 아직은 젊은 힘이 있기에 날선 감정이 보이는 펠리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후자는 대부분 파페 펠리페에게서 보이는 특징이다.


4. 그리고 아우토다페!!!!!!!!!!!



이 프로덕션 너무 미쳤구나 했던 부분이다.


직접 보기 전에 저 매달려있는 종교재판당한 사람들 그냥 마네킹이겠지 싶었는데,, 진짜 사람이었고,, 무대 위에서 너무나 잔인하게 다뤄진다. 저 사람들을 보는 고통이 우선 너무 커서, 아우토다페 씬이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내내 그 안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관계의 파국에는 집중이 안 되었다. 다른 관객들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저 사람들 테이프로 입과 목이 칭칭 묶이고 알몸으로 무대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어야 했고... 마지막 "하늘에 영광"까지 천천히 거꾸로 매달리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상했던 연출은 카를로스가 펠리페 목에 칼을 들이밀 때였는데, 이 때 펠리페가 대체 왜 겁을 먹는지 알수가 없었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노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튀는 모션과 표정연기였다. 오페라가,, 노래만 잘 하면 됐지 뭘 더 바라냐고 하면 할 말은 없는데, 다년간의 뮤덕질 경력으로 인해 이렇게 눈에띄는 캐릭터 붕괴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물들간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전혀 유발되지 않음. 로드리고가 "왕자님 칼을 제게 주십시오"이후에 등장인물들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 지 궁금해져야 하는데 그 장면에서의 임팩트가 전혀 없었다.. 로드리고는 당연한듯 칼을 달라고 하고 카를로스는 그냥 물흐르듯 칼을 넘겨주며,,, 펠리페는.... 뭐 하는 지 모르겠네 겁먹다가 갑자기 당연하게 제자리 찾아감;


이것들 외에 괜찮았던 연출은, "폐하 저도 이제 제 살길을 찾아야겠습니다"이후 로드리고가 카를로스의 칼을 빼앗고 나서다. 펠리페는 로드리고를 공작 작위에 앉히며 저 하얀 테이블(이전까지는 카를로스, 엘리사베타, 펠리페, 에볼리만 앉아있었던 테이블)에 로드리고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펠리페는 반역에 실패한 카를로스를 다시 테이블에 앉히고 큼직한 고깃덩이를 썰어 손수 접시 위에 놓아준다. 그것을 먹기를 종용하는 제스쳐와 함께. 그리고 같은 행동을 로드리고의 접시 위에도 반복한다. 이 프로덕션이 철저히 펠리페 중심으로 돌아감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5. 인터미션이 끝나고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네"를 부르기 이전에 스탭인지 총책임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무대에 나와서 "오늘 우리 베이스 르네파페가 알레르기로 매우 kämpfen중"이라고 했다. 거기까지 듣고 아 망했다 기차 한참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교체하는건가 했는데 다행히도 오늘 공연은 끝까지 할 거라고 해줬다. 근데... 파페 그게 아픈와중의 퀄리티였던거야...??? 내가봤을땐 저 무대에서 아무리 아프다곤 해도 파페가 제일 잘했는데....

여튼 그 말을 듣고 봐서 그런가 3막부터는 목을 좀 아끼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네가 굉장히 슬프고 힘겹고 원래 그런 아리아긴 하지만 노쇠한 느낌이 들었다. 원체 펠리페 자체가 너무 빻아서 아들 약혼녀 훔쳐 결혼한 주제에 원래부터 이 아리아에 설득력같은 건 없었는데, 이 장면 파페 연기가 넘,, 쩔어서 설득력 생겨버릴 뻔 함. 

잘생겼으니까 이 씬 파페 사진이나 좀 보고 가세요 아이고 예뻐라



6. 이 프로덕션 그란데인퀴지터 없었으면 무대 정중앙에 있는 테이블 진작에 내가 엎어버렸음.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네를 그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부르다가 그란데인퀴지터가 등장하자 주섬주섬 정갈하게 차려입는 펠리페 너무 좋았고ㅜㅜ 그란데인퀴지터 충성충성,,,,, 이 프로덕션에서 제일 잘 하셨다 펠리페를 압도해버리셔따 무대를 휩쓸어버리셔따 펠리페랑 베이스배틀 베르디의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내가 오늘 저녁 여기 궁에 오지 않았더라면(황제 너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면) 그대는 내일 아침 종교재판장 앞에 서 있었을 것이오." 이 파트 부를 때 종교재판장이 가진 거대한 힘이 압도적으로 느껴졌고 거기에 펠리페가 으득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하는 것 너무 최고되었다.... 



7. 로드리고의 죽음은.. 로드리고 죽어가는 포즈가 정말 그런 엉덩이강조밖엔 없었을까..? 회전무대에서 바리케이트에 거꾸로 널리는 앙졸라스만 생각하다가 레미즈 라이센스 연출에서 수레에 실려나가는 앙졸라스를 보게 된 딱 그 정도 안타까움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드디어 로드리고 가수분의 노래가 듣기 그렇게 거북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내가 적응이 된건지 가수분 목이 어느정도 풀린 건지 알 수가 없음. 

8. 그 후로 4막은 통째로 자체휴식시간 됨. 커튼콜땐 거의 대부분의 가수들 표정에서 만족하지 못함이 느껴졌다. 으윽 좀 슬프네


9. 사실 이 후기 전부 극장 나오자마자 휘발되었는데, 그 이유는 담배피는 파페를 봤기 때문이다. 극장 밖에서 서성이다가 극장 창문으로 고개 내밀고 담배 피우고 있는 파페와 눈이 마주쳤는데 파페 표정이 "하,, 인생,, 은퇴할까,," 이거였어서 그 즉시 공연 휘발되어버림ㅋㅋㅋㅋㅋ 아니 이사람아 알러지라매??? 목도 아꼈잖아???? 담배피면서 왜 그런 표정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렌보임이랑 끽연디스까지 하는 사이라더니 디스 할만 함.....


여튼 공연 자체가 아니라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아버려서 좀 슬프닼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45유로에 이정도 퀄리티의 공연이면 만족할 만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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