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드하임은 뮤지컬신
2026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파르지팔> 본문

연출 초연 2018년, 2026년 4월 8일 공연
지휘: 제바스티안 바이글레
연출: 피에르 아우디
출연: 크리스토프 피셰서(구르네만츠), 안야 캄페(쿤드리), 클레이 힐리 (파르지팔), 페터 마테이(암포르타스)
뭘 길게 쓸 힘은 없고,
상당히 이름 날린 연출가임에도 이렇게까지 음악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연출은 뒤로 물러난 걸 본 게 신기해서 기록만 남겨두려 함.
지금까지 파르지팔을 바이로이트 헤어하임 연출로만 딱 한 번 봤음. 8년 전인데 그거 보고 뇌에서 도파민이 줄줄 흘러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함. 그래서 나는 파르지팔 하려면 헤어하임이나 슐링엔지프처럼 꼭 뭔가 이상한 걸 시도해야 되는 줄 알았음. 아니, 그렇잖아요. 이용숙 샘이 괜히 레지테아터 논문 예로 파르지팔을 들었겠나요.
근데 피에르아우디는 한 막 당 그림 한 장과 숲 배경으로 시노그래피를 해치워버리곤 가수들/합창단의 움직임이나 동작을 굉장히 정적으로 씀. 지독하게 느린 음악에 영혼이 약간 빠져나가는 사이 '이거 연출이 있긴 한거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게 역설적으로 신기했다고 해야 하나... 가장 최근에 본 오페라가 하필 배리 코스키 연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성탄전야>라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시간은 공간이 된다"를 불렀는데 거기서 그 어떤 스펙타클도 보여주지 않고 냅다 막을 내려버리는 건 진짜 상상도 못했단 말임 ㅋㅋㅋ 님 방금 공간을 차단해버리셨잖아요, 시간이 공간이 못 됐잖아요, 이 장면에서의 전권을 오케스트라에 넘겨버리셨잖아요,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잖아요 ...
연출이 오페라의 원래 내러티브에 무리해서 새로운 맥락을 덧붙이거나 하지 않고 단순 이미지로만 승부 보면서 주도권을 완전히 음악에 줘버린 게... 오히려 이제와선 거꾸로 새로운 선택인 것 같았음...... 그...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하던가... 그런 느낌...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아니고... 아우디는 인간의 나이듦,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따라오는 육체적 추함 같은 이미지를 파르지팔 전체에 덧씌워두었음. 성배기사단과 꽃처녀들에겐 과장되게 축 늘어진 배, 엉덩이, 성기, 가슴을 붙인 타이즈를, 암포르타스에겐 눈에 띄게 초라한 노인용 내복을 입혀두었고, 각 막의 테마가 되는 그림들은 도드라진 뼈와 마른 근육이 붙은 나신으로 통일했음. 노인들이 '나이먹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 진심으로 생과 자신의 육신에 환멸을 느끼지만 또 동시에 진심으로 더 살고싶어하는 그런 마음을 성배기사단에 덧씌우려고 했던 걸까. 요즘은 뭘 보고 깊은 생각도 못하겠고 애초에 <파르지팔>에 대한 이해 자체가 얕아서 해석을 시도할 엄두도 못 내겠다...

그리고 이번 <파르지팔>에서는 구르네만츠의 매력을 재발견함...
구르네만츠가 진짜 너무너무 ... 맛있는 캐릭터였음...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생각을 못해봤다는 게 억울함.
골골대는 암포르타스 곁에서 병수발 다 하다가 은퇴하고 숲속 오두막에 숨어사는 늙은 기사?
늙고 힘들고 다리 절고 모시던 왕 암포르타스를 결국 치료해주지 못한 채로 은퇴했는데 예전에 봤던 힘만 센 바보가 어엿한 구원자 기사로 환골탈태해서 다시 나타나?
1막에서 자기가 '바보', '아이야', '소년아' 등으로 칭했던 젊은이를 3막에서는 Herr라고 부르고 자기 자신은 Knecht라고 낮춰말하는 이 관계의 역전?ㅋㅋ 아 설정 과해. 너무 맛있다...
게다가 아우디 연출에선...
본인이 파르지팔을 암포르타스에게 데려다주고는... 암포르타스가 구원받는 그 마지막 장면에 정작 구르네만츠가 없음.
근데 이 마지막 장면이 엄청나게 암포르타스에게 동정과 연민을 느끼도록 짜여있단 말임. 파르지팔이 성창으로 암포르타스를 찔러주니까 짐을 벗고 해방된 듯한 미소를 슬쩍 짓는다고 암포르타스가...
그리곤 무대 전면에서 파르지팔+합창단과는 분리된 채 홀로 무릎을 끌어안고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앉아서 밝아지는 조명을 바라봄...
죽음으로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된, 그 기쁨도 슬픔도 아닌 쓸쓸한 내려놓음을 암포르타스가 보여주는데 구르네만츠야 넌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ㅜㅜ
이게말이되나. 진짜로. 모시던 왕이 자기 의무 Amt로부터 해방돼서 마침내 한낱 인간이 되는 걸 차마 눈 뜨고는 못 보겠다는 거니. 구르네만츠야 너는 어쩌면 왕의 두 신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충신이 아닐까. 하......
별개로 마테이가 진짜 잘하더라... 죽고싶은데 못 죽어서 한껏 예민해진 노인 암포르타스가 엄청나게 연민을 끌어냄.;; 진짜 우리 21세기엔 이런 만인공용신체 왕 예수 이런 거 하지 말자... 마테이는 평생 노래하시고...;;
이 정도만 기록용으로 남겨둔다.. 보고 갑자기 오페라 뽕차서 곤란했음...

이제 학생할인은 못 받는 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런 터무니없는 자리의 표를 구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분께 무한한 감사를... (마테이가 너무 거대했음)
'오페라, 클래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4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탄호이저> (11) | 2024.07.29 |
|---|---|
| 2023 바이에리셰 슈타츠오퍼 <맥베스> (2) | 2023.12.12 |
| 2023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아이다> - Staatsoper für alle 스트리밍 (0) | 2023.08.07 |
| 2019 라 페니체 <돈 카를로> - 이제부터 전 Werktreue를 수호합니다 (0) | 2020.03.15 |
| 2019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지옥의 오르페> (0) | 2020.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