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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뮤지컬

2018 레지덴츠 테아터 <파우스트>

허튼 2018. 2. 27. 15:38

연출: 마틴 쿠세이

출연: Bibiana Beglau(메피스토), Werner Wölbern(파우스트), Andrea Wenzl(그레첸)



17. 02. 2018 공연.

쿠세이 진짜.. 오페라 연출한 거 보고 욕해서 미안하다. 오페라는 정말 참고 참았던 거구나. 오페라팬 노인분들 놀랄까 봐 완전 얌전하게 했던 거구나. 연극으로 오니까 정줄놓고 달린다. 오페라 연출에서 보이는 섹스 폭력 죽음의 이미지를 5배쯤 강하게 올려놨다. 러닝타임 세 시간동안 고문당하고 나왔다.


쿠세이 파숭은 2막 5장의 필레몬과 바우키스 씬에서부터 시작한다. 눈과 귀가 멀 듯한 섬광과 폭발음(진짜 불을 쓴다) 이후 극 진행 내내 열심히 돌아갈 회전무대 파이트클럽 건물을 돌림. 파우스트의 자살 씬 이후 평범하게 1막으로 돌아온다. <파우스트>는 애초에 괴테가 썼을 때부터 무대 위에 실연하라고 만든 게 아니다. 그냥 문학적 가치를 가진 극본이지 실연될만한 길이도, 내용도, 배경도 아니고 현실성도 없다. 그런데! 그걸 굳이굳이 실연을 하려고 하니 잘 될 리가 없다. 차라리 아예 뼈대나 원래 텍스트에서 말하고 싶은 극도로 작은 부분 하나만 남겨놓고 대대적으로 갈아엎었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쿠세이 파숭은 원작을 애매하게 갈아엎었다. 이거를 내가 관극 전에 번역본 두 번 읽고 쿠세이파숭 원어 대본이랑 번역본 비교대조 한 번 해보는 예습 하고 갔는데도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다. 거의 모든 쓸데없는 부분을 자르고 쳐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텍스트의 홍수와 잦은 암전은 인터미션 이후 후반부부터 급격하게 지쳐가는 관객을 만들어내버렸다. 러닝타임이 인터미션 포함 3시간인데 후반부에 그레첸이 파우스트한테 홀려서 엄마 음료수에 약타는 장면 쯤 되자 관객들 지쳐버린 게 극장 전체에서 느껴졌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심지어 대사의 80%정도는 이해 못 하고 있어서 더 힘들었다.


그냥 이 정도 텍스트에 이 정도 장면전환만 있었어도 세시간이면 힘들어할텐데, 쿠세이는 오페라 무대 떠난 게 너무 좋아서 해금을 했는지 어쨌는지 정말 미친듯이 폭력적이었다. 보고있는것만으로도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1분에 10씩은 닳는 기분이었다.ㅠㅠ 노골적인 폭력의 묘사와 그보다 더 노골적인 성적 묘사,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장면들.... 쿠세이가 아무리 이것들을 가지고 표현하고 싶은 게 명확하다곤 해도 정말로 이런 묘사가 필요했을까? 우리 지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의 윤간 장면을 아예 빼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쿠세이의 이런 연출은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결론내리지 못하겠다.

노골적인 것과 포르노적인 것은 다르다. 쿠세이는 전위와 김기덕 사이에 서 있다. 아..음... 쿠세이가 20년전부터 래디컬하다, 전위적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이제는 전위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쿠세이는 성적인 것을 표현하면서 김기덕과 전위의 영역 사이에 줄타기를 하고 있고 아직 그 줄타기에 실패해서 김기덕의 영역으로 들어간 걸 보지 못했다. 이 <파우스트>에서 약간 김기덕 될 뻔 했는데 잘 봐주면 아니라고 해줄 수 있다. 내가 이걸 조금만 더 싫어했으면 쿠세이 김기덕같다고 욕했을 수도 있다. 이 파우스트 너무 싫고..

프로그램을 보면 본인은 이 <파우스트> 텍스트를 니체와 프로이트 등등으로 풀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약 딜러는 왜 나온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나오는 행위들을 보면서 "인간의 본질!"을 말하는 건 좀 재미가 없다. "피씨방 죽돌이 죽순이들의 폭력성을 알아보기 위해 불시에 전원을 차단하여보았습니다."같은 소리다. 



세 시간 넘는 러닝타임동안 가장 힘들었을 배우들. 특히 극 내내 무대 위에서 극장을 장악해야 했던 파우스트 역과 메피스토 역 배우는 그만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분들이라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메피스토펠레스 역 배우분한테 반해버릴 것 같음. 등근육 미쳤서요?! 이 극에서 메피스토는 등에 잘린 날개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추락한 천사다. 여성 배우고. 그 때문에 재밌는 상황이 많이 연출된다. 특히 파우스트와 함께 마녀의 부엌에 쳐들어가 젊어지는 약을 마시게 하는 장면은 단비같은 웃긴 장면.


아 정말 힘들고 괴로웠다. 쿠세이 왜 파지 자괴감 들고 환멸나,,,,, 마지막으로 루살카까지만 보고 그만둬야지. 루살카는 개강하고 나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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