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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서 말하면 안되는 것들

바티칸의 오벨리스크와 파리의 루브르

허튼 2017. 12. 12. 07:46

지난 6월 친구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10월엔 혼자 파리를 다녀왔다.

비록 지금이야 여행 매너리즘에 빠져서 기숙사에 틀어박혀있지만, 교환학생 기간동안의 여행은 나름 즐거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두 가지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로마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 광장 정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다.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바티칸 광장 정중앙에 있는 것은 로마의 황제였던 칼리굴라가 기원 후 37년에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것이다. 오벨리스크 약탈은 아우구스트 때부터 지속되어왔던 일이다.




바티칸에서 동행하며 이것저것 해설해주시던 가이드 분의 말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로마로 약탈해 올 때 수많은 노예가 죽었다. 이야기인즉슨 이 길고 얇은 오벨리스크를 부서지지 않게 옮겨오기 위해 배 밑창에 노예들을 깔고 그 위에 오벨리스크를 올렸다는 설명이다. 노예를 쿠션 삼아 약탈품을 안전하게 옮겨왔다. 당연히 노예들은 이동기간동안 죽어나갔고, 오벨리스크 아래 깔려있었기 때문에 시체를 제 때 치우지도 못했다. 그냥 그대로 로마에 데려온 것.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기원 후 37년에 저걸 선박으로 옮길 기술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이야기가 거짓이더라도 이 거대한 것을 이집트에서 로마로 약탈해 오며 수많은 노예가, 또는 일반 백성들이 학대당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런 상징물이 교황이 사는 바티칸 정중앙에 우뚝 솟아있다는 얘긴 언제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다. 누구보다 사랑을 강조하던 종교가 아니던가. 사랑의 대상은 사람이지, 노예가 아니었던 게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이탈리아 여행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파리에는 혼자 갔기 때문에 바토무슈 동행을 구했다. 한인민박에서 같이 묵던 분이셨는데 문화재 관련 전공을 하셨다고 했다.

바토무슈 위에서 스몰토킹을 하다가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고 위의 저 바티칸 오벨리스크 얘기를 꺼냈다.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것은 약탈품이 아니라 이집트 총독이 프랑스 왕에게 선물했던 것이기 때문에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길고 거대하고 이집트산이 아니던가. 그 날 루브르 박물관에서 어딘지 모르게 느꼈던 위화감이 계속 내 안에서 그 주제를 꺼내게 만들었던 것 같다. 루브르를 가득 채운 건 죄다 다른 나라에서 가져오거나 조공받고 선물받은, 원래는 다른 나라의 문화재들이니까. 제1세계에 대한 이유 모를 묘한 적대감도 불타오르던 때였다.ㅋㅋ 그리고 그 때 나눴던 대화는 새로웠다. 당시 대화를 정리하며 포스팅을 마치는 게 좋겠다.



-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약탈품을 이 제1세계 놈들이 자랑스럽게 전시하는 걸 어떻게 봐줘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재밌는 이야기네요. 그럼 루브르 박물관도 이미 다녀왔나요?

- 네. 그 넓은 공간을 빼곡히 약탈품으로 채워놓고 지들 관광상품으로 팔고있는 게 어쩐지 기분이 묘해져서 금방 나왔어요.


- 그렇죠. 웃기긴 해요. 하지만 마냥 나쁘게만 볼 수도 없다는 점이 가장 웃기죠. 빼앗긴 나라는 사실 그 고대 유물들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었던 곳이 대다수였어요. 약탈국들이 고대 유물들을 자기 나라로 약탈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게 말이에요. 박물관은 전시의 기능도 하지만 사실 유지와 보존의 기능도 커요. 약탈이 잘 한 짓이라는 게 아니에요. 대영박물관같은 데는 자기들도 쪽팔린 걸 알아서 지금에 와선 공짜로 개방하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루브르는, 양심이 좀 없긴 하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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